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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열자!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를!

집시법 11조는 개정 아닌 삭제해야

7월 24일 국회에서 집시법 11조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문을 준비하며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처음 청와대 100미터 앞에 다다른 날 “그토록 오고 싶었고,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수모를 당했다”던 세월호 가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은 금지통고를 반복했고, 매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법원의 ‘허용’으로 길이 열렸다. 청와대로부터 900미터, 400미터, 200미터, 그리고 100미터 앞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 광화문 거리였다. 몇 겹의 경찰버스와 경찰병력들에 가로막혔고, 이에 항의하며 맞서는 사람들에겐 물대포와 최루액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이곳에서 우린 백남기 농민을 잃기도 했다.

물대포 추방과 차벽 금지, 그리고 어디서나 자유롭게 집회를 열 수 있도록 관련법들을 바꾸기 위해 2017년 ‘광장을 열자!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자!’ 입법청원을 했었다. 그중 하나가 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시법 11조의 삭제였다. 그리고 작년 5, 6, 7월 헌법재판소는 각각 국회의사당, 국무총리 공관, 각급 법원에서의 집회 금지에 대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냈고, 국회는 올해 말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헌재 결정이 날 때마다 해당 장소에 대한 개정안들이 발의되었고, 헌재 결정 전 발의됐던 개정안 2건을 포함해 현재까지 집시법 11조 개정안은 9건이다. 그런데 헌재 결정 이후 발의된 개정안들 대부분은 기존의 원칙적 금지 규정을 유지하면서 ‘조건’에 따라 예외적 허용 사유를 두는 방향이다. 예외적으로 집회가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은 해당 기관의 기능이 보호되고, 대규모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소규모일 경우로 요약할 수 있다.

 

‘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이 집회의 자유일 수 없다

 

집회 ‘장소’의 의미는 물리적 공간 이상이다. 집회는 그저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것만이 아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모이는 집단적인 의사 표현 행위다. 말하는 행위는 듣는 행위가 동반될 때 의미가 있다. 말하는 대상이 보이고 들릴 수 있는 곳에서 집회를 할 때 그 효과가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집회 장소가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하지만 집시법은 집회의 자유를 권리로 보장하는 법이 아니라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11조 금지 장소 외에도 10조 금지 시간, 12조 교통소통을 위한 제한 등 집시법에는 집회를 금지하고 제한할 수 있는 조항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규정들이 당연한 권리를 특권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2016년 방한했던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집회의 일시 및 장소에 대해 일률적 금지를 방지하도록 집시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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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발의된 집시법 11조 개정안 다수의 방향은 집회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과 여전히 배치된다. 해당 장소들에 대한 집회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지, 집회의 규모와 내용에 대한 공권력의 해석과 적용에 따라서 집회가 불허되거나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에 대해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과 어긋나는 것으로 사실상 집회를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용되도록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앞서 위헌결정을 받아 예외적 허용 사유가 도입된 외교기관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외교기관/외교사절 숙소의 경우, 2003년 위헌결정 이후 예외적 허용 사유 도입으로 해당기관의 기능이나 안전을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해당기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소규모이거나, 휴일 개최)에는 집회가 허용된다. 하지만 미대사관, 일대사관을 떠올려보자. 외교기관 앞에서 집회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집회를 열기까지는 늘 공권력과의 실랑이를 반복해야 한다. 집시법 상 신고대상이 아님에도, 지금도 미대사관 앞 1인 시위는 자유롭지 못하다. 1인 시위자가 강제이동 되었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집시법 11조를 이유로 집회 금지통고가 난 장소들 중 외교기관의 사례들을 보면 예외적 허용이 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외교기관의 본국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것만으로 무조건 해당 기관의 기능이나 안녕이 침해될 것이라는 게 공권력의 판단이었고, 365일 근무체계로 업무를 한다거나 외교기관으로부터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공휴일에도 집회는 반복적으로 금지됐다.

형식적으로 예외적 허용 사유를 두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해석과 적용이라는 더 많은 권한을 공권력에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권력기관들을 ‘집회 금지 성역’화 해온 집시법 11조의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문제제기가 있었다. 예외적 허용 사유는 실질적인 집회 보장의 의미가 없다. 여전히 권력기관들을 집회로부터 성역화하며, 그 특권을 보호하는데 뒷받침될 것이기 때문이다.

 

집시법 11조 삭제를 위해

 

토론회에 붙여진 제목은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였다. 집회가 금지/제한되는 장소들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지는 권력기관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권력기관들이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집회를 연다. 집회의 자유를 거리에서의 표현의 자유라고 이야기하고, 말할 권리로 이야기하는 이유다. 권력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해야 하지만, 집시법 11조는 이들 권력기관을 집회로부터 원천 ‘분리’시키면서 집회의 의미를 퇴색시켜왔다. 말할 권리는 곧 들릴 권리다. 집회의 대상이 되는 기관들의 들을 의무가 동반될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올해까지 개정시한인 집시법 11조가 국회 상황에 따라 별다른 이슈도 되지 않고 문제적으로 개정될 수 있다.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은 집시법 11조 삭제를 위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지난 5월 집시법 11조 유죄판결을 받았던 당사자들과 진행한 재심 청구에 대해 개시 결정이 나서 곧 재심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 대응을 하면서 집시법 11조의 문제를 알릴 것이다. 더 많은 시민사회의 목소리로 국회에 집시법 11조 폐지를 촉구하는 활동도 이어갈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화해온 집시법의 역사를 살피면서 11조 삭제만이 아니라 집회를 불온시하며 관리와 통제를 위해 작동하는 집시법의 전면개정 필요성이 토론회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집회의 자유 틈새가 더 넓어진 것 같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공권력과 권력기관의 ‘선의’에 기대는 집회의 자유를 권리라고 할 수 없고, 권력에 의해 언제든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다. 집회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시작점이 집시법 11조 삭제가 되도록 해야겠다.

 

*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 – 집시법 11조 토론회> 전체 자료집은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 : www.sarangbang.or.kr/writing/72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