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요약> 진보민청 최후진술 요지

“우리는 진보를 꿈꿨을 뿐이다”

▶ 강기웅 : 국민들에겐 우리 사회구조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사상·이념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며, 소수의 주장이라도 보호받아야 한다. 이번 재판이 정치사상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재판이 되길 기대한다.


▶ 유영주 :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을 때 김 모 심문관은 “안민청, 부민노청, 사민청 등 산하단체들을 다 조사했고, 96년부터 3년간 진보민청에 대해 공작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증거자료의 20%를 확보했고, 그 가운데 20%를 범죄입증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전체 진보민청의 문건 가운데 4%를 가지고 우리를 이적단체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민청 활동 전체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우리가 주장해온 ‘반자본·노동자중심·반보수’는 상식적 국민이라면 누구나 제기하고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의 활동은 민주주의와 진보를 확대시키려는 활동이었다.

만일 진보민청에 이적규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노동자·민중을 이적시하는 것이며, 온 국민에게 이적규정을 내리는 것이다.


▶ 오재영 : 감옥에 구금된 4개월 동안 진보민청이 과연 적을 이롭게 한 단체인가 고민해 왔다.

경찰이 제시하는 증거는 모두 문서들이다. 문서만 가지고 ‘이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진보민청의 모든 활동이 이적행위였는지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해온 무료법률상담, 지역신문 제작, 문맹퇴치사업 등을 무시하고 문서 가운데 일부 과격한 내용을 짜깁기해 ‘이적’ 규정을 내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적을 이롭게 한 게 아니라 서민들을 이롭게 하는 활동을 해왔다.


▶ 정종권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과연 우리사회에 자본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진보와 보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50년만의 정권교체라고 한다. 그러나, 교체란 서로 다른 것 사이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 다른 정치가 존재하는가? 보수·수구만 존재하고 진보·혁신이 뿌리채 잘려나가는 현실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세력의 유의미성을 인정하고 정치사상·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치사상의 자유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비주류와 소수의 사상을 인정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권교체를 보고 희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갇힌 진보민청의 현실과 IMF 아래 민중의 고통을 보면서, 여전히 반노동자․반민중적 재벌과 정권을 보면서 희망을 접었다. 자본의 정치에서 노동의 정치로 진정한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 김경윤 :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뛰어넘는 이상사회를 꿈꿨다. 이를 위해 진보정당의 건설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그것이 반성의 내용이 될지언정 처벌의 내용은 되지 않는다.

‘제3의 길’을 논한 기든스 교수가 최근 내한했다. 이 영국의 노학자는 칙사대접을 받았지만, 역시 ‘제3의 길’을 모색중인 진보민청은 재판을 받고 있다. 사상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자유로운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 김봉태 : 조금 과격한 회원이 있으면 어떤가.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글이 있으면 어떤가. 그 입을 틀어막고 옭아매야 하는 것인가? 진보민청 안에선 사상의 자유와 글을 쓸 자유가 있다. 다만 의장으로서 내가 정치적 책임을 질 뿐이다.

시대에 역류하는 이번 재판에 분노한다. 역사의 방향은 진보로 나아가고 있지만, 극우공안세력은 아직도 자신들의 알량한 출세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보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내 가정생활을 몇 년간 도청해온 홍제동 대공분실의 수사관들도 역겹다. 극우공안세력이 김대중 정부 아래서도 남아 있는 것은 치욕이다.

진보민청 사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홍제동 수사관은 “몇년간 진보민청에 대해 조사했지만, 잡아 가둘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안민청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진보민청이 국민회의 앞에 가서 집회를 하고 항의하면서 사건을 키우니까 잡아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잡아넣었다”고 말했다.

과거 국가보안법 사건에 무죄를 내린 판사가 법복을 벗는 등 국가보안법이 계속 남용된 책임은 사법부에도 있다.

정권초기에 이렇게 국가보안법이 남용된 때가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해방·인간해방이라는 강령에도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 공안문제연구소의 한 학자는 노동해방을 사회주의로, 인간해방을 공산주의로 등치시킨 도식을 그려놓았다. 마르크스가 인간해방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이제 인간해방은 전 세계 진보진영의 이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유럽 사민주의와 전 세계 진보진영 모두를 공산주의로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나의 사상을 고백할까 한다. 나는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의 저서를 보았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달았다. 그러나 소련의 공산주의가 노동자들에 의해 되돌려지는 것도 보았다. 자본주의의 극복이 어떠한 길로 나야가야 될지 아직 구체적 상을 못찾고 있지만, ‘노동자와 함께 하는 진보주의’가 내 사상이다. 이 사상에 대해 사법부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진보진영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없어지지 않는다. 유죄가 선고된다 해도 진보민청은 없어지지 않는다. 독거방에 가두고 수갑을 채운다 해도 사상은 없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인 새로운 판례가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