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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지식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기후운동을! 김선철 님을 만났어요

이번 후원인 인터뷰는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선철 님입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시다가 얼마 전에 한국에 오셨는데요, 미국의 기후정의운동, 인종주의에 맞선 운동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고민할 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후원인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선철입니다. 격렬했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나름 열심히 학생운동 하다가 어느 순간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그 난리를 쳤던 것이지?’, ‘왜 그런 방식으로 했을까?’ 등의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사회운동의 동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했구요. 그러다 운 좋게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어 십년 넘게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가르치다, 대학과 교수사회의 위선에 환멸을 느끼고 강단에서 떠드는 사회운동에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현실에서 사회운동을 해보자 결심하고 작년 말 20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7달이 조금 넘었는데, 배워야 할 것이 많아 지금까지는 기회만 닿으면 닥치는 대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구요.

◑ 사랑방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을 알게 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거의 시작할 때부터니까요. 아마도 90년대 초중반 나우누리 동호회로 처음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인권과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후 인권하루소식과 인권오름 계속 구독해오긴 했는데, 그 이상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그냥 고맙운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는 수준이었지요.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 인권재단사람에서 주최한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 결과 발표회에 가봤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인권운동 상황이 정말 열악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죠. 이후 후원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늦어져 죄송합니다. ㅠㅠ

◑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기후운동에는 언제 어떻게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활동한 지는 이제 반 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기후문제에 관해서는 원래 문외한이었어요. 지금도 모르는 부분이 많구요. 그저 기후변화가 심각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겠구나, 기존 노동운동이나 민주주의, 인권운동도 녹색 가치를 품지 않고는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어가기 힘들겠구나 생각하는 정도였지요. 그래서 몇 년 전에 녹색당 당원 가입을 했던 게 다였어요. 그러다가 2018년 후반부터 미국에서 젊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그린뉴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을 보면서 기후정의운동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이때는 제가 미국생활을 접고 한국에 가서 사회운동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취하고 있던 때였는데, 에너지 공공성을 위해 오래 싸워왔던 친구 하나가 계속 이쪽에서 같이 일을 해보자며 저를 꼬드겼어요. 그러다 작년 여름 뉴욕에서 열렸던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노동조합(TUED)’의 세계대회에 한국에서 오신 대표들과 같이 참여를 하게 되었고, 이걸 계기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 계신 다른 분들도 알게 되었어요. 작년 말 한국에 정착한 이후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또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기후정의운동의 터전을 닦아왔고 또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도 일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이 친구 추천을 통해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제게 연락을 했던 것 같아요. 얕은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던 제가 기후정의 활동을 하게 된 것에는 이처럼 친구들의 도움과 방향제시가 컸습니다.

 

◑ 사랑방도 최근에 기후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여전히 어렵습니다. 너무 거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세상이 통째로 바뀌어야 될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낍니다. 다른 한편으론, 거대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기후운동이 주는 도전이나 매력(?)도 느낍니다. 기후운동을 하시면서 갖게 된 고민이나, 기후운동의 매력이나 에너지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기후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된 것은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활발한 그린뉴딜 운동은 아래로부터 풀뿌리가 조직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활성화 되었어요. 그 요구도 단지 온실가스 줄이고 북극곰을 살리자는 문제의식을 넘어 지구와 지구 생태계,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케 해주는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구요. 왜냐면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체제는 지구와 생태 시스템,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이윤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거든요. 이 과정에서 기후위기가 발생했고 또 사회적 불평등은 극대화되었던 것이구요. 결국 지구에게도, 사람에게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 사회경제체제를 어떻게 바꾸어낼 것인가가 그린뉴딜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인데, 이 점이 저에게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부분입니다.

한국에서 기후문제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이론이나 지식의 문제로 다가오는 측면이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몇 년 전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 담론이 꽤나 컸는데,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북유럽 나라들 몇 개 빼고는 다른 나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금수저는 걱정할 거 하나 없는 반면, 흙수저들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대신 빚만 잔뜩 지고 있어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이런 상황이 정말 악화되었는데,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나 ‘금수저-흙수저’, ‘소확행’ 등의 온라인 담론 수준에서 표출되었던 데 반해, 미국의 청년들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불평등 문제를 첨예하게 이슈화시켰던 2011년 오큐파이 운동(Occupy Wall Street)이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M(Black Lives Matter), 잦은 학교 총기난사 사건들을 거치며 커진 총기규제 운동, 그리고 가부장적 위계사회의 문법을 가감 없이 드러낸 #MeToo 운동, 그레타 툰베리로부터 영감을 얻은 기후행동 등은 하나같이 미국의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던 주류 사회에 대한 분노와 생존의 위기의식이 표출되는 방식이었던 거죠. 이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부각되고 ‘민주적 사회주의’가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구요. 2019년 초부터 이 모든 이슈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틀거리로 지지를 받게 된 것이 그린뉴딜이예요. 기후위기는 주류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가장 큰 상징으로 잡게 되었고, 이 기후위기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비도덕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모든 권력관계와 제도를 뒤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농축된 셈이죠. 그러니 이걸 자신의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죠.

이와는 달리 한국에서 기후문제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와 단절된 상태에서 몇몇 전문가들이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문제제기 되었죠. 지식수준에서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도 당장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 사람들에게는 부차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구요. 결국 중산층 지식인들의 관심이나 운동으로 협소화된 측면이 강하고, 그린뉴딜도 전문가와 정부, 지자체가 정치 브랜드로 소비하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죠. 기층 민중의 삶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권력자들에게 포획된 채 상층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기후와 그린뉴딜 논의가 저에겐 가장 우려되고 고민되는 지점입니다.

◑ 최근에 미국 관련 뉴스가 한국에도 많이 보도되는데요, 트럼프-코로나19-경찰폭력(흑인사망)이 키워드일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이제 미국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 ‘살기 무서운 (폭력적인) 나라’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한적으로만 접하게 되는 해외 소식이다 보니, 우리가 놓고 있는 관점이나 보도되지 않는 게 뭐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어느 사회든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이래저래 갖다 붙이는 짧은 묘사나 성격 규정도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구요. 제가 보기에는 한국도 ‘이해하기 힘든 나라’, ‘살기 무서운 (폭력적인) 나라’의 이미지인걸요. 미국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미국의 역사와 그 역사를 통해 형성된 제도와 문화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최근의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그래도 한국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견주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한국보다 심한 정치적 양극화의 맥락에서 나왔어요. 트럼프가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민주당은 찍을 수 없다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았던 것이고요. 거기에다가 이전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무너져가는 중부 제조업 지역의 백인 노동자층이 등을 돌렸어요. 여기에 더해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엄청 컸고, 차라리 ‘외부자’ 트럼프를 찍자는 심리가 더해진 것이죠. 한국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던 맥락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여기에는 트럼프의 인종주의도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와 관련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새로운 제도와 법안이 생기면서 ‘여혐’ 현상이 커진 것처럼, 미국에서도 역사적으로 착취당하고 배제되었던 흑인들의 권리주장이 커지고 받아들여지면서 백인들의 반발감도 상당했습니다. 여혐의 발원지가 종종 주류에서 배제된 젊은 남성들이었던 것처럼, 미국의 인종주의도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인 노동계급에서 많이 보였구요. 내가 겪는 불행의 원인으로 사회적 약자를 타겟 삼는 방식인 거죠. 노예제의 역사도 있고 사회적 합의도 확고해서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아도, 속으로 흑인 등 유색인종을 혐오하는 흐름은 이런 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다 제도와 사회문화 속에 뿌리 내린 인종주의가 엄청납니다. FBI를 제외한 미국의 경찰은 다 지자체 소속이에요. 경찰노조도 엄청 힘이 강합니다. 경찰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도 많고 경찰 조합원을 보호하려는 취지의 법안들도 많구요. 문제는 경찰에 대한 지원이 경찰의 ‘군대화’를 조장해왔고, (인구 만 명도 안 되는 시골 도시에서도 장갑차가 있는 경우 많아요) 경찰 조합원 보호 조항들은 이들의 초법적 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막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여기에 흑인이나 라틴계 미국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사회문화까지 합쳐보세요. 흑인과 라틴계 유색인종들이 끊임없이 경찰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왔는데 폭력 행사자는 제대로 된 법적 처벌도 안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흑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경찰을 만났을 경우의 대처법에 대한 교육을 할 수밖에 없고, 여유가 있는 흑인들은 잠재적인 경찰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비싼 옷과 가방 따위를 들고 다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013년부터 몇 년간 격렬하게 전개되었던 #BLM 운동은 이런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고, 조지 플로이드의 살인사건 이후 터져 나온 최근의 대규모 시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문제는 입으로는 인종주의 반대하는 백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속으로는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산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2-3년 전부터 ‘케렌(Karen)’이라는 이름이 이런 현상의 상징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그건 케렌이란 이름의 백인 여성이 대낮에 공원에서 흑인을 보고 혼자 위협을 느껴 신고한 일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런 일들이 자주 소셜미디어에 퍼졌는데, 조지 플로이드가 죽기 불과 며칠 전에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개와 산책하던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을 신고해서 빈축을 샀던 일이 있습니다. 새 관찰자인 (뉴욕 센트럴 파크에는 새 관찰 동호회가 여럿 있습니다) 남성은 개의 목끈을 달지 않은 채 근처로 온 여성에게 개 목끈을 달아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여성은 ‘흑인 남성이 위협한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지요. 이 여성은 이후 공식 사과문을 내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렸지만, 미국사회에 만연한 ‘연성 인종주의’와 위선의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이처럼 인종주의가 발현되는 다양한 층위를 이해하지 않고 미국의 인종주의를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요. 한국에서의 인종주의를 이야기할 때에도 꼭 고민해야할 부분이구요.

코로나19 대응 관련해서는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축인데, 하나는 트럼프의 막가파식 무지몽매함을 들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대변하는 ‘제국’이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 방역 잘해서 국제적으로 칭찬 들었던 한국도 이제 슬슬 생명과 이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분위기라 우려되는 측면이기도 합니다.

◑ 기후의제 외에,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문제들에는 어떤 게 있나요?

사실 여기저기 관심이 너무 많아 좀 걱정인데, 우선 최근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불에 타서, 가스에 질식해서, 기계에 껴서 죽는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죠. 제가 보기엔 이들이야말로 ‘한국판 조지 플로이드’ 같아 보입니다. 정부와 사회도 방역에는 엄청 신경 쓰면서 이렇게 죽어가는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구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문제, 이걸 만들어낸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회가치의 문제에도 관심이 큽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이런 노동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체계의 변화 문제에도 우리가 신경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례로 얼마 전 한 에너지 관련 공기업 노동조합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단협안으로 올렸어요. 문제도 많습니다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장려하는 분위기도 있고 해서 사측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던 사안이었거든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반대를 했어요. 주로 2~30대 젊은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서요. 자신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에는 달라질 것이 없었지만, 자신들은 힘들게 공부해서 시험보고 들어왔는데 그렇게 고생도 안한 비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이 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 사회 ‘공정함’의 정의가 이렇게 달라진 것이지요. 얼마 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반대했던 페미니스트들도 비슷한 논리예요. 자신들은 지금껏 여성으로 살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온갖 어려움 다 겪었는데 남성으로 편하게 살아왔던 이가 이제 와서 여성이 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경쟁체제에 대한 비판은커녕 그 안에서 경쟁논리를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사회는 흘러가고 있어요. 이러한 흐름이 우리가 가진 도덕기준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이주민에 대한 착취와 인종주의, 소수자 혐오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구요. 그런데 이게 다 사회 불평등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거든요. 또 다 기후정의운동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구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런 관심들이 ‘기후의제 외에’ 있는 이슈들은 아닌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 전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7~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인권운동의 외피를 두르긴 했지만, 이건 해외에서 주목을 받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이 강했지, 실제 과거 민주화운동은 인권과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이런 면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인권을 중심에 놓는 운동의 첫발을 떼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한 단체로서는 작은 걸음이었을지 몰라도 한국 시민사회로 보면 엄청난 도약이었던 셈이지요.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고 또 겪어 나가야 하겠지만, 이런 역사와 전통에 걸 맞는 인권 지킴이로 계속 중요한 역할 해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