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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미세먼지, 가해자와 피해자는 있다

국가기후환경회의, 무엇을 할 것인가

4월 29일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출범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별 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자 정부와 민간 위원 42명으로 구성된 '국가기후환경회의'를 구성해 범국가적 해결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기문 위원장은 출범식에서 '미세먼지 문제는 이념도, 정파도, 국경도 없으며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발언으로 첫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연일 보도되는 대기업 공장들의 배출가스 조작사건들, 야외활동을 자제하라지만 밖에서 일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 공기청정기와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려 신난 기업들까지, 정말 미세먼지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가?

미세먼지, 어느덧 6년

미세먼지는 어느 순간 갑자기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없었던 미세먼지가 새로 생긴 건 아니다. 그 간의 자료를 보면 미세먼지는 첫 측정이 시작된 1995년부터 2012년까지 꾸준히 낮아졌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가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면서 언론보도가 급증했다. 마침 그 즈음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더 이상 낮아지지 않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흐름의 변화와 정체는 고농도 미세먼지 일수를 증가시켰다. 2015년부터 초미세먼지가 측정되기 시작했다. 2016년 6월 정부는 미세먼지 특별대책을 수립하지만 환경부의 고등어 구워먹지 말라는 발표에서 보듯이 정부대책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6년여가 흐른 지금, 한국사회는 적응 아닌 적응을 하고 있다. 바람과 기온이라는 계절적 특성에 따라 겨울과 봄철에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사람들은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로 무장해서 버티고, 정부는 재난이라며 문자 보내고 이런저런 임시방편대책들을 내놓는다. 기업들은 미세먼지 관련 상품들을 내놓고 보험까지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름과 가을이 되면 언론도 미세먼지도 다시 잠잠해진다. 매년 신기록을 세우는 여름 폭염과 겨울 강추위처럼 미세먼지도 자연재해처럼 생각하며 버티기 시작했다. 하지만 폭염과 강추위도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의 결과이듯 굴뚝 연기와 자동차 배기가스가 미세먼지의 원인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숨 쉬기 어려운 건 버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부가 인공강우, 옥외 공기청정기와 같은 보여주기 식 정책만 한 건 아니다. 고농도 미세먼지 상황을 사회재난에 포함시키고 건설기계와 선박을 배기가스 규제대상에 넣었다. 올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미세먼지 특별법은 노후차 운행제한, 가스배출 공장, 건설현장 가동 시간 변경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 특별법조차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에만 한시적으로 배출을 제한하는 법률일 뿐, 일상적으로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제도는 아니다. 이마저도 구체적인 시행지침이나 관리감독이 지자체에 맡겨져 있고 과태료는 200만 원에 불과하다.

미세먼지는 사회 재난

사람들이 느끼는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이나 고통에 비해, 대응은 더디고 대기질은 그대로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재난 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고농도 미세먼지를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으로 규정했다. 미세먼지는 자연 재해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문제라는 것이고 개별적 대응이 아닌 사회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세먼지는 분명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은 개별적이기 보다 구조적이지만 그 구조 속에서 이윤을 쌓는 이들과 피해를 당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미세먼지 배출원의 대부분은 전력생산시설, 제조업 공장, 물류운송, 교통수단이다. 문제해결은 당연히 이 배출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 것인지로 모아져야 한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사회적 이슈가 된 후에도 엘지, 한화, 현대제철 산업시설들에서 배출가스량을 조작하거나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고장난 채 5년째 가동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운운하면서 대규모 공장 배출원 관리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감독 업무는 지자체에 일임되고 지자체는 측정대행업체의 자료로 관리를 대신한다.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게 아니라, 초과량에 대해서 배출부과금을 납부토록 하는 현행 체계는 측정대행업체와 대기업이 공모해 이익을 취하게 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배출허용기준을 최대 2배 강화했지만, 현대제철과 수많은 화력발전소들을 '예외인정 시설'로 규정했다. 이번에 발표된 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에서도 대표적인 미세먼지 배출원인 석탄화력발전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다. 그럼 교통수단은 어떤가? 정부가 내걸었던 수소경제는 현대차의 차세대 생산전략을 지지하겠다는 것이지, 내연기관차 운행을 줄여나가겠다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경기 부양을 이유로 작년 11월부터 시행 중인 유류세 인하를 했을 리 없다. 유류세 인하 말고도 서민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정부가 이렇게 배출원 축소와 관리에 무능하거나 분명한 전략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윤을 쌓고 자본을 불리는 사람들 반대편에는 미세먼지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있다. 미세먼지 배출 산업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배출가스를 조작했던 대기업 공장들 외에도 전국에 산재한 제조업 공단노동자들, 외출자제 문자를 받아도 야외 작업을 해야 하는 농민과 노동자들, 물류-여객운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미세먼지를 들이마신다. 그리고 마스크와 공기청정기에 의지해 사무실로, 가게로, 학교로 종종걸음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중국과 협력하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배출원 축소와 관리에 대한 정부의 책임문제는 대단한 산업체계 개편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현행 법제도를 제대로 집행해 미세먼지를 실제로 줄이라는 요구에 가깝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저감장치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보급, 관리감독하고, 내연기관차량 운행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과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는 것이다. 이 정도만 제대로 집행돼도 미세먼지 발생량은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기업에게는 스스로 배출저감장치를 설치 관리할 이유가 없다. 무한경쟁 속에서 환경규제는 이윤을 줄이는 비용일 뿐이므로 언제나 정부규제를 위반하려는 힘이 작동한다. 환경부조차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한 여수 산단 배출가스 조작, 독일 자동차 3사의 배출가스조작 사례는 그 일부일 뿐이다. 

결국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자율과 정부규제를 넘어, 산업시스템 자체가 사회적 생산과 관리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경유차가 아니라 전기차를 많이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적은 에너지로 물류와 교통을 감당할 수 있는 공공 체계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가 접속해야 한다. 30년 넘게 이어져 온 기후변화 대응운동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기업들의 시장적 방식(탄소거래제)이나 정부 간 협약은 끊임없이 미끄러졌고 결국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었다.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권인 한국은 기후변화에 둔감했다. 극지방 얼음이 녹고, 아프리카가 유래 없는 가뭄에 시달리고 태평양 섬들이 잠겨도 우리는 여름 폭염과 겨울 강추위 정도로만 기후변화를 감지했다. 미세먼지는 달랐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는 배출원이 유사한 만큼 한국의 미세먼지에는 국내 요인이 상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거대한 산업시설을 먼저 봤다. 한국의 온실가스가 극지방 얼음을 녹이는 것은 느끼기 어려웠지만 중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민감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지구는 하나니까. 온실가스 감축 운동이 지구적 운동일 수밖에 없듯이, 미세먼지 감축도 지구적 운동이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지난 5년 사이에 미세먼지를 40%나 감축했다. 국가주도로 탄광 1천 개를 폐쇄하고 신규 채굴을 금지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올릴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과 함께 미세먼지 감축에 나서기 위해서는 오히려 한국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아 보인다.

국가기후환경회의,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미세먼지 문제 해결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산업논리, 기업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를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윤을 위해 규제를 벗어나려는 개별 기업들과 이를 뒤쫓다 제 풀에 지쳐 눈감아주는 정부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만 잘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이웃 나라와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지구적 문제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범국가적 대책과 주변국과의 협력 증진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그래서 걱정이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이 분명한데도 위원장은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발언이나 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 확실한 미세먼지 감축 전략을 가지고 있어도 부족한 마당에 정부는 해법을 사회 각계각층에 미룬 듯 보인다.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다. 가벼운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무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각계각층에게 물어보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곤란하다. 미세먼지가 어디서 나오는지는 분명하다. 그걸 줄이기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지 논하는 사회적 대화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