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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연대성명] 필리핀 네슬레 노조위원장 디오스다도 포르투나(Diosdado Fortuna)의 살해에 관한 한국시민사회단체의 연대 규탄 성명서

[연대성명] 필리핀 네슬레 노조위원장 디오스다도 포르투나(Diosdado Fortuna)의 살해에 관한 한국시민사회단체의 연대 규탄 성명서

우리 한국의 인권, 노동 단체들은 지난달 말, 한 필리핀 노동운동가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커다란 충격과 슬픔 속에 접하였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필리핀 네슬레 공장의 노조위원장이던 디오스다도 포르투나(51세)는 지난 달 22일, 필리핀 남부 라구나(Laguna) 지방의 카바요(Cabuyao)에 위치한 네슬레 공장의 파업현장을 떠나 집으로 가던 중 오토바이에 탄 두 명의 남자들이 쏜 45구경 총탄 두 발을 등에 맞고 숨을 거두었다. 1976년부터 30여 년 간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해왔던 한 노동운동가의 삶이 너무나도 비극적인 막을 내린 것이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이번 사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필리핀 네슬레 공장에서만 해도 파업 중에 위원장이 살해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 1987년 멜리튼 로하스(Meliton Roxas) 당시 위원장이 파업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일이 있었다. 필리핀 전체적으로는, 포르투나가 살해된 것과 같은 달 13일, 슈나이더 포장노동자 조합(SPWU)의 대의원이던 테오티모 단테(Teotimo Dante)가 파업 투쟁 중에 살해당했으며, 한 통계에 따르면 올 1월부터 9월까지 필리핀 전국의 11개 사업장에서 1,011명의 노동자들이 파업과정에서 물리적인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2001년 도요타, 닛산, 네슬레, 2002년 술피시오 라인즈(Sulpicio Lines), 2003년 굿 파운드 시멘트(Good Found Cement) 등에서 파업 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과정에 굵직굵직한 폭력 사태가 발생해 왔다. 급기야 작년 11월 16일에는 6,443 헥타르의 광활한 설탕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수백 명의 경찰과 군인들이 농장 내로 진입해 7명의 노동자들을 살해한 ‘하시엔다 루이시따(Hacienda Luisita)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필리핀에서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과 물리적 공격이 일상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회사 측이 고용한 경비원들 뿐만 아니라 경찰, 군대까지도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에 가담하고 있으며, 포르투나의 경우처럼 사실상 ‘청부살인’까지도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일은 드물다고 하니, 필리핀에서의 노동운동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지만 할 수 있는 운동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현 대통령과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필리핀 정부는 다국적기업과 자본의 횡포로부터 국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물리력을 동원해 국민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또한 아로요 정권의 친자본적인 정책은 거대 다국적기업을 포함한 기업들의 영향력과 이윤을 날로 증가시키고 있으며, 그나마 존재하던 기업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노동 기준을 완화함으로써 오늘날의 필리핀을 ‘기업의 자유로운 사냥터’로 만들어가고 있다. 반면, 평생을 땀흘려 일해 온 대다수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고용 불안과 임금 하락 속에서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빈곤해지는 ‘노동빈곤층’의 삶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은 포르투나의 경우처럼 조직적인 폭력과 살해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인데도 법에 의한 보호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포르투나 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아로요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네슬레 측의 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네슬레는 세계 각지에서 적대적인 노조 정책과 파괴 행위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필리핀 공장에서도 회사 측의 퇴직금 지불 거부로 인해 2002년 1월부터 3년 넘게 파업이 진행돼 왔는데, 그 기간동안 약 10여명의 네슬레 노동자들이 가난과 질병 등으로 숨을 거두었고, 노동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사측 경비원들과 경찰의 폭력, 노조 지도부에 대한 협박이 비일비재했다고 현지 노동자들과 노동인권단체들은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이끄는 위원장이 살해된 극단적인 사태가 생긴데 대해 네슬레 측은 깊이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한국의 인권, 노동단체들은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요구한다.

필리핀 정부는 포르투나 위원장의 살해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이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운동과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일체의 탄압과 공격 행위를 즉각 중단하여야 한다. 네슬레 사는 자사의 공장에서 다시는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살인, 폭행, 협박과 같은 불행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그간의 노조에 적대적인 정책을 중단함으로써 기업의 인권 책임을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2005. 10. 13일


광주인권운동센터, 구속노동자후원회, 다산인권센터, 민가협,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부산인권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새사회연대, 아시아의친구들, 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전국대학노동조합, 전태일기념사업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추모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인권연대,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이상 23개 단체), 이민수 목사(개인, 일본 St. Paul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