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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삶은 여행이니까~

의미를 모를 땐 떠나봐 


얼마 전 안식 주에 여행을 다녀왔어요. 바쁘게 활동하다보니 여행 준비도 못한 채, 비행기 왕복티켓만 달랑 구입한 채 떠났지요. 이렇게 준비 없이 떠난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걱정을 하면서 떠났지요. 작년에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 있어 멀리 여행을 떠났는데 참 좋았거든요. 그래서 올해도 없는 돈, 있는 돈을 모아 여행을 갔어요. 여행이 주는 기운을 믿으면서 말이에요.

여행은 나를 돌아보는,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시간이자, 공간’이더라구요. ‘제대로 살고 있나, 제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물음을 갖고 떠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질문과 답이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구요. 아마도 혼자서 장시간 여행을 해서 그런 기회가 더 생긴 거 같아요.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만들고,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 여행이니까. 그 다름이 창조하는 여백이 힘을 주는 거 같아요.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참 멋진 일이지요. 그래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마음이 쓰리고 아플 때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나 봐요. 어쩌면 현실 회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기간 동안 마음과 머리를 정리하고 몸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요.

다르면서 닮은 나라들

저는 다른 나라를 다닐 때, 한국과 비교하는 버릇이 있어요. 예를 들면 스페인 바르셀로나 항구를 보며 ‘여긴 통영을 닮았군.’하고 말이지요. 물론 이런 버릇은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어요. 자기가 사는 공간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계나 애정으로 볼 수도 있고, 여행을 통해 자기가 사는 공간을 다시 더듬는 ‘상기의 시간으로 재구성’한다고도 볼 수 있지요.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놀이를 즐겼어요.

이번에 다녀온 곳은 루마니아, 그리스, 터키에요. 세 나라가 비슷하면서도 달랐어요.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루마니아였어요. 루마니아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많이 비슷해요. 20년간의 독재를 경험한 나라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지요. 비행기 값을 아끼느라 모스크바에서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는데 그곳에서 루마니아 사람하고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 사람은 북한 여행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 북한은 나라 자체가 감옥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북한이 평화적으로 빨리 개방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구요. 구공산권이었던 루마니아인이 보는 사회주의국가, 세습독재라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루마니아인이 보는 북한은 ‘안타까운’ 곳이겠지요.

차우세스쿠 독재를 무너뜨린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스티에서,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는 총탄 자국을 보며 다시 한국을 떠올렸어요. 한국도 박정희 20년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이어서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를 10여년 경험했지만 무엇이 달랐을까하고 말이에요. 아직도 독재자들인 전두환 노태우가 뻔뻔하게 대통령 예우를 받고 있고,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박정희 우상론이 떠오르는 한국! 그건 아무래도 과거청산을 확실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민주화운동의 결과가 기만적인 민주주주의 조치인 87년 직선 개헌으로 그친 채, 독재자를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87년 민주화항쟁의 결과 획득한 민주주의의 산물인 대통령 직접선거, 대의제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가 떠올랐습니다. 참 슬프게도 대통령 직접선거로 뽑은 이명박 씨도 같이 연상이 되네요. 운동의 성과를 이어가는 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기에 재구성을 해도 결국 우리의 몫이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주로 머물렀던 르페니라는 작은 도시(시골)의 알콩달콩 했던 이야기는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할게요.)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같은 방법, 그러나 저항이 가능한…



루마니아 다음에 간 나라가 그리스였습니다. 그리스가 여행한 나라들 중 중간이라 루마니아와 비슷하면서도 터키와 비슷했지요. 그리스는 남유럽이지만 동유럽권과 인접해 문화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서유럽국가보다 루마니아와 비슷했어요. 종교도 카톨릭이 아니라 정교회라는 점, 구성원들이 서유럽과의 거리감을 느낀다는 점 등이 비슷했지요.

그리스는 다들 아시겠지만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제수준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사회보장 등은 매우 잘 되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로 IMF 등 국제통화기구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수용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는 게 경제 살린다는 명분으로 나랏돈과 노동력을 기업 입장에서 재조정하는 것이지요. 한국도 97년 외환위기 때 IMF 구조조정으로 법제도 개악으로 대량해고와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확대되었으니까요.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으로 제가 함께 하고 있는 대학청소노동자들도 98년 이전에는 대부분 정규직이었으니까요. 어쨌든 그리스정부도 연금을 줄이는 안부터 공무원 임금삭감안까지 내놓았고, 반대여론이 높았지만 의회에서 통과되었지요.

제가 아테네에 머물렀던 기간 중에 보트노동자들이 하루 파업을 했답니다.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그리스에서 보트노동자들의 파업은 영향력이 크지요. 파업을 해서 저도 섬으로 떠나지 못하고 하루 더 아테네에 머물렀는데, 파업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한국에 사는 저로서는 참 신기했습니다. “내일 파업이네. 그럼 오늘은 대중교통을 타기 어렵겠군.”하며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파업을 하면 무조건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공격하고, 시민들도 불평을 먼저 하는데 그런 방식이 아니었어요.

보트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이유는 연금 삭감에 항의하는 것으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행동이었어요. 지금 그리스는 경제위기라 파업에 많은 관심이 몰려 하루 종일 뉴스는 보트파업과 경제위기 타개에 대한 방송이 나왔답니다.

배를 예약한 사람들은 모두 속이 타서 항의를 하기도 했고요. 외국인이 아닌 그리스인들의 항의는 파업 자체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운행을 하지 않을 거면, 파업을 하는 사실을 미리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항의였답니다. 미리 표를 판 경우도 있지만 일부 여행사들은 돈을 벌 욕심으로 파업 결정 소식을 듣고도 표를 팔았답니다. 저는 다행히도 표를 사러간 여행사와 선박회사에서 파업 때문에 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파업 당일 표를 사지 않아서 항구까지 가는 불상사는 면했답니다. 파업이 정당한 권리행사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정말 부러웠답니다. 최소한 파업 자체를 불법시하지 않는 사회라면 파업한 이유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리스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는 뉴스를 보며 이러한 모습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걱정도 되었지만, 부디 그리스인들의 투쟁이 불온시 되는 일까지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트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켜보았답니다.

하루 더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산토리니 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의 즐거운 기억은 다음번에...ㅎㅎ )

동양과 서양의 구별짓기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로도스 섬 유랑을 한 후 터키로 넘어갔어요. 터키는 제국이었던 나라인지라 유적이 많기도 하고 문화유산도 많았어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터키인들이 동아시아인을 대하는 태도와 유럽인을 대하는 태도 차이였어요.

터키에서 동아시아인들은 매우 진귀하고 친절한 대접을 받습니다. 터키 여행지에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처음 보는 동양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 표현은 혼자 하는 여행을 즐겁게 했어요. 연예인도 아닌 저에게 지나가는 가족이나 학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할 때, 예전 한국이 조선시대에서 개방된 지 얼마 안 되었던 근대 시절, 전후 시절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에요. 이른바 코쟁이라 불리는 서양인들에 대한 호감, 호기심이 이런 거 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지금도 터키인들과 찍은 제 사진은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떠다니고 있을 거에요. (아~ 어쩌지. 이상하게 나왔으면...)

터키인들의 동아시아인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 이면에는 터키가 처한 지리적 위치, 역사, 문화 등이 얽혀있다고 생각해요. 터키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청년이 저에게 작업(^^)을 걸어오면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는 저에게 “내가 왜 싫으냐, 터키인이어서 싫으냐”, “한국인들은 유럽인을 좋아하지. 자기가 유럽인이었으면 좋아했을 거 아니냐.”고 했어요. 자기가 한국에 갔을 때 한국여성들이 유럽인-백인들과 다니는 걸 많이 봤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물론 이에 대해서는 긴 토론과 설명이 필요한데, 서로 영어실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이렇게 얘기했어요. “난 유럽인도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일본이나 한국인, 동북아시아 사람을 좋아한다.”고요. 웃기지요^^. 물론 일본인이나 한국인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유럽인을 선호하는 백인우월주의자로 비춰지기도 싫고 터키청년의 이상한 구애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요.

그도 작업을 걸기 위해 한 얘기였겠지만, 터키인들은 자신들을 동양인으로 규정하고 유럽인에 대한 거리감을 많이 표현해요. 터키가 제국이었을 때 유럽을 지배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 터키보다 유럽이 우세한 문화로 규정되는 세계화 시대라서 그러한 정서적 반감이 작용하는 거겠지요. 또 터키가 유럽과 근접하면서 유럽인이 아닌 동양인이고, 역사적으로나 유럽인에 의해 비유럽인으로 규정받았던 역사와 연결된 ‘경계인’인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구별짓기는 유럽인이 먼저 한 것임에도 우리도 여전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삶은 이어지니까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어요. 사실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 15일도 쓰기 어려운 실정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으니……. 물론 사랑방 활동비가 최근에야 법적 최저임금 정도가 될 정도로 낮은 거는 사실이지만, 다른 단체 활동가들 중에도 안식주가 이렇게 보장된 곳도 많지 않은 현실이라서……. 그래서 한국에 귀국한 당일부터 열심히 일했답니다. ^^;;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이는 곳은 투쟁하는 곳이었지요. 더운 여름날, 지치면서도 지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싸우고 있을 그이들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휑 하잖아요. 그래서 오자마자 농성장, 집회 현장을 다녔어요.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요.

그렇지만 삶은 여행이고, 그래서 이어지고, 투쟁도 이어지니까, 그리고 여러 다른 동지들이 함께 싸우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잠시 쉬었다 와도 된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여행에서 얻은 좋은 기운으로 투쟁에 힘을 보태야지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사랑방 활동가 여러분, 그리고 후원인 여러분!
여러분 덕에 잘 쉬다 왔으니, 이제 으싸으싸 같이 열심히 할게요.^^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