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논리에 주눅든 용기

국가인권위 법제개선 권고


"정부부처는 저희 의견에 상당한 반응을 보입니다. 철저한 논리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데 (정부부처도) 받아들여야죠. '논리'가 중요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아래 위원회)의 '법제개선 권고' 활동에 대한 법제개선담당관실 김성준 과장의 평이다.

위원회는 실제로 현재 국회통과가 사실상 무산된 테러방지법에 대해 올해 2월 제정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도로교통법시행령 개정령안 중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는 조항을 삭제하라고 경찰청에 권고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같은 달 위원회는 정부에 국제형사재판소 가입을 권고했으며, 국제형사재판소 규정 비준안은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인권위법 제19조는 위원회의 업무 중 제1항을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위원회는 인권과 관련되어 무수히 많은 법령․제도 중 △위원장의 검토지시가 있거나 △정부 입법예고안 중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의원발의 입법안은 그 수가 많기도 하고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당위적으로 발의된 것도 있어 원칙적으로 의견 표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법제에 대해 입장을 정리할 때 단체보다는 개인에게 자문을 구하며, 사건당 전문가 3~5명에게 자문을 요청한다. 따라서 인권단체들의 의견은 위원회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에 대해 김 과장은 "위원회는 정부부처 뿐만 아니라 NGO들로부터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라며, "인권단체들의 의견은 해당 정부부처에 직접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부연했다.

법제에 대한 권고나 의견표명은 정책소위원회나 전원위원회의 의결로 집행되지만, 사안이 경미할 경우 법제개선담당관실에서 직접 처리하기도 한다. 정책소위원회나 전원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려지거나 보도자료로 배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법제개선담당관실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공개되지 않는다. 법제개선담당관실에서 법제개선 연구를 담당하는 직원은 김 과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이다.

충분치 않은 인력과 '권고'라는 권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분명 법제개선 권고를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둬왔다. 하지만 위원회 스스로 인권의 영역을 지나치게 축소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워 보인다.

먼저 의원발의 입법안에 대해 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의견 표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법안을 심의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검토요청이 들어온 법안에 대해선 의견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김홍신 의원이 '성전환자 호적 정정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구했지만, 위원회는 의원발의 입법이란 이유로 의견표명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NGO들과의 거리두기를 이유로 인권단체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에 대해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이해 당사자와 거리를 두는 것을 오독한 것"이라며, "올바른 정책생산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의견을 수렴해야 하며, 지금까지 공익적 관점에서 일해 왔던 인권단체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문제 등 사회권에 대해 인식의 깊이가 얕은 모습도 보이고 있다. 현재 주5일제 도입 관련 정부입법안은 20인 미만 사업장의 주5일제 적용시기를 2007년 7월 이후 대통령령으로 다시 정하기로 했다. 2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6%. 따라서 정부입법안은 향후 5년 동안 과반수 노동자들에게 주5일제의 혜택을 박탈하는 차별문제를 낳고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아직까지 이를 인권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인권보장을 위해 어렵게 만들어져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심의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등은 1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고, '삼청교육대 피해 배상법'의 경우는 89년부터 3차례나 국회에 제출됐으나 국회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하지만 '법안의 조속한 제정은 여야 의원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국가기관의 부작위에 의한 인권침해 혹은 차별로 볼 수 있다"라며, "위원회가 의지만 있으면 (의견 표명도) 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어 "현재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며, "잘못하면 독립적인 국가기관이라는 위상을 훼손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타 국가기관과 교섭을 하거나 싸우려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에 대해 위원회가 구제조치를 취할 수 있는 대상은 자유권 영역이나 고용, 재화이용, 교육 등의 문제로 국한된다. 반면 법제개선 권고의 대상은 헌법, 법률 그리고 국제인권조약에 다루는 인권문제를 망라한다. 이에 따르면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인권과 관련된다. 따라서 위원회가 의지만 있다면 인권의 잣대로 이야기 못할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때 위원회는 '논리'를 이야기한다.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논리를 구성했을 때, 다른 국가기관이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그러한 논리를 구성할 자신이 없다면, 중요한 인권문제라도 위원회의 입장 표명은 유보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위원회는 법제개선 권고의 대상을 보다 확대하려는 치열함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위원회에 절실한 것은 논리에 주눅들지 않는 용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