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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코로나19 대책, 불안정 노동자의 삶을 살펴야 한다

경제 대책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312, 쿠팡에서 새벽 배송업무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료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물량이 과도하게 몰려 발생한 고강도 노동을 고인이 견디지 못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상황이 두 달이 넘도록 이어지면서 한국의 방역을 칭찬하는 말이 무색하게 쓰러지는 노동자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321일 정부를 대표해 국무총리가 나서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선 사회적 멈춤을 제안했다. 앞으로 2주간 모두가 잠시 멈춤으로써 코로나19의 확산세를 확실하게 잡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정부의 말처럼 2주간 멈춘 뒤,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방역의 성과 이면에 불안정 노동자가 있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 방식이나 단시간 안에 대량 검사가 가능한 키트 등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 사회의 방역 역량은 이미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효율적인 검사 도구가 그 자체로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아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방역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공동체에 있다. 코로나19의 국내 발생 이후 두 달은 공중보건 분야의 책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모든 사람의 일상에 깊숙하게 침투해 들어온 시간이기도 했다. 지역사회 전파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지역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이동을 최소화 했다. 전국에서 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일터의 풍경이 달라졌으며, 학교는 문을 닫았다. ‘힘내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단지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았으며,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일상의 변화를 실천해왔다.

 

문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에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급 휴직을 강요받아 아슬아슬하게 생계를 유지해오던 공항의 파견 노동자는 결국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 나날이 지속되자 문화, 예술, 체육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생계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보수 언론은 물류 업계 호황을 말하지만 앞서 언급한 쿠팡 노동자를 포함하여 택배, 배송 노동자는 고강도의 노동으로 쓰러지고 있다. 최근 발생한 집단 감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콜센터 노동자들은 좁은 사업장에서 자기 마음대로 벗어나지도 못한 채 노동을 이어간다. 여기에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내는 일용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까지 떠올려볼 때 사회적 거리두기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지금 한국 방역 대책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 이는 생존의 위협을 견디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력을 딛고 만들어낸 결과다.

 

경제 대책이 향하는 곳

 

지금까지 나온 정부 대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포함한 방역 대책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대책이다.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멈춰 세우면서 경제위기도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과 경제 둘 다 대책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불안정 노동자의 생존이 가장 먼저 위협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책도 이들을 향해야 하지만, 지금 정부의 경제 대책에서는 불안정 노동자의 생존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317일 국회에서는 11.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됐다. 곧 이어 정부, 노동계, 재계가 모인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50조 규모의 비상금융조치를 예고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2차 회의를 거치며 100조 규모로 늘어났다. 엄청난 규모의 돈이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 와중에 핵심 메시지는 유동성 문제로 쓰러지는 기업이 없도록 하겠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민생대책 차원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지원한다지만, 민생 지원을 통해 내수를 진작시켜 기업을 살리겠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이 틈을 타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인세 인하와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무력화 방안 등을 국회에 건의하며 경제위기를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경제가 위태로울 때 기업을 살리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 기업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을 매개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무너지면 그 파장을 결국 공동체가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방향성을 확인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경제 정책의 방향성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기업 지원에 전제를 다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일방적으로 용역·하청·파견노동자와의 계약을 해지하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기업은 지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자. 지금 국가에서 기업을 지원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전체 공동체의 안녕을 위함이다. 이 관점을 공유하지 않은 채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고, 지원을 기회삼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기업에게 그 계기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는 이미 98IMF 구제 금융 위기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현재 이탈리아나 중국이 한국보다 더 어려운 방역 위기를 겪으면서도 노동자 해고를 금지한 이유도 같을 것이다.

 

또한, 기존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불안정 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사회 전체 취업자 약 2700만 명 중에 상용직 노동자는 절반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일용직과 임시직, 자영업자와 그 가족,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로 구성된다. 게다가 상용직 노동자는 일부 계약직과 파견업체 소속, 하청업체 소속을 포함하기 때문에 불안정 노동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전체 취업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휴업수당이나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지나치게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기 위한 방법은 많다. 고용관계를 증명해야 지급하는 실업급여의 문턱을 낮춰서 특수고용노동자나 문화예술계 노동자 등이 부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고, 고용유지 지원금의 대상에서 배제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 하는 방안도 있다. 중요한 것은 1회성 지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존 제도의 범위를 넘어서는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사각지대가 지나치게 넓은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긴급 생계 지원 역시 늦지 않게 실행하자. 현재 민생대책의 이름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1회 또는 2회에 걸쳐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범위와 금액 등은 더욱 논의가 되어야 하겠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현금을 지원하려는 대책인 만큼 신속하게 집행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지원에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서민 살리는 해법부터 경제 죽이는 포퓰리즘까지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정기성이 핵심인 정책으로 단기 지원 정책과는 전혀 다른 제안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긴급한 생계 지원을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신종 감염병 위기는 반복해서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지배적이다. 매번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것일까. 이미 수많은 재난 피해자들은 재난 이후의 회복은 원상복구가 아니라 재난 이후의 사회를 재조직하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재난을 통해 드러난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을 때 재난 이후의 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불안정 노동자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현재 경제 정책이 전혀 살피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이들의 불안정함을 증폭시켰을 뿐이다. 다시 찾아올 위기를 떠올린다면, 현재 논의중인 코로나19 대책은 같은 어려움을 앞으로 반복하지 않기 위한 고민을 담아야 한다. 2015년 메르스 이후 한국 사회가 방역 역량에 있어서 더욱 성숙해졌다면,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코로나19 대책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위기를 버텨내는 사회를 넘어 누구도 탈락시키지 않고 함께 생존을 모색하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