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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장기수 캠페인 <분단의 고통을 나누자⑥>

행방불명자 사건 ― “혈육의 정마저 간첩사건에 이용”


1. 기획을 시작하며
2. 초장기수들
3. 재일교포 관련 사건
4. 일본 관련 사건
5. 납북어부 사건
6. 행방불명되었던 가족
7. 민주․통일 운동 관련
8. 기획을 마치며

‘한 번 해병은 죽을 때까지 해병’이란 구호처럼 ‘한 번 빨갱이는 죽어서까지 빨갱이’이란 말이 있다. 빨갱이란 ‘낙인’은 본인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까지 견딜 수 없는 시련으로 다가온다.

한국전쟁 당시 월북자나 행방불명자를 가진 가족들은 그후 혈육을 만났거나 혹은 도왔다는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 받아 실형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남파되었다는 장본인이 남한에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혈육을 만난 사실은 물론 간첩활동을 했는지의 여부조차 의혹을 사고 있다.

수사기관은 행불자 가족을 오랫동안 사찰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고정간첩’을 만들었다.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고문을 통해 만들어진 ‘피의자 심문조서’ 뿐이다. 그외 다른 어떤 증거도 없다. 조작간첩 사건으로 분류되는 행불자 가족 사건과 관련하여 박동운 씨는 60일, 이창국 씨는 72일, 석달윤 씨는 47일동안 불법구금 당했다.

박동운 씨는 현재 광주교도소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진도 가족 고정간첩단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는 6.25때 헤어져 생사도 모르는 아버지 박영준 씨를 따라 두 번이나 북에 갔다온 것으로 조작되어 무기형을 살고 있다. 같은 사건으로 7년을 살고 나온 숙부 박경준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우리 가족 5세대는 아무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81년 3월9일을 전후해서 안기부로 강제 연행되었다. 60여일 동안 불법구금 속에서 밤낮 없이 살인적 고문과 공포에 시달렸다. 수사기관은 6.25때 서울에서 행방불명되어 생사도 모르는 가공인물 박영준 씨가 남파간첩으로 내려와 가족과 접선하고 고정간첩 노릇을 했다는 것을 강요했다. 그것이 ‘진도가족 고정간첩단 사건’의 전부이다.

또 한 예는 간첩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일가족 모두가 ‘삼척간첩단 사건’으로 둔갑, 12명에 이르는 가족들이 사형에서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5년 6개월을 선고받은 김순자 씨는 최근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는 이 엄청난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합니까? 아무리 천인공노할 죽을 죄를 지었다 해도 어떻게 한 일가를 이렇게까지 완전히 파탄시켜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68년,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던 외삼촌인 진현식 씨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김씨의 가족들은 무척이나 놀랐다. 그 때만해도 철저한 반공교육에 찌들려 호랑이보다 무서운게 간첩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몸으로 나타난 외삼촌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그후 진씨는 상처가 아물자 더 이상 머무는 것이 친척에게 해가 될 것 같다며 월북을 시도한다며 집을 떠났다. 김씨의 가족들은 그 후 별탈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느닷없이 사건이 터졌다. 79년 누군가의 밀고로 진현식 씨 사건이 터지면서 10년 전의 일이 ‘삼척간첩단 사건’으로 둔갑한 것이다. 간첩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김씨의 아버지와 진씨의 동생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다친 몸으로 찾아온 친척을 야박하게 돌려보낼 수 없어 숨겨주었던 인정 많고 소박하던 삼척 산골의 한 일가는 ‘간첩’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혈육의 정마저 간첩사건에 이용된 대표적인 예이다.


표 9) 행방불명자 관련 장기수 명단

이름 / 나이 / 교도소 / 수번 / 형기 / 연행일 / 구속일 / 복역연수

박동운 51 대구 3111 〃 81.5.8 15년
안승윤 64 〃 3151 〃 82.2.26 14년
김태룡 48 대전 3565 〃 79.7.20 11년
나종인 58 〃 3643 15년 85.4.25 11년
석달윤 65 전주 2120 무기 80.10.6 16년
진창식 49 〃 2679 〃 79.7.20 17년


김상원 씨 사건 일지

86. 3.10. 영등포에서 불심검문을 거부하자 경찰관 이병호에 의해 연행, 파출소에서 심하게 폭행 당해 뇌졸증으로 쓰러진 뒤 영등포시립병원에 입원/4.24. 가족들 식물인간이 돼 입원중인 김씨를 찾아냄/5.29. 사건발생 77일만에 사망

87. 7.23. 가족들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강성룡 순경 등 중앙파출소 경찰관 4명을 독직폭행치사․사건은페조작․공문서위조 혐의로 고소

88. 2.17. 이병호 씨 추가 고소/6.10. 검찰 무혐의 결정/6.17. 강성룡 씨 등 7명을 서울고법에 재정신청 제출(대리인 박원순 변호사)/8.26.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국가와 강성룡 순경, 이병호 경장, 김근영 의경, 홍성일 순경, 황경현 경위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제기 (대리인 박원순)

90. 10.15. 서울고법 재정신청 받아들여 이병호 경장 재판에 회부/10.31.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던 윤영근검사외 수사관 2명 등 9명을 직무유기․범인은닉․공문서위조․위증에 관한 법률위반협의로 대검찰청에 고소/11.29. 법원 이병호 씨 등 가족에게 9천5백80만원 배상하라는 원고승소판결

91. 5. 검찰 이병호 씨를 제외한 나머지 무혐의 결정/10.10. 강성룡 순경 등에 대한 헌법소원 제출

92. 9.30. 형사지법 합의22부 이병호 피고인에 대한 재판 시작. 공소유지 담당 검사 우종권변호사 임명

93. 6. 대법원 손해배상 판결/12.17. 헌법재판소, 정홍전 씨에 대해 불기소 취소결정. 정홍전 씨는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재판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