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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동아시아 전쟁위협부터, 인권운동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고민까지

백승욱 선생님 강연을 듣고

지난 5월 19일, ‘생각하는 마르크스’의 저자 백승욱 선생님의 강연을 사랑방에서 개최했다.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연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2년 넘게 지속되던 코로나19 펜데믹이 잦아들어가는 상황에서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 이러한 변화를 ‘지배체제’의 변동과 방향이라는 차원에서 조망해본다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등을 강연을 통해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강연 시점은 대선과 그 이후 새 정부 출범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기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대립 속에서 대만해협, 한반도 긴장고조라는 정세는 ‘코로나19’로부터 시작하는 ‘지배체제’의 변동이 아닌 정치질서의 변화, 국가 간 질서로서 국제질서의 변화와 대립에서 ‘체제분석’은 시작됐다.

왜 자유주의인가

이번 강연의 키워드 하나를 뽑으라면 ‘자유주의’였다. 사실 자유주의는 사회운동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전근대적인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급진적 변화,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은 ‘자본주의’ 비판과 분석에 에너지를 쏟아왔고, 이번 사랑방의 강연기획 의도도 ‘코로나19 펜데믹과 자본주의’였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지배체제라는 것은 자본주의를 유지 작동시키기 위한 정치이념이자 제도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의 역사와 현재를 분석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분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강연자는 한국 사회(정치)에서 자유주의적 제도와 질서가 부재하거나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한다. 이식된 근대화 속에서 자유주의의 취약성은 오랫동안 이야기되어왔었지만,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서사도 매우 강력하다. 이에 대해 강연자는 87년 체제라는 신화를 넘어서야 하며, 근래 민주당이 보여주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폄하는 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연원이 있고 91년에 시도되었던 일련의 자유주의적 개혁이 실패의 후과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현실이 된 전쟁위협

이러한 분석은 국제질서로 확장된다. 최근의 미중, 미러 대립을 구래의 냉전질서의 부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질서는 미국, 소련, 중국의 합의 속에서 이루어진 ‘자유주의 헤게모니’가 관철된 국제질서라는 것이다.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면서 유엔으로 대표되는 공동의 룰과 협상테이블에 대한 존중이 전후 냉전질서의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현재의 대립구도와 중심부 국가 간의 대리전 양상은 탈냉전이라는 조정기를 거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져 내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이 된 만큼이나, 중국의 대만침공도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예상 가능한 현실이 되었음을 강조했다. 대만해협에서의 전쟁은 사실상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전쟁이 되는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경각심이나 대응에 대한 고민의 부재도 이야기되었다. 한편 정세와 구조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는 ‘국익론’만 남은 채, 대중들의 혐중 정서만 커져가는 상황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남는 질문들

대란대치(大亂大治)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유산 속에서 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연자는 강조한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커다란 환란 이후에 새로운 질서가 등장한다는 식의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과 전쟁위협 속에서 기존의 자유주의적 지배질서가 무너져가는 지금,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이 오히려 견결한 자유주의적 가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백승욱 선생님이 인권운동사랑방에 기대하는 것은 90년대 초반 급진과 변혁의 기운이 드셀 때부터 ‘인권’을 내세우며 견결히 운동해온 사랑방이 지금 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보여온 행태는 확실히 자유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언론개혁법 시도나, (통칭)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검찰개혁 과정의 이익집단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시민권 체계인 차별금지법에 대한 무관심과 책임방기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지금 사회운동은 민주당이 내팽개친 자유주의적 가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까? 과거 러시아 혁명가들의 고전적인 테제였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그 이후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이중과제와 단계적 문제설정이 여전히 유효한 걸까? 자유주의의 유산 속에서 근본적 변혁을 꾀한다는 것이 꼭 자유주의적 가치와 체제 수호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근대가 열어낸 해방의 가치와 이념이 다양한 한계에 직면한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할 운동과 가치는 오히려 역사 속에서 배우고 갱신되는 권리와 운동의 경험이 될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지금 주장하고 만들어갈 ‘권리’가 93년에 사랑방이 주장했던 ‘권리’와 같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