인권하루소식

<논평> 평등한 노예가 답일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8년 2월, 파견 노동을 합법화하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파견제란 무엇인가? 사람을 돈 주고 파는 것, 혹은 돈 주고 사람을 사 와 일을 시키는 것의 세련된 이름이다. 역사 속에서 이것의 진실한 이름은 '노예제'였다. 파견제가 중간착취와 고용 불안,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동반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전까지 이른바 파견노동이 금지됐던 데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초반부터 '현대판 노예제'의 합법화 시도는 계속 이어졌고 97년 말 아이엠에프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거세게 반대했으나, 정부는 불법파견을 규제하는 동시에 양성화된 파견노동자들은 보호하게 될 것이라며 큰소리를 쳤다. 이리하여 끝내 노예제는 부활되고 말았다. 그것도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란 기만적인 이름으로.

그 이후 6년,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 일자리를 박탈당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주기적인 해고 통보로 삶은 극히 불안정해졌다. 기업들은 파견제를 임금 비용 절감과 자유로운 해고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고, 노동자들은 쓰다 버리는 물건처럼 취급되었다. 파견제는 사무보조, 청소용역, 운전직, 텔레마케터 등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의 노동과 생활을 일그러뜨려 놓았다. 불법파견도 규제되기는커녕 사내하청, 용역 등의 이름으로 더욱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비참함에 대해 노동자들은 집단행동으로, 때론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응답은 해고요, 가난이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은 노예 상태를 거부하고자 하는 마지막 절규이다.

그런데, 정부는 파견대상 업무를 사실상 모든 업종으로 허용하겠다는 어이없는 방침을 최근 발표했다. 이번에도 명분은 그럴 듯하게 차별해소다. '비차별'이란 인권의 원칙은 차별받는 집단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차별을 낳는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의 정규직 일자리까지 파견직으로 만들면서 '무권리 상태의 평등'을 이루는 것이 어떻게 '차별해소'일 수 있겠는가! 임금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의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파견제의 존재 이유인 이상, 애초부터 파견제와 노동자의 인권은 나란히 갈 수 없는 것이다.

파견직을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의 확산이 빈곤의 심화로 이어지고, 건강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직시하지 못하는 것인가. 노예를 늘리는 것이 '노예제'의 개선책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파견제를 폐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