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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공권력 ‘우려’ 따라 집회가 허가되거나 금지된다고?

집회 허가제를 만드는 집시법 11조 개정 문제

코로나19의 중요한 방역대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그러다보니 ‘집회 금지’가 당연한 조치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3월 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집시법 11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 조항인 집시법 11조 중 2018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국무총리공관 앞 100미터 이내에서의 집회에 대해 예외적 허용 규정을 신설하는 안이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개정시한인 2019년 12월 31일을 경과하면서 해당 장소에서의 집회 금지 규정은 효력이 상실된 상태였다. 2015년 민중총궐기 살인 물대포로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며 집회 탄압법인 집시법 개정을 촉구해왔다. 집시법 11조를 삭제하는 입법청원도 진행했다. 이후 5년이 흘렀고, 그 사이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어졌다.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입법활동을 할 의무가 국회에 있지만, 그동안 집시법 11조에 대해 어떤 논의도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민생국회가 열린 틈에 갑작스럽게 집시법 11조 개정안 처리를 시도한 것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해당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고,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다면 예외적으로 집회를 허용해준다는 것이다. 원천적 금지 조항으로 아예 집회를 할 수 없었던 것에서 이렇게 조건부로라도 집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언뜻 보면 이러한 개정은 ‘개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개정안은 헌법 위 집시법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집회허가제와 같은 집시법 11조 개정안

국회, 법원, 총리공관이라는 권력기관 앞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집회는 다음의 두 가지 ‘우려’를 불식해야만 한다. 먼저 해당 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어야만 한다. 그런데 무엇을 기능과 안녕을 침해한다고 볼 것인가? 무엇을 침해로 규정할 수 있는지 모호한 상태에서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고 집회를 하려면, 집회로 인해 해당 기관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만 한다. 이는 결국 집회의 내용이 무엇인지, 집회의 성격이 어떠할지 미리 검사를 거쳐야만 비로소 집회 가능 여부가 결정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어야만 한다. 몇 명이 모이면 대규모일까? 천명? 만 명? 다수의 사람이 공통의 의사 표현을 목적으로 모이는 것이 집회이고, 사안에 따라 집회 규모는 다를 수밖에 없다. 대규모여도 평화로운 집회를 해온 숱한 경험들도 있다. 그럼에도 규모로 단순화 하는 건 공권력의 집회 관리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집회가 반드시 ‘작은 규모’로 ‘조용히’ 이루어져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외적 허용 조건의 신설이 그간 완전하게 닫혀있던 ‘문’을 일부나마 연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을 열고 닫는 것은 공권력의 판단에 달려있다.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과 별개로 공권력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집회는 금지된다. 헌법이 금지하는 집회 허가제와 사실상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미 2003년 위헌결정으로 예외적 허용 규정이 신설된 외교기관 앞에서의 집회 사례를 보면 이는 우려에만 그치지 않는다. 외교기관 앞 집회신고에 대해 경찰은 각종 ‘우려’를 이유로 금지통고를 남발해왔다. 국회는 예외적 허용을 통해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안녕 사이에 조화를 모색한다고 개정 취지를 밝히지만, 그 혀용 여부를 공권력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어떤 ‘우려’인지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가 금지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집회의 자유 운동을 고민하며

집시법 11조 개정안은 행안위를 통과하고 이제 법사위로 넘어갔다. ‘쟁점’법안도 아니고, 국회 앞에서의 집회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하는데 집시법 11조 개정안은 여야 할 것 없이 반기는 입장이다. 그렇다보니 총선 이후 국회가 열린다면 집시법 11조 개정안은 언제라도 쉽게 통과될 수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태극기집회로 매주 시달려왔던 이들에게 지금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집회 금지 조치는 반겨지기도 한다. 앞으로도 집회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그렇다보니 언뜻 보면 ‘개선’ 같은 집시법 11조 개정 시도에 대해 어떻게 문제를 알려 가면 좋을지 고민된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을 해나가는 게 어렵고 곤혹스럽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 오히려 차분히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에서는 얼마 전 한국사회에서 집회의 자유 운동을 되돌아보고, 보수집회나 혐오집회로 최근 새롭게 드러난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최초의 집시법은 단3개 조항으로 이루어져있었다고 한다. “집회와 시위를 할 때 사전신고를 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벌금 부과한다.” 이렇게 단출했던 집시법은 군부독재를 거치며 ‘집회금지법’으로 변모해왔다. 각종 금지와 제한을 규정하는 조항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지금의 집시법의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87년 항쟁 이후 민주화 흐름과 함께 전면개정으로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집시법에는 집회를 금지하고 제한하는 규정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이후 몇 번의 개정으로 더 확대되기도 했다. 정권을 막론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언제나 탄압의 대상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평화적 집회 문화 정착’이라는 기만적 이름의 집회 통제정책이 있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현장에선 물리력을 동원하여, 사후에는 사법처리를 통하여 탄압이 이어졌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던 집회 관련 이슈들이 이제 등장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경찰청은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을 내놓았다. 이전과 같이 대놓고 탄압하는 게 아니라 소음이나 주변 지역민들의 민원 등을 이유로 한 덜 노골적인 방식의 집회 통제와 관리 정책을 펼쳐갈 것이다. 집회의 자유를 둘러싸고 싸워야 할 대상이 국가가 아닌 경우도 늘어가는 상황이다. 그간 해왔던 집회의 자유 운동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문제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전환기 같다.

집시법 11조 폐기를 시작으로

이번 워크숍 자료를 준비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지금의 문제적 집시법을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금지나 제한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 집회금지 장소 조항인 집시법 11조 또한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집회를 탄압하기 위해 특히 권력기관들 앞에서의 집회를 금지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이 또한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해왔다. 예전에는 금지 장소에 시청, 도청도 있었는데, 이렇게 일부 장소들은 규정에서 빠졌다. 금지 범위 또한 200미터 이내에서 100미터 이내로 바뀌었다. 권력기관을 성역화해온 집시법 11조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집시법 11조가 없어지면 혼란이 올 것처럼 호도하지만, 그것은 권력기관의 두려움일 뿐이다. 그리고 집회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무수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결정하고 법을 만드는 이러한 권력기관들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함이다. 집시법 11조는 이러한 권력기관으로부터 집회를 떼어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가야 할 길이 달라진다. 집시법 11조에 대한 대응은 집회의 자유가 무엇이고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기만적인 집시법 11조 개정은 오히려 헌법 위 집시법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권력기관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집시법 11조는 폐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