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평등해야 안전하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인근 건물의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보도된 후 SNS를 통해 순식간에 소식이 전해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고 분노했습니다. 언론이 ‘강남역 묻지마 살인’이라고 이름 붙이며 보도를 이어갈 때,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포스트잇들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살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낯설지 않다

 

어쩌면 강남역 살인사건은 새로운 사건이 아닙니다. 2012년, 수원시 팔달구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습니다. 범인은 피해자와 “집 앞에서 어깨가 부딪혀 시비 끝에 집으로 데려가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를 받았지만 주소를 묻는 질문만 반복했고(이 대목은 어쩔 수 없이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신고를 받은 해경이 위도와 경도를 묻는 질문만 반복하던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화는 결국 끊겼습니다. 녹취록 말미에 한 경찰의 “부부싸움 같은데”라는 말도 남았습니다. 이 사건은 ‘오원춘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용의자는 조선족이었고 사건의 배경은 ‘외국인과 외지인 등 인구 유입이 많다는 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이후 조선족에 대한 인종혐오가 확산되었고 수원시는 ‘Any Call’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시민들이 외국인을 감시하여 미등록 체류를 적발하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번 강남역 사건에서도 경찰은 피의자의 정신질환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신의학 전문의들이 나서서 조현병이 범죄율을 높이지 않는다고 편견을 멈추라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정신질환자 강제입원(행정입원) 등의 조치를 쏟아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조기 발견해서 치료 받도록 해야 한다는 계획도 나왔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시민들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정신질환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경찰에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낯익지 않다

 

이런 점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은 새로운 사건이기도 합니다. 여성의 안전에 대해 여성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건이었으니까요. 잔혹한 여성?아동 살해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자신이 문제의 해결자인 양 대책들을 쏟아냈습니다. 10년 가까이 대책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CCTV를 늘리겠다,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발찌도 채우고 보호감호도 하겠다는 등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들이었습니다. 왜 여성이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지 제대로 묻지 않은 채 사람들의 분노를 배경 삼아 형벌권만 강화했습니다. 당연히 문제는 지속되어왔고요. 그러나 이번엔 달랐습니다. 살아남는 것을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함께 행동하며 죽음으로부터 여성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만 구한 것이 아닙니다. 유사한 사건들에서 정부는 가해자의 소수성을 문제삼고 해당 집단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문제의 틀을 설정해왔습니다. 외국인이거나, 정신질환자거나, 노숙인이거나, 가난하고 불행한 청년이거나, 마치 가해자들의 특성 자체가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했던 것입니다. 인권운동은 정부의 이런 대책들을 줄곧 비판해왔습니다. 시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수감자나 전과자의 인권을 후퇴시키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며 단속이나 퇴거를 정당화하는 대책들에 인권의 이름으로 항의해왔지요. 하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쳤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벽이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만든 벽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지목하는 ‘위험’에 이미 시선이 쏠려버린 시민들은 인권단체들에게 오히려 항의했습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중요하냐?” 과거에 비추어볼 때 이번은 분명 달랐습니다. 정신질환으로 문제를 몰아가려는 정부의 언설에 사람들이 쉽사리 동조하지 않았지요.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자 여성과 소수자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평등해야 안전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다 아니다 논쟁도 많았고, 남성이 문제다 아니다 말들도 많았습니다. 정답이 따로 있다기보다, 이런 질문을 사회적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여성혐오는 여성에게 어떤 위치를 강요하고 있는가, 여성혐오사회에서 남성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여성혐오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데 인권운동은 여성혐오에서 한 발 더 나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이유들로 인권운동은 ‘안전’에 관해 선뜻 말하지 못해왔습니다. 정부는 안전을 들먹이며 각종 인권억압 정책들을 밀어붙였고, 안전을 말할수록 시민들은 타자의 인권에 냉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거니와 안전산업 육성 운운하는 정부의 대책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권리로 안전을 말해야 했습니다. “더듬더듬 길을 찾아” 가면서 올해 4월에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선포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린 풀뿌리토론에 참여한 시민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구나 바라게 된 ‘안전 사회’가 여성에게도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지난 6월 인권운동장은 <평등해야 안전하다>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차별이 우리를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는 반차별의 시선으로 되짚어져야 합니다.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의 주체로서 말하기 시작한 이번 사건이, 모두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큰 걸음 하나를 내딛은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