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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비정규직 투쟁,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 안기호 위원장은 단식이 36일 동안이나 지속되자 눈에 초점을 잃기 시작했다.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갑상선 기능 저하로 호흡이 잦아들고 맥박이 불규칙해졌다. 1년여 동안의 수배생활에 뒤이은 장기 단식은 ‘저러다 사람 죽이겠다’ 싶게 했다. 단식 36일째에 만난 안 위원장 상태는 듣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앉아있기조차 힘들어 5분 이상 앉아서는 말 잇기를 불편해했다. 눈빛은 한 겹 막이 씌인 듯 흐렸고 말을 할 때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해 말소리가 잘 안들리기도 했지만 말하는 내용만은 총기를 잃지 않고 또렷했다. 안 위원장은 “자본의 탄압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노동자의 단결이 중요하다”며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차별, 공장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자비정규노조를 취재하고자 공장을 방문했지만 비정규노조는 방문객을 ‘에스코트’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현자정규직노조를 통해 ‘방문증’을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노조가 사회적으로 알려지면서 이곳저곳에서 방문을 많이 온 탓인지, 비정규직노조까지 안내를 맡은 현자노조 활동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기가 묻어나는 듯 했다. 가는 길에 그는 “언론이나 다른 단체에서는 현자 비정규직 투쟁을 ‘노-노 갈등’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고 ‘제안’했다. “노동자들의 투쟁 대상은 자본이지 노동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 귀족의 배부른 투정’ 정도로 왜곡되면서 보수언론에서 의도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으로 문제를 비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만난 첫 노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생각지도 않게 또다시 ‘노-노 갈등’이라니.

 현자는 정규직노동자와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어깨를 맞대고 똑같은 일을 한다. 상대적으로 힘든 공정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몫이지만 임금은 정규직노동자의 5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내 복지라든가 비인격적 대우, 차별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용불안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짤리지 않기 위해’ 현자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없으면 버리는 부품 취급”을 감내해야 한다. 정규직노동자 4명이 일하던 공정에 비정규직노동자 1명이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그마저도 그 비정규직노동자는 최근 ‘돌연’ 정리해고됐다. 
 현자비정규노조 조가영 선전국장은 “비정규직 내부에도 차별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사내하청에도 1차하청이 있는가 하면, 2·3차하청도 있다. 뿐만 아니라 파견 아르바이트에다 한시하청까지 있다. 2·3차하청 비정규직노동자인 조 선전국장은 “작업 시 필요한 장갑과 안전화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직접 사서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며 “부끄럽지만 그 문제 때문에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2·3차하청인 ‘현대세신’에서 일하는 한 여성노동자는 “시급 10원 올리려고 ‘웃통벗기’ 투쟁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이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시급에서 10원 오른 수준이었고 올해는 16원 오른 수준에서 결정됐다. 온갖 차별을 감내하며 하루에 12시간씩 고되게 노동해서 한 달에 90만 원 정도 받는 이들에게 ‘노동귀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동자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안 위원장의 부인 윤현경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안 위원장의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는 소식에 모두들 안 위원장에게로 달려갔고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선 조가영 씨가 몰래 흐느끼고 있었다. “삭발투쟁하며 ‘빡빡’ 깎은 머리가 이제 조금 자라기 시작했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며 벗어 보여주었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잠시 후 깨어난 안 위원장은 몸이 심히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에 있는 원·하청 공동출근투쟁에 꼭 참가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부인 윤 씨는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현대자동차가 어디 한번 어떻게 하나 보자”며 “‘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 놈들 앞에 내놓자”고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주위 사람들이 차마 말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윤 씨의 볼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들에게 ‘정리해고’와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은 바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였다.
 어느새 윤 씨는 또다시 ‘노-노 갈등’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녀는 “정규직노조 위원장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으면 어디 공장이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 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규직노조 사무실의 너무나도 ‘사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비정규직노조는 사무실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지난 추석 연휴 전 사측은 비정규직노조의 농성장에 대해 ‘퇴거강행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신청, 법원은 퇴거강행 고시문까지 부착했다. 농성장은 경비들과 형사들로 둘러싸여 농성장은 언제 침탈당할지 모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위기감을 느낀 농성단은 추석연휴 기간 동안만이라도 정규직노조 사무실을 ‘빌려 쓸’ 것을 요청했지만 정규직노조는 ‘노조원들의 의사 수렴 구조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급기야 구석에 몰릴 데까지 몰린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노조 사무실에 집단적으로 ‘찾아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결국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노조 사무실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추석연휴 기간 동안 ‘연행’을 각오하며 농성장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 사이의 갈등은 이보다 훨씬 복잡다단할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안 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한지 38일만에 농성단 전원 복직 등을 사측과 합의하며,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소중한 승리를 안겼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은 “이번 현자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통해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현자 사측은 노동부의 사내하청 불법 판정에도 여전히 파견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19일 현자는 노동부에 제출한 계획서에서 

      △산재, 지원반, 특근인원 필요시 파견근로자 혹은 계약직, 일용직 근로자 직접채용 

      △원하청 혼성 작업에 대한 원하청 공정 재배치 추진

      △도급계약 해지시 근로자 고용승계 신규계약 협력사가 자율 판단 


등의 추진계획을 밝혔다. 여전히 비정규직노동자를 채용할 것이고 공정 배치만 교묘히 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겠다는 기만적인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현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노동자의 권리 선언’ 그 첫 번째 장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과 정규직노동자가 하나되어 더 큰 싸움을 준비하는 일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현장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권리들의 선언은 확실히 혁명의 진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폭풍우치는 바다의 물결에 일렁이는 달빛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