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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법조항 1000개로도 못 막는 산재?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산업 안전이 아닌 노동자의 안전으로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님,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 님,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며, 문이 열린 공사용 승강기에서 떨어지고,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사람들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거나 다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일터에서의 사고 소식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사회를 살아간다.

정부는 집권 초기에 발표한 헌법 개정안과 대통령의 신년사 등에서 생명과 안전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역설해왔으며, 작년에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 개정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안법 하위 법령 개정안은 대부분 전면개정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은 하위 법령에 담겨 있는데, 이번 하위 법령 개정안은 상위법에서 언급했던 위험 업무 도급 금지 원칙과 법안 적용 대상을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확대하는 내용, 작업 중지 권한 등이 모두 후퇴한 채였다.

노동자의 죽음이 만들어 온 법 

한국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제도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내 10개 조항에서 출발한다. 이후 산업화에 따른 대형 기계 설비 및 대규모 건설공사의 증가 등으로 산업재해가 늘어났으며, 화학물질의 사용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 또한 급증했다. 1970년에서 1980년 사이 산업재해 수는 3배,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배, 직업성 질병인 수는 6배 증가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81년 독자적 산안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7년 후인 1988년, 15살 노동자의 수은 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노동자 915명의 직업병 판정으로 인한 대대적인 투쟁은 1990년 산안법 전면 개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님의 죽음은 위험한 일터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산안법은 28년 만에 전면 개정되었다. 1988년 15살 노동자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직업병 투쟁이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과 노동자 참여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웠듯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님의 죽음은 위험 업무 도급과 비용 절감의 문제를 드러냈다. 산안법은 노동자의 죽음과 투쟁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또 변화해왔다. 

생명과 이윤을 거래하는 정책 

그러나 법과 제도는 노동자의 죽음과 투쟁에서 드러난 교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왔다. 1990년 산안법 전면개정은 노동 과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알 권리를 확장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채, 금지 물질의 목록을 몇 가지 늘리는데 그쳤다. 2018년의 전면개정안과 하위 법령 개정안도 마찬가지이다. 위험 업무를 도급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정작 개정안 하위 법령에서는 도급 금지와 도급 승인이 필요한 업무의 범위를 턱없이 협소하게 지정했으며, 김용균 님이 사고를 당한 화력발전소 업무마저 도급 금지와 도급 승인 업무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펼쳐온 노동정책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최저임금을 인상한 뒤 산입범위를 조정하거나,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한 뒤 탄력근로제 범위 확대를 시도한다. 임금이나 노동시간 같은 노동자의 권리를 사업주의 이윤과 동일선상에 놓고 거래하는 방식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과 '이윤'을 저울의 양 쪽에 올려놓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려는 정부는, 산안법 개정 후 산업계의 눈치를 보며 하위 법령을 후퇴시켰다. 이 때 노동자의 안전은 노동자의 권리이기보다는 타협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권리의 주체로서 노동자는 사라지고 사업주가 양보하는 만큼만 노동자의 안전을 말하는 법과 제도가 남는다. 거창한 목표와 미사여구만 떠다니며,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금지하면 안전하다? 

노동자의 안전을 다루지만 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는 현행 산안법 체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산안법 1조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밝히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의무를 명시한다. 그런데 전체 법안에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규정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노동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금지 항목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책을 구성한다. 

규제 중심으로 안전 정책을 구성할 때, 산업 재해는 사후에 책임 소재를 다투는 식으로만 논의된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었을 때 누가 어떤 의무를 어겼나, 누가 안전에 소홀했나를 찾아내기에 바쁘다. 정부의 산업재해 정책은 언제나 재해율을 낮추는 게 목적이며,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수치로만 드러난다. 재해율을 낮추는 게 목적일 때 사고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은폐된다. 재해율은 낮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월등히 높은 한국 사회의 이상한 구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산안법에 금지 조항이 잔뜩 추가되며 심지어 작업대의 너비와 폭까지 법 조항으로 규제하고 있다. 산안법과 하위법령까지 포함하면 1000개에 육박하는 법 조항이 남아있을 뿐, 노동자에게 위험한 일터는 변하지 않았다.

안전이 노동자의 권리라면 

산업화 시기에는 국가 발전을 위해서, IMF 시기에는 생존을 위해서, 산업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야기할 때 노동 현장의 위험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어왔다. 위험은 노동자들이 각자 알아서 피해야 하는 것이자 어느 정도 규제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어떤 업무는 원래 위험하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일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원래 위험한 일'은 없다. 존재하는 위험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방치할 때 위험은 사고로 변한다. 중요한 건 '어떻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가'이며, 이는 노동자가 얼마나 권한과 역량을 지녔는지의 문제이다. 규제 중심의 법과 제도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이유다.

규제 중심의 접근이 아닌, 노동자 권리 실현 중심의 접근으로 프레임을 바꾸자. 안전을 노동자의 권리로 이해할 때, 안전 정책은 규제 항목을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한과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노동자의 작업 중지 요구를 사업주의 이윤을 깎아먹는 행위가 아니라 일터의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계기로 이해할 수 있으며,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는 위험의 실체를 발견하는 일은 실제로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참여해서 함께 일터 위험성 평가를 진행할 경우 산업 재해 발생 가능성을 낮춘다는 사실은 여러 사례를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사업주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고를 감추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일할 때 위험을 알아채고 위험한 상황을 멈추거나 위험에서 대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일터. 산업재해를 불운하고 불행한 사고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당한 사건으로 인식하는 사회. 금지와 규제를 켜켜이 쌓아올리는 법이 아니라, 노동자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권한과 역량을 강화하는 법과 제도까지. 안전이 노동자의 권리라면, 법과 제도부터 일터와 사회까지 변화할 수 있고 또 변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목소리에 힘이 있기를 바란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의 이 말은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을 알려준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접근할 때 현실은 달라진다. 생명과 안전을 노동자의 권리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변화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