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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경산의 인권이야기] 더 가까이 오라. 그러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식량주권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먹거리에 대한 차별과 기업에 의한 식량 독점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라. 여자와 남자가 어린이와 노인이, 이 세상에 발 딛고 사는 모든 이들이 굶을 걱정 없이 행복한 세상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라. 우리 모두는 인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세상, 농사짓는 농민은 빚에 허덕이지 않고 매년 희망에 벅차 씨앗을 뿌리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농민들의 투쟁만으로는 식량주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본주의, 초국적 기업에 의한 식량 지배, 인종차별, 성차별 역시도 종식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하게 식량주권이 실현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사랑과 존중과 배려가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만들어 더불어 살면서 자유와 정의의 꿈, 그리고 “우리는 식량주권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진리를 현실에서 성취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더 가까이 오라. 식량주권이 당신의 삶과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직접 살펴보라. 더 가까이 오라. 그러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식량주권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벨 훅스가 쓴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책의 서문을 각색한 글입니다. 페미니즘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야기하는 글에서 페미니즘 대신 식량주권을 넣어 보았습니다. 식량주권이 실현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웃음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달한 글과 달리 엄혹합니다. 지금 농촌에서는 양파 심은 밭을 갈아엎고 있습니다. 양파뿐 아니라 마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해 생산한 양파, 마늘이 가득한데도 정부가 수입을 해서 시장에는 양파가 흘러 넘칩니다. 가격이 떨어집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제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생산되는 농산물을 왜 수입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서울에서는 ‘농약급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건강을, 농민에게 희망을> 안겨줄 제도로 학교급식이 시행된 이후 급식은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한 단계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서울시 교육감이라는 분은 한 강연회에서 전문가를 앞세워 “농약은 과학이다.”라면서 농약이 보약인 듯 옹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것도 걱정입니다. 정말 안전할까?

한국의 식량주권, 갈 길이 멀다!

안 좋은 소식의 연속입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최근 들어 농업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소식들이 줄을 잇습니다. TPP(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라는 생소한 용어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라고 한글 말로 풀이해도 어렵기만 합니다. 정부는 지난 해 11월 말에 “TPP에 우리나라도 관심이 있다.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문제는 참여하고 싶다는 것은 정부만의 생각일 뿐 농민도 모르고 국민들도 모르는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알아 보니 TPP는 한-미 FTA와 같이 농업뿐 아니라 영화, 의료, 교육, 통신 등 할 것 없이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던 것과 같은 협상을 12개 국가와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의료민영화로 시끄러운 요즘, 먹는 것도 아파서 치료를 받는 것도 이제는 돈 없으면 그냥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는 그야말로 호랑이굴을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꼴입니다.

쌀 시장도 개방하자고 합니다. 쌀은 소비량이 줄어들고는 있으나 우리의 주식입니다. 그런데 100%를 육박하던 쌀 자급률이 몇 년새 80%대로 하락한 것은 수입쌀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값싼 수입쌀이 들어와 쌀 값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쌀 시장 문을 활짝 연다고 하니 수입쌀이 넘쳐나 환경을 보전하는 등의 공익적 기능을 해 왔던 논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쌀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이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FTA(자유무역협정)는 해마다 수십 개 국가와 맺고 있지만 정확한 내용은 잘 모릅니다. 많은 나라들과 자유무역을 해서 우리나라의 수출이 많아져 좋다고 하지만 서민경제는 왜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손을 내미는 농민들, 함께 가실래요~
식량주권이 실현되는 세상으로!


농민들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암울한 농촌의 미래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먹거리 위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험한 먹거리로 넘쳐나는 사회에 안전한 먹거리는 돈 있는 사람들의 특권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가만두고 볼 수 없어 농민들을 비롯하여 먹거리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이 모여 식량주권 실현을 위해 함께 하기 위한 연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칭 먹거리 안전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범국민연대가 첫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더욱 더 커지는 범국민연대에 대한 관심과 지지, 참여가 절실합니다.

먹을거리를 통해 이어진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라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우리에게 식량은 생명입니다. 식량주권은 생명입니다. 또한 식량주권은 인권입니다.

인권을 만난 식량주권, 모두에게 좋은 식량주권!

인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인간에게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권은 무시되고 탄압 받습니다. 때로는 나를 억누르는 실체가 잘 보이지 않지만 구체적인 삶의 피해로 다가오고 이로써 고통을 느낍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권을 부르짖으며 ‘인권’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소중한 가치라는 확신을 합니다.

식량을 둘러싼 문제도 인권과 맞닿아 있습니다. 식량주권은 식량을 매개로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구조의 불합리함, 그로인해 피해 받고 생명을 위협을 느끼게 되는 이들에게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소중한 권리이어야 합니다. 식량주권은 타인의 침해를 기반으로 성립되는 권리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에게 주어져야 할 권리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생소하고 낯설기만 한 ‘식량주권’을 더 가까이 와서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며 모두가 살기 좋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덧붙임

김황경산 님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국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