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조작간첩 피해자들의 '절규'

대법원 재심 기각에 항의하는 1인시위 진행 중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고 인권회복을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고 하지만 실제 피해자들 입장에서 보면 거리가 먼 얘기다" 아침 8시 30분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는 목발을 짚은 초로의 남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간첩으로 조작되어 15년의 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이후 10년 동안 재심을 통해 진실을 바로잡으려했던 신귀영 씨. 지난 6월 10일 대법원이 '신 씨 일가 조작간첩 사건'에 대해 재항고 기각결정을 내리자, 신 씨 가족은 다시금 나락으로 추락하는 심경을 맛봐야했다.

'조작간첩'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조작된 간첩이 필요로 했던 시대, '간첩'사건 그 자체는 공포정치를 통해 부도덕한 정권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서슬 퍼런 1980년대 전두환 전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조작간첩' 사건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은 공안기구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연행 돼 40일에서 70일에 이르는 기간동안 고문에 의한 거짓자백을 통해 간첩으로 '만들어진다'. 또 법원은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이들을 '간첩'으로 판결내렸다. 이들은 출소 이후에도 '간첩'이라는 멍에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진실을 밝히겠다며 시작한 신 씨 가족의 긴 여정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씨 가족은 변호인과 함께 '재심'을 통해 잘못된 법원의 판결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세우고 새로운 증거수집과 증인 확보에 나섰다. 재심제도는 확정된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는 것으로, 형사소송법은 재심청구사유로 원 판결의 증거물 등이 위조·조작된 것이 증명되는 경우 등 7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1994년 11월 신귀영 씨는 "(신수영 씨는) 조총련 간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령을 내릴만한 지위가 아니었다"는 신수영 씨(신 씨 친형, 당시 일본 거주)의 진술서를 확보해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또한 경찰의 불법감금과 고문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1995년 7월 1·2심 재판부는 재심을 받아들였으나,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새로 제출된 신수영 씨의 진술서만으로는 무죄를 인정할만한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 없고, 신 씨 등이 주장한 관련 경찰관들의 고문, 감금행위도 별도의 확정판결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신 씨와 변호인은 목격자 박모 씨가 고문으로 위증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다시금 재심을 청구했다. 2001년 8월 부산지방법원은 재심청구를 받아들였으나 부산고등법원은 재심결정을 다시 뒤집었다. 부산고등법원은 2002년 7월 "증언이 확정판결에 의해 허위로 증명된 것이 아니고, 고문이 있었다는 점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며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이어 신귀영 씨는 대법원에 재항고했으나 지난 6월 대법원은 또다시 기각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정재승 변호사는 "대법원이 너무 재심에 대해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어 원 재판 자체가 잘못된 것이 눈에 보임에도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신 씨 역시 "위증한 사람을 법정에 세워 진실을 고백했음에도 또다시 기각시키는 것은 권력의 횡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1인 시위는 대법원의 재항고 기각결정에 대한 항의이며 사법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조작간첩 피해자들의 절규다. 21일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날 '신씨일가 조작간첩 사건'의 가족은 대법원 앞에서 조작간첩의 피해사례를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