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남성문화에 면죄부를 줬다

'장자연 사건' 누가 진상규명 불가능을 말하는가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2009년 3월, 자신의 성접대 피해 사실을 정리한 문건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故 장자연.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2019년 5월 20일 '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과거사위는 당시 접대 강요가 있었다고 볼만한 여러 사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기소처리 했다는 점, 주요 증거들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통화 내역 원본 및 디지털 포렌식 분석 기록이 누락된 점 등에 비추어 검찰과 경찰이 부실하게 수사했다고 발표했다. 수사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실 또한 인정했다. 하지만 '故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하며 이번에야 말로 진상이 규명되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을 황당하게 하는 것은 이 진상 조사의 결론이다. 술접대 행위 및 폭행·협박 등의 피해 사례는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하면서도, 술접대·성상납 강요는 공소시효 등의 사유로 수사 권고를 하기 어렵다고 결론내린 것이다. 무엇보다 핵심 의혹이었던 성접대와 연관된 성범죄(특수강간이나 강간치상) 혐의에 대해서도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권고하지 않았다.

재조사를 가능케 한 힘

과거사위 재조사 결정이 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저절로 흐른 것은 아니다. 10년 전 사건을 다시 꺼낼 수 있게 한 힘의 중심에는 계속 싸워온 여성단체들이 있었다. 수사 의지가 없는 검찰과 경찰을 규탄하면서 진실을 다시 규정하기 위한 '故 장자연 사건 시민법정'이 열렸다. 제2의 장자연 사건을 막기 위해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가 생겼고, 인권지원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연예산업 내 연예인 인권 침해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에게 대책을 요구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故 장자연 씨의 술자리 참석이 장씨의 자유로운 의사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의미를 알리며 끊임없이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리고 #OO계_내_성폭력과 #미투 운동의 파도 속에서 2018년 3월 '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여성연예인에 대한 성접대 관행을 가십이 아닌 여성 인권에 대한 침해이자 노동권 보장의 문제로 설정하기 위해 끈질기게 싸워온 운동. 그리고 피해자라는 위치가 구조적인 남성권력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 대중의 용기 있는 움직임. 이것이 10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故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응답할 책임이 있는 과거사위는 이 힘과 열망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도, 역량도 없었다. 오히려 정치․경제․언론 권력이 자행해 온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의 구조를 유지하고 더 공고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일상에서 직면하는 남성문화

미투 운동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제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은 장자연 리스트-김학의-버닝썬 사태를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혹은 유력인사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에 여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장자연 씨가 처했던 바로 그 위치와 조건에서 어떤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경제․언론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행하는 성적 착취와 폭력이 관행으로 정당화되는 현실은 단순히 권력집단의 특수한 범죄가 아니라 이미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일상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바라볼 수 있는 몸으로 존재하라는 강요, 남성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성적 본능이 있고 그것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의 존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통념, 그래서 여성의 의사와 무관하게 남성에게는 섹스 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 바로 여성들이 경험하는 남성문화이다.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그 애는 단지 섹스의 대상이니까", "(여중생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임신한 여자 선생님들이 섹시했다"는 내용을 책에 버젓이 실은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비판은 여성을 재화로, 섹스를 성과로 여기는 남성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10대 남성들이 남성성을 획득하는 통과의례로서 여성의 몸을 공유하는 관행, 군대 가기 전에 진정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며 '총각 딱지'를 떼기 위한 과정으로 성매매를 독려하는 관행, 작업주(酒)로 여성을 취하게 하고 '작업'(강간)에 동참하기를 요구하는 관행, 단톡방에서 같은 반‧과‧학교‧직장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품평하며 '그냥 줘도 안 먹는다', '봉지 씌우고 먹는다'와 같은 대화를 나누는 관행. 미투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장소가 직장, 대학, 학교와 같은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남성들의 폭력이 여성들의 삶에서 얼마나 일상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을 대상화함으로써 남성성을 인정받고 남성연대를 형성하는 문화는 이처럼 강간을 미화하는 태도를 통해 지속된다. 이러한 남성문화가 '관행'으로 일상화되고 용인된 사회일수록 여성은 성적 착취에 노출되기 쉽고, 피해를 입었어도 말하기 어려운 구조가 유지된다. 미투는 성희롱‧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 개인의 행위이지만, 미투 운동이 집단으로 표출된 배경에는 바로 일상적인 남성문화라는 '구조'가 있다. 2017년 스웨덴에서 #tystnadtagning(침묵행동)이라는 해시태그로 미투 운동을 시작한 여성들이 "구조는 어떠한 가해자보다 더 큰 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 구조를 문제 삼지 않는 이상,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폭력은 언제나 남녀 간의 사적인 이야기로 분산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남성문화에 면죄부를 준 과거사위

하지만 남성들은 한국 사회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과 언설, 성적 자유와 권리로 포장된 강간 문화, 성희롱과 성폭행에 얼마나 관대한 사회인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 또한 알고 있다. 모든 종류의 성적 폭력에 지나치게 관대한 문화가 규범으로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는 자신의 직장, 대학, 학교에서의 일상이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한 구조 안에서 동등한 인권을 가진 주체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간극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성폭력 없는 세상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행동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고, 심지어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피해들은 여전히 의심과 비난에 시달리고 가해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고 사회의 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과거사위의 결과가 문제적인 이유는 '故 장자연 사건'과 같은 권력형 성범죄에서 남성의 젠더권력을 '권력'으로 볼 수 있는 의식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학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해 남성들이 여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젠더권력은 비가시화 된 채로 특권층의 비리 정도로만 여겨진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될 때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및 폭력은 불가피한 일이나 부차적인 일로 취급되고, 남성문화가 정당화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거사위의 결과는 남자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허용하는 구조가 여전히 공고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남성권력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렇게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가장 관대한 처분을 약속한 결과를 낳았다.

연일 장자연 리스트-김학의-버닝썬 사태로 이어지는 남성권력의 카르텔을 보고 있자면 쏟아지는 부당한 소식에도 어느 순간 놀라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불이익과 의심,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여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용기에 감화 받으면서도,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하다. 성폭력이 피해자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듯이,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역사적인 순간에도 사람들이 절망이나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 역시 피해자들이 취약하기 때문은 아니다. 미투를 외치기 위해 손을 든 사람들은 아직 손을 내리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은 너무 쉽게 피해자들을 지워버리고, 우리를 대표하라고 뽑은 정치인들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 등 돌리기 때문이다. 과거사위처럼 정의를 밝혀야 할 집단이 부정의를 수호하는 집단이기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피해자의 취약함이 성적 착취와 폭력에 대한 동의로 여겨지고,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현재의 남성문화를 관철시키는데 가장 깊게 연루된 집단을 규명하고 처벌하는 일은 바로 그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이 없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건은 반복될 뿐 아니라, 미투를 외친 여성들이 변화시키고자 했던 구조와 문화의 일부도 건드릴 수 없다. 여성들의 현실은 여전히 '별 거 아닌 일'로, 오래 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일로 남게 될 것이다. 

진상규명은 시작도 못했다

과거사위가 발표한 결과는 사건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다가 과거사위에 조사 결과를 제출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성범죄에 대한 유력한 진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황과 증언을 확보하고 수사 개시 여부를 검찰이 판단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을 전달했지만, 과거사위가 이를 결과 발표에서 묵살․왜곡했다고 주장한다. 과거사위는 사실과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상을 규명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권력형 성범죄를 조사할 수 있는 시각과 의지가 없을 뿐이다. 다시 '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특검을 실시하고, 지목된 혐의자들에 대한 재수사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증거자료를 의도적으로 누락, 은폐한 정황을 통해 사건 자체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큰 만큼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과 경찰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법적 처벌이 어렵다고, 재수사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며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누가 말하는지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장자연 씨를 고통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했던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을 비호해온 사람은 누구인지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검찰 내 조직문화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2010년과 2018년은 같지 않다. '故 장자연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유력인사들뿐만 아니라 사건을 부실수사로 축소․은폐했던 검찰까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던 2009년과 2019년 현재는 또 다르고, 다를 것이다. 운동은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은 미투를 외치고 지지하기 위해 들었던 손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