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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창조의 인권이야기

한 젊은 검사의 항변


친구 어머님 장례식장에 갔다가 우연찮게 젊은 검사 한 사람과 동석하게 됐다.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과 검사가 만났다 보니, 둘 사이엔 자연스레 '인권'과 '수사'에 관한 한담이 오고 갔다.

부임한지 갓 2년을 넘겨 진주에서 근무하는 이 젊은 검사는 "요즘 '인권' 때문에 수사하기가 적잖이 힘들다"며 나름대로의 고초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조사하다가 '당신'이라는 말 한 마디 잘못 튀어나가면, 곧바로 피의자 입에서 '고발하겠다'는 반응이 나와요. 인권을 무시했다는 거죠." "통신감청시대는 이제 끝났어요. 법적 절차에 따라 감청영장이라도 받을라치면, 그 사이에 이미 정보가 다 새나가고 피의자의 핸드폰번호도 바뀌어 버리죠" "심지어 구속영장 청구한다고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서 머리를 벽에 찍어가며 자해하는 사람도 있어요. 고문당했다고 주장하려는 거죠."

젊은 검사는 교도관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교도소 내 이른바 '악질' 수용자일수록 진정도 많이 하고, 제소도 많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기면서, 대부분의 '악질'일수록 인권위에 진정을 넣기 마련이라고 했다. 때문에 불필요한 진정과 쟁송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교도관들 사이에서 복지부동 분위기가 확산된다며 검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컨대, 사회적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경향이 형성되다보니,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수사기관과 구금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듣다보니, 있을 법한 일들이고, 그 고충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검사의 불만이 '인권'으로 향한 것은 분명 방향착오였다.

오히려 과거의 권위주의적 관행과 수사편의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할 때, 합리적 수사의 여지는 확장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한 인권활동가는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교도관을 못살게 구는 재소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교도관"이라며, "교도관들이 재소자를 인간적으로 처우하고 법에 따라 처리할수록 그러한 현상을 줄어들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인권활동가의 문제해결 방향에 동의한다.

한담이 무르익어 가면서, 젊은 검사는 썩어문드러진 부장검사와 맞장 뜬 경험도 이야기하고, 검찰보다 더 부패한 지방법원과 호족들 간의 커넥션에 분노하기도 했다. 또 수십억씩의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일부 지방공무원들에 대해 '전의'(戰意)를 불태우는 그의 모습에서 나름의 순수한 열정도 엿볼 수 있었다.

정의감에 불타는 그 젊은 검사에게서 '인권활동가'의 시각까지 기대하는 게 순진한 생각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창조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