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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미신고집회’, 집회에 채우는 수갑] 독일 집시법 운영을 통해 살펴본 한국의 대안

집회시위 보장 위해 경찰은 규제보다는 실질적 협력 의무에 나서야


한국 헌법 제21조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실적주의와 무관용 원칙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경찰은 1인 시위, 기자회견, 플래쉬몹, 문화제 등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표현행위에 대해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처벌하고 있다. 또한 집회 전 신고가 어려울 수 있는 긴급집회마저 ‘불법집회’나 ‘공공안전’이라는 이유로 사법처리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한국은 독일과 유사한 집시법 구조를 갖고 있으나 독일 경찰은 보다 유연하게(?) 집회시위에 대응하고 있다.

독일 법원,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도 해산할 수 없어

독일연방기본법은 “모든 독일인은 신고 또는 허가 없이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전제하고 있다. 독일연방기본법에 위반된다는 논란 가운데 독일 집시법도 ‘신고의무’를 정하고 있다. 헌법 정신에 부합하기 위해 독일연방법원은 사전신고제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집회 주최자와 경찰 간 ‘협력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독일연방법원은 “공공안전과 질서유지에 직접위험을 야기할 때”만 집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집시법을 해석하고 있다. 독일 집시법이 미신고집회 주최자에 대해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독일 법원은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행정기관이 집회를 해산할 수 없도록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헌법 21조에서 집회에 대한 허가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집시법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신고의무를 강제하고, 다양한 금지통보를 통해 내용적인 사전 검열을 정당화한다. 집회 신고를 해도 집회의 내용이 △공공질서 위협 △보완불이행 △장소경합 △생활평온 침해 △학교시설 침해 △군사시설 주변 △금지시간 △금지장소 △교통소통 등 따라 경찰서장의 금지통보가 가능하다. 신고했다고 해서 경찰이 모든 집회를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경찰이 허가하지 않은 집회나 신고되지 않은 집회는 해산명령의 대상이 되며, 해산명령에 불응하면 사법처리 된다. 한국의 경찰은 집시법을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운영하기보다는 매우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적용해 다양한 표현들을 규제하고 있다.

2009년 5월 4일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촛불 1주년 기념행동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200명 넘게 연행한 것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경찰청 앞에서 열었다. 경찰은 기자회견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석자 중 일부를 연행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보다 많은 경찰을 볼 수 있다.

▲ 2009년 5월 4일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촛불 1주년 기념행동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200명 넘게 연행한 것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경찰청 앞에서 열었다. 경찰은 기자회견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석자 중 일부를 연행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보다 많은 경찰을 볼 수 있다.


한국 경찰, 집회시위 보장을 위한 의무 등한시

미신고집회에 대한 사법처리도 집회시위의 ‘보장’이 아닌 ‘규제’로 분류할 수 있다. 장소 경합 역시 실제 경찰이 협력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경찰청으로부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집시법 사유별 집회금지 통보 현황’에서 장소경합은 주요한 금지통보 사유에 해당한다. 경찰이 ‘장소경합’을 이유로 2008년에 불허한 집회는 140건, 2009년엔 190건, 2010년엔 237건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장소경합의 경우 실제로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에 두 개 이상의 집회가 열리는 경우도 있지만, 일명 ‘유령집회’로 인해 실제 필요한 집회들이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집회를 ‘유령집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노동자들의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사측이나 용역이 미리 집회신고를 해놓고 정작 집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유령집회’로 인해 실제로 집회를 통해 표현을 하려는 사람들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지만, ‘유령집회’를 솎아내지 않고 먼저 신고만 하면 허가해주는 경찰은 표현의 자유 침해에 수수방관이다.

이에 반해 독일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집회를 ‘탄압’하는 행정기관이 아니라 집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3월 28일 학술발표에서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문병효 교수는 “집회주최자는 물론 경찰도 평화로운 집회 진행에 기여해야 하는데, 협력은 ‘금지와 해산’이라는 극단적 개입보다 더 평화로운 수단으로써 헌법에서 인정된다. 이 과정에서 집회주최자에게 협력은 ‘의무’가 아니라 ‘책무’일 뿐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집시법 상 신고제가 금지통보와 맞물리면서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은 3월 28일 학술발표에서 모든 발표자들이 공동으로 지적했다. 신고제 자체의 속성이 현실에서는 검열기제로 작동되기도 하지만, 신고제를 폐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고 신고제가 인권보장을 위해 기능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시각도 제시되었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신고제는 ‘규제’와 ‘보상’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는 “사전신고를 통해 경찰이 주변 교통을 정리할 수 있는 ‘규제적 조치’이면서 동시에 집회 주최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기능을 할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인데, 한국 경찰은 지나치게 ‘규제’ 기능만을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시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현행 집시법을 어떻게 고쳐야할까? 학술발표에서는 하나의 대안이 제시되기보다는 다양한 비판과 주장들이 나왔다.

먼저 배제대학교 법학과 김종서 교수는 △평화적 집회를 적법한 집회로 둔갑시키고 있는 집시법의 기본적 목적이 전면적으로 폐기되고, 집회의 보호를 위한 규범으로 재구성 △집회의 평화성이 유지되는 한 어떤 법적 규제도 가하지 않음 △집회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사전적으로 금지될 수 없으며,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집회의 자유의 행사로 인하여 공공질서에 대한 위협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이고 개별적인 처분에 의하여 진행 △옥외집회의 신고제는 유지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정상의 협조에 그쳐야 하고 어떤 이유로도 집회 금지의 도구가 되거나 집회 자체의 합법성 인정을 위한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됨 △ 신고불이행에 대한 제재는 협조의무 위반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행정질서벌의 형태를 띠어야 하며 범죄화할 수 없음 등을 제시했다.

또한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오동석 교수는 “우리가 ‘미신고집회’ 같은 집회에 대한 세세한 규정에 맞춰서 집회를 개최하다보면 결국 집시법 안에 갇히게 되고 개선활동을 벌일 수 없을 수 있다. 명백하게 공공질서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데 신고를 한다는 자체가 문제이며, 신고제 자체를 개혁하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유사한 집시법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법부가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독일처럼, 한국도 헌법재판소가 집시법에 대해 법률에 의한 제한가능성(법률유보조항)을 인정하되,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을 기대하는 대안이 제기되었다. 또한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만으로 해산명령을 할 수 있는 조항도 위헌을 제기해보자는 주장도 나왔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뿐만 아니라 1,2심 재판부에서도 진보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경찰이 ‘협력 의무’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자는 제안도 제시되었다.

이번 학술발표에서 발표자들은 집시법이 집회시위를 규제하는 법이 아닌 보장하는 법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현행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없애고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협력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있었다.

자유를 법으로 규율할 수 없다

지난 2010년 6월 30일 집시법 10조(야간집회금지)가 시효 소멸되던 날,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집시법 10조가 사라지면, 한국이 무법천지가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 밤거리 치안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야간에 집회를 금지시켰던 집시법 10조의 영향이 지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집시법 10조가 법적인 효력이 상실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야간집회로 인해 어떤 폭력행위나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자유를 법으로 규율할 수 없다. 신고의무도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신고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집회시위가 가능하다는 발상과 실천은 우리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줄 수 있다. 다양한 상상력의 힘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넓히자.


* [기획: ‘미신고집회’, 집회에 채우는 수갑]은 이번 기사로 마무리합니다. 실천으로 독자들과 만나겠습니다.
덧붙임

준혁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