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 이야기

평등한 ‘우리’를 구성하기 위해

첫 번째 워크숍에서 세대, 성별로 드러나거나 정체화 되는 최근 흐름들의 이면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격화되어 온 한국사회의 경쟁과 생존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세대, 성별, 학력의 차이를 따라 흐르는 권력과 자원의 문제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나눠지는지 보기 위해 노동세계를 돌아보는 작업을 두 번째 워크숍에서 하게 되었다.

 

노동자가 등장하다

흔히 60~70년대는 산업화 시기라고 한다. 1970년에는 경제인구의 절반이 농어업에 종사하고 13%가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500만 명이 사무직으로 일하는데 1970년 당시 전체 대학생 수가 20만 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공무원을 제외하면 사무직은 찾기 어려웠을 듯하다. 중화학 공업을 필두로 80년대에 경제가 급성장을 하게 되면서 1990년이 되면 농어업에 18%만 종사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폭발적으로 커진다.

이런 자료를 보면서 당시를 상상해보게 된다. 예전만큼 일손이 필요 없어지고, 농사일이 아니면 돈벌이가 없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계속 올라오는 사람들, 공장에선 철야작업이 매일 이어지고 관리자의 폭력 속에서 몸을 상해가면서 일을 한다. 사업은 잘되는지 공장에선 언제나 사람을 구하고 공장은 점점 커져간다. 회사는 점점 번듯해지는데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펜대 굴리는 사무직이 아닌 이상, 어떤 직종, 어떤 기업에서 일하든지 생산직 노동자들을 천대하는 건 똑같았다. 지독한 저임금은 물론이고 형편없는 식당 밥도 원성의 대상이었다.

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다.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학살을 자행했던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일터의 노동자들도 다른 일터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87년 7월부터 9월까지,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3명 중 1명 이상이 파업에 나선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존엄과 권리를 요구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웠다. 그 힘은 날치기 통과된 노동법을 철회시키는 96/97년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노동자가 사라지다

외환위기라는 모습으로 한국사회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를 무너뜨렸다.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며 오로지 이윤논리만 남았고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났다. 경제는 다시 정상화되었지만, 이제 일터는 87년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고 ‘사용’만 하려고 했다. 고용에 따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양한 비정규직이 급증한다. 기간제, 용역, 하청, 파견과 같은 비정규직이 현재 임금노동자의 절반 정도라고 추정된다. 노동자를 ‘사용’만 하려는 자본의 욕구는 더 발전해 많은 노동자들이 개인사업자가 된다. 보험설계사와 같은 판매직뿐만 아니라, 학습지 노동자, 레미콘, 크레인 기사, 택배기사 등이 그렇다. 플랫폼 앱을 통해 연결되는 배달, 운전, 각종 가구방문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모두 개인사업자들이다. 그때그때 주문이 들어올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노동자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노동세계의 이런 변화는 저임금-장시간노동-안전사고와 같은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로 드러났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작게나마 만들어왔던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라는 지향이 노동자 내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촘촘히 서열화된 외주의 연쇄 고리 속에 놓인 노동자들은 서로가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함께 이 사회에서 노동하고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모든 일들은 잘게 쪼개지고, 각자 그 일에 맞는 자격을 갖춘 노동자를 정당화하는 근거들을 찾기 시작했다. 성별, 세대, 인종과 같은 익숙한 차이와 정체성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동원된다. 정당한 차별, 공정함을 내세우며 학력, 시험성적과 같은 근거들이 정의로운 것인 양 주장된다. 더 이상 노동자는 없다. 모두 자기 자리에서 실업과 불안정 노동을 오가며 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경쟁할 뿐이다. 이런 경쟁은 지난 20여 년 동안 변화해 온 산업구조의 변화로 더욱 격화됐다. 제조업 이윤이 전체의 40%를 넘지만 고용은 15% 정도만 하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에 매달리거나 먹고 살만한 일자리가 없어서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수많은 투쟁들, 평등한 ‘우리’를 구성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20여 년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싸움에 나섰다. 그 결과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정규직과의 분통 터지는 차별에 대해 한국사회는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 1호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한 것도 그 성과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난 3년 여 동안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사회는 성별, 세대, 학력과 같은 정체성을 자원삼아 더욱 경쟁적이 되어갔다.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과의 형평성이나 처우개선의 문제로 접근하는 순간 평등한 ‘우리’가 구성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87년에 지역도, 업종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모이고 함께 ‘권리와 존엄’을 외칠 수 있었던 건 공통의 이해와 정당한 가치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렇게 갈가리 쪼개지고 찢긴 노동세계를 만든 힘에 맞서기 위한 공통의 가치와 틀이 필요하다. 이러한 틀이 없고서는 자본의 폭력에 맞서는 몇몇 노동자들의 투쟁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이상의 힘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조각낸 현재의 노동세계에서 노동자들이 공통의 이해와 가치를 만들어내고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언어와 힘을 손에 쥐어야 한다. 자본이 외주화, 프랜차이징의 방식으로 고도의 사회적 분업과 노동을 조직하면서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해체되고 개별화되었다. 외주화의 고리 속에서 개별화되고 위계화된 노동자들이 함께 설 공통의 토대로서 ‘사회적 노동권’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구조를 통해 이윤을 얻는 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우고 그 구조에 놓인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에 이름을 붙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