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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5회 독일 인권영화페스티발에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돋움활동가 김일숙입니다. 추운 가을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김정아 활동가와 함께 9월 1일부터 12일까지 뉘른베르그에서 열렸던 독일인권영화페스티발에 다녀왔습니다. 영화제팀에는 김정아, 김일숙, 최기혁 모두 세 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다함께 가지는 못했습니다. 출장 경비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 영화제 업무도 누군가는 남아서 해야 했습니다.

추석 연휴 끝자락이어서인지 싸게 다녀올 수 있는 독일행 비행기표는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간신히 홍콩을 경유에서 가는 표를 찾았는데,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어서 개인이 초과금액을 부담하기로 하고 구입했습니다. 정아는 이번에도 혼자 출장을 가게 될까 걱정했고, 저는 처음 가는 다른 나라 인권영화제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내년 12회 인권영화제를 위해서는 꼭 가야했지요. 그런데 짧은 시간에 출장 준비를 한 탓인지 비행기에 올라 탈 때까지 작은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여권과 비행기표의 이름 영자 표기가 달라서 비행기를 못 탈 뻔 했지요. 다행히 출발 전 날 확인해서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수정했어요. 출발하는 날에는 둘 다 약속 장소를 달리 이해해서 서로 찾아 헤매다가 길거리에서 만났어요. 첫 출장은 신나는 일이었지만 긴장 때문에 신경은 예민해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비행기에는 올라탔고, 인천에서 홍콩까지 3시간, 홍콩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 동안 날았습니다. 고철 물체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일은 신기한 일이지만, 실제 비행기 안에서는 수백 명의 다양한 사람들과 단칸방에서 자고 먹고 싸고 하는 일을 해야 하는 힘겨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양육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서서히 정아가 진저리를 치는 먼 길 출장의 고충을 느끼게 되었지요.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 기차로 갈아타고 2시간 달려서 뉘른베르그에 도착하니, 페스티발 스텝 한 사람이 나와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만난 첫 사람이었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짐을 건네주었습니다. 우리의 표정과 눈빛을 포착했다면 말로 다 하지 못한 고마움과 반가움을 충분히 느꼈을 겁니다.

서울 시각으로 1일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독일 시각으로 2일 낮 1시에 도착했어요. (독일은 서울보다 7시간이 느리니까 서울 시각으로 2일 저녁 8시쯤 도착했어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밥을 먹었습니다. 바로 영화를 봐야 했거든요. 양탄자 바닥 위에 비닐을 깔고 서울에서 가져간 전기용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햇반과 밑반찬을 꺼내 상을 차렸습니다. 호텔 측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출장 경비나 시간을 아끼기 위한 출장 전략이었습니다. (출장을 준비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정아가 쌓아 놓은 다년간의 ‘출장 내공’은 빛났습니다.) 김치냄새를 막기 위해서 락앤락 통도 하나 갖고 갔지만 저녁에 들어오니 김치냄새가 향긋하게 나더군요. 하하하! 역시 우리의 김치 냄새는 강하고 오래갑니다. 그래서 락앤락을 욕실로 옮겨 두고 환기팬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조심해야죠. 쫓겨나면 망신이잖아요)

독일식 식사는 냄새가 날 만한 한 음식이 없더군요. 빵에 다양한 치즈와 소시지를 놓고 먹으니까요. 제 입맛에도 잘 맞아서 실컷 먹고 왔습니다.

개막식은 비행시간이 길어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켄로치 감독이 특별상을 수상해서 왔다갔다고 하더군요. 2년에 한 번 열리는 뉘른베르그 인권영화페스티발은 올해가 5회째로 인권운동가가 아닌 영화인들이 지방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다고 합니다. 뉘른베르그 거리 곳곳에 안전하게 설치되어 있는 페스티발의 포스터를 보면서 참 부러웠습니다. 철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철망으로 튼튼하게 보호해 놨더군요.

페스티발 13일 동안 영화관 4개관에서 80여 편을 상영했습니다. 페스티발 스탭과 자원활동가가 대략 15명 정도 보였고, 페스티발 측에서 집계한 관객 수는 약 7,000명 이었습니다.


페스티발이라지만 행사장은 대체로 조용했습니다. 후원을 요청하거나 기념품 판매를 목청껏 소리 높여 하지는 않았습니다. 상영 사고가 종종 있었지만 조용히 설명하거나 자막으로 대신한 후 다시 상영하더군요. 페스티발기간 동안 건물 한켠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했습니다. 영화감독과 심사위원들을 초대해서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 했습니다.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조용하고 진지했습니다.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도 꽤 있더군요. 우리는 영화감독들과 심사위원들과 짧고 굵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서로들 많은 영화를 봐야 했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시간을 쪼개서 페스티발 디렉터 안드레아 쿤과 만나서 2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처음 페스티발을 준비해 봤다고 하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아주 능숙해 보였습니다. 씩씩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7일간 총 30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영어 자막이 없거나, 음성언어가 영어가 아닌 작품은 영화관에서 볼 수 없어서 비디오실에서 영어자막이 있는 DVD로 봤습니다. 이곳은 공간이 넓고 시설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간혹 자원활동가가 기계를 잘 몰라서 당황해할 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자주, 또는 일찍부터 가는 우리가 미안해서 직접 환기도 시키고 작품도 찾고, 선 연결해서 보기도 했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서는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매주를 마시면서 보기도 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페스티발 내내 맥주를 마시면서 일하고, 와인잔이나 맥주병을 들고 영화관에 들어가더군요. (페스티발 아이디를 갖고 있는 손님은 음료 가격을 깎아주었어요. 물보다 싼 가격으로 맛있는 맥주를 먹었습니다)

올해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흑백 극영화 ‘The Violine’(mexiko, 2006, 98분, Francisco Vargas)입니다. 정아가 보고 나서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라명은 드러나지 않는, 마치 ‘옛날옛날에~’ 방식으로 어느 나라의 정부군과 게릴라군의 전쟁을 그렸습니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그의 아들과 함께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기타를 치고 정부군의 눈을 피해 게릴라운동을 합니다. 전쟁과 연주로 긴장감을 떨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발랄한 극영화로 카스트 제도 아래에서 미혼모가 된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Vanaja도 좋았고, 아프리카의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당찬 여검사의 이야기, 성매매 여성들이 결성한 여성 축구팀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등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코믹하고 힘찬 작품이어서 더욱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모든 작품을 얘기할 수가 없어 아쉽네요. 사실 아직 정리도 다 못했습니다. 이제 정리를 마무리해서 활동가들과 공유해야 할 후반 작품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페스티발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정아가 틈나는 대로 감독이나 심사위원들과 얘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일은 어떻게든 했지만, 영화 내용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속 시원히 읽지 못한다는 것, 다른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또는 인권 문제에 대해 심화학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더군요. 하루는 페스티발 측에서는 하루 오전시간 동안 나치전당대회를 했던 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 독일 역사학자가 말하는 나치당의 이야기를 다 주워 담지 못해 내내 답답했습니다. 더 공부를 해서 다음에는 많이 이야기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일은 오가는데 쓰고, 7일은 영화보고, 1일 낮 시간은 각자 놀고, 오후에는 지인들과 사랑방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샀습니다. 그렇게 12일 지나고 서울에 도착하니 서울은 겨울이 성큼 와 있더군요. 가을을 잃어버린 기분이라 서운하지만 어쩌겠어요. 출장도 다녀왔으니 겨울 내내 사무실에 앉아서 내년 12회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즐겁게 살아야죠.


독일인권영화페스티발에 가는 게 좋아서 몸속은 요동을 쳤습니다만, 혼자 남아서 일할 기혁 보면서 좋은 티 안 내려고 애썼지요. 독일 가서는 옆에 있는 정아가 너무나 고요했기에(마치 옆집에 놓고 온 물건 찾으러 가는 사람마냥 담담하더군요.) 혼자 호들갑 떨기 싫어서 얌전히 좋아하느라 수양 아닌 수양을 했습니다. 기혁 덕분에 안심하고 다녀왔고, 정아 덕분에 출장 무사히 잘 마쳐서 두 사람에게 특히 고맙습니다. 사랑방 가족들과 후원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의 부족한 글로 출장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니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래도 내년에 꼭 오셔서 저희가 물색해 온 작품들을 함께 보시길 바랍니다.

추운 겨울이 옵니다. 목에는 손수건이라도 두르시고, 발에는 발목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으세요. 올해는 더 건강하고 따뜻하게 겨울 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