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장기수 캠페인 <분단의 고통을 나누자④>

일본관련 ― “조작간첩의 황금어장”


1. 기획을 시작하며
2. 초장기수들
3. 재일교포 관련 사건
4. 일본 관련 사건
5. 납북어부 사건
6. 행방불명되었던 가족
7. 민주․통일 운동 관련
8. 기획을 마치며


지난 7월24일 부산지법은 대표적인 조작간첩 사건으로 알려진 신귀영 씨 사건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조작간첩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인 신귀영(58)씨는 이미 15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하였다. 더군다나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던 신춘석(신씨의 5촌당숙)는 10년형을 마친지 오래고, 사촌매제인 서성칠 씨는 고문후유증으로 90년 대구교도소에서 사망하였다(<인권하루소식> 7월25일자 참조).

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변호사들은 마치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대법원까지 거쳐 확정된 사건의 판결을 법원이 스스로 뒤집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조작간첩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 오창래 씨도 그렇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 조작간첩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한 필요성을 선행조건으로 주장한다.

또 하나의 조작간첩 강희철 씨 사건의 판결을 맡았던 박우동 변호사는 최근 한 시사주간지의 인터뷰에서 강씨의 사건을 “조작 가능성이 짙은 사건”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이를 후회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박우동 변호사는 “군사정권의 검찰과 경찰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협박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직 대법원 판사마저도 간첩사건의 조작성을 인정하는 판이다. 그는 강희철씨의 재심을 맡은 변호사에게 자신이 내린 판결을 오판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있다.

‘조작간첩의 황금어장’이라는 일본관련 유학생 간첩사건은 재일동포 간첩사건과는 반대의 경우다. 일본관련 사건은 내국인이 일본을 방문하여 친지를 만난다거나 아니면 우연찮은 기회에 조총련계 사람을 만났다가 귀국하여 간첩이 되는 경우다. 친척이나 아는 사람을 만날 때 미리 조총련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이 조총련인지 아닌지도 모를 친척을 만난 것은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은 것이 되고,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이라든지 선거가 언제 있을 것이라든지 하는 외국인이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얘기했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공작원에게 국가기밀을 제공한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일본에 있다는 그 공작원을 검거할 필요도 없고, 입증할 필요도 없다. 안기부나 수사기관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공작원이요’ 하고 들어내놓고 공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거기다 친지들이 건네주는 돈을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그것은 공작금으로 둔갑하게 된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맘만 먹으면 일본에 갔다온 사람은 모두 간첩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잡혀간 이화춘 씨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숙부를 만나 금전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면, 이장형 씨의 경우를 들어 이들이 어떤 과정을 밟아 간첩이 되는가 추적해 보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학도병으로 자원입대, 해병대 대위로 예편, 금성무공훈장 받고 5년간 예비군 중대장을 지냈던 그는 82년 녹슬음 방지 기술연수 및 도입을 위해 세 차례 일본 방문하는 등 일본과 제주도를 오고가며 개인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84년 6월15일 막내딸 생일에 참석하려 귀국하였다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67일간 이근안으로부터 고문을 받았다. 그의 형기는 무기징역이며 현재 11년째 복역중이다.

그는 남영동에서 ‘처와 자녀들을 나신화하여 똑같은 고문으로 요리하겠다’는 이근안의 협박에 굴복하고 만다.

“저는 항복하였고 저의 처와 자녀들을 용서한다는 조건(?)으로 모든 것을 체념, 그(이근안)가 요구하는 대로 응하였습니다”(90년 2월 의 편지 중에서).

공소장에 의하면 그는 72년 삿뽀르 동계올림픽 참관 초청을 받아 방일한 이래 간첩활동을 해왔으며, 82년 세차례의 일본방문은 간첩활동을 하기 위한 잠입, 탈출로 뒤바뀌었다. 더군다나 82년 12월22일부터 1주일간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했다는 소위 ‘간첩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세아 제주 방송국의 위치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 누구나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사실들이며, 만년필, 일반여권, 초청장, 여권 및 비자발급 접수대장 등이 증거물로 채택되었다. 한 인간이 무기형을 받은 간첩죄를 성립시키는 증거로서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또, 천주교 조작간첩대책위가 확인한 바로는 북한을 방문했던 당시 그가 일본에 있었음을 증언할 사람이 나타났고, 공범관계를 성립시키지도 못했다고 한다. 특히 이씨 사건의 진상규명에는 천주교 제주교구의 신부들이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이런 예는 거의 모든 조작간첩 사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강희철 씨는 1백5일간 고문을 당하고, 무기형이 확정된 경우지만, 사건의 핵심인 일본의 전성광 씨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강씨와는 전혀 개인적인 친분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일본관련 사건들을 어느 정도로 수사기관이 애용했는가는 <표7>을 보면 자연스레 판단된다.

다음에 살펴보게 될 납북어부사건, 전쟁시 행불자와 관련된 사건들을 통해 보다 명확히 우리는 조작간첩의 실상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표 6 일본관련 장기수 명단>

이름/나이/교도소/수번/형기/연행일/구속일/복역연수

서경윤 56 대구 3185 15년 84.7.15 12년
신상봉 70 〃 3199 10년 85.4.23 10년
김 철 65 〃 3158 7 년 89.4.26 6 년
유재선 64 대전 3573 무기 83.11.12 13년
김익현 33 〃 3855 7 년 90. 6년
최선웅 54 〃 3599 12년 86.1.30 10년
유종안 64 〃 3897 15년 85.3.18 11년
김윤수 57 〃 3637 15년 85.6.24 11년
강희철 37 〃 3502 무기 86.4. 10년
이장형 63 안동 1302 무기 85.8.20 11년
조봉수 54 〃 1312 7 년 89. 7년
최해보 68 〃 1320 15년 85.5.30 11년
유정식 56 〃 1311 무기 75.4.1 21년
이병설 58 〃 1360 12년 86.7.28 10년
조상록 50 1310 무기 78.2.2 18년
문철태 66 전주 2019 무기 85. 11년
장의균 44 〃 2006 8년 87.7.13 8년


<표 7 사건 연도별로 본 장기수 유형>

총계 216건
51-68년 40건
69년 15건
70년 3건
71년 11건
72년 5건
73년 1건
74년 10건
75년 4건
76년 1건
77년 4건
78년 6건
79년 4건
80년 4건
81년 7건
82년 13건
83년 15건
84년 14건
85년 26건
86년 11건
87년 3건
미확인 19건


월북자 가족 사건 총 14건(51-68년 1건/ 70년 1건/ 71년 1건/ 77년 1건/ 80년 2건/ 81년 1건/ 82년 2건/ 85년 2건/ 미확인 2건)

월남자 가족 사건 총 2건(83년 1건/ 85년 1건)

납북어부 사건 총 16건(71년 1건/ 76년 1건/ 77년 2건/ 81년 1건/ 82년 2건/ 83년 1건/ 84년 4건/ 85년 2건/ 미확인 2건)

재일동포 사건 총 17건(70년 1건/ 73년 1건/ 74년 2건/ 75년 1건/ 81년 3건/ 82년 1건/ 83년 2건/ 84년 2건/ 85년 2건/ 86년 2건)

일본관련 사건 총 39건(71년 1건/ 72년 1건/ 74년 1건/ 75년 1건/ 77년 1건/ 79년 1건/ 80년 1건/ 81년 1건/ 82년 6건/ 83년 7건/ 84년 3건/ 85년 7건/ 86년 5건/ 87년 1건/ 미확인 2건

민주운동유학 사건 총 8건(85년 6건/ 86년 1건/ 87년 1건)

월북기도 사건 총 8건(71년 1건/ 75년 1건/ 81년 1건/ 84년 1건/ 85년 1건/ 86년 1건/ 미확인 2건

조작 사건 총 15건(69년 1건/ 71년1건/ 72년 3건/ 74년 6건/ 78년 4건)

남파공작원 사건 총 61건(51-68년 39건/ 69년 11건/ 70년 1건/ 71년 2건/ 72년 1건/ 74년 1건/ 75년 1건/ 80년 1건/ 82년 2건/ 미확인 2건)

개별국보법 사건 총 36건(69년 3건/ 71년 4건/ 78년 2건/ 79년 3건/ 83년 4건/ 84년 2건/ 85년 5건/ 86년 2건/ 87년 1건/ 미확인 10건)



* 표는 89년 민가협에서 작성한 것으로 「천주교조작간첩대책위원회」가 펴낸 자료집에서 재인용 함.
* 당시 민가협에서 파악된 자료에 한해서 정리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