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야기

국정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흥행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구조

<편집자 주: 8월 27일은 이른바 국정원에 의한 ‘내란음모 사건’이 발생한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은 <내란음모사건 3년, 한국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날 토론문을 공유하면서 그동안 인권운동사랑방이 분단체제와 국정원에 관해 고민했던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내란음모 사건’에서 국정원은 기획, 제작, 주연까지 1인 3역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국정원이 모든 정보를 쥐고 여론재판을 이끌었으며 이미 여론재판에서 구속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 압수수색을 경험한 사람들, 5월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된 조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작간첩 피해자들을 ‘간첩, 빨갱이’로 만들어 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던 모습은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도깨비나 돈키호테’ 대하 듯하며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켰던 모습과 겹쳐지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과 수사를 경험했던 소환자들은 형사소송절차에서 보장하는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음을 공통으로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압수수색을 허위로 고지하거나, 영장을 형식적으로 제시하였으며, 혐의 사실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이라고만 밝힌 채 이름을 이야기 하지도 않은 사례도 있었고 설사 밝혔다고 해도 허위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또한 국정원 수사관들은 영장의 범위를 벗어난 압수, 공소사실과 무관한 물품들에 대한 압수를 진행하였고 이것들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도 못했습니다.

 

국정원 이라는 비밀정보기관의 수사는 일반적으로 경찰의 수사와는 다릅니다. 장소가 국정원이라고는 하지만 공개되지 않고, 국정원 수사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수사한 사례도 보고되었습니다. 국가정보기관을 대표하는 국정원 수사관 대(vs) 개인이라는 위치는 수사과정에서 무기대등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나가기 힘듭니다. 국정원 수사의 핵심은 ‘조사 대상자들의 발언을 통한 판단, 그 사상에 대한 자백유도를 통해 내란음모 피의사실’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수사 도중 국정원 수사관은 시종일관 소환자들의 페이스북 등 감시를 통해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네가 너를 알고 있으나 빨리 자백해라’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위협적이고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환자들의 묵비권은 형해화되었고 수사과정에서 오랫동안 본인이 국정원의 사찰과 감시의 대상이 되어왔음을 확인하는 순간 공포와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행기관으로서 국정원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에 이르는 이른바 비밀경찰 국정원은 외양으로는 ‘정보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 국정원이 작동하는 원리는 ‘실행기관’으로서 그 위치를 잡고 있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한다지만 실재로 정권/진영/권력의 안위 보호를 위한 정보기관의 ‘정보수집’은 그냥 수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행위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분단체제이라는, 국가보안법체제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성 속에서 국정원은 세계 다른 어떤 정보기관들보다도 독특하게 대공 업무에 관한 ‘수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수사가 적법절차에 따라 집행되는지 바깥에서 감시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수사권은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내란음모사건 소환자들의 사례, 서울시 조작간첩 사건에서 거짓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사례는 정말 빙산에 일각일 뿐입니다. 국정원이라는 비밀기구의 특성상 외부에서 감시와 통제가 어려운 조건에서 국정원이라는 존재는 구조적인 인권침해의 상수에 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과 수사권

 

또한 국정원이 단순 정보기관이 아닌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공안정보 수집권한뿐 아니라 공안범죄 수사권한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보기관은 잠재적 위험요소에 기준하여 비밀리에 정보 수집활동을 벌여 왔습니다. 반면 범죄수사는 엄격한 적법절차가 준수되어야 합니다. 정보 수집 활동과 수사·집행 활동이 각기 다른 원칙에 따라 운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활동에 대한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는 비밀경찰이 왜 인권에 대한 위협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국가안보를 다룬다는 비밀주의 특성상 그 활동방식이 공개되지 않을 경우, 국정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결국 국정원이 흘린 정보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사회는 비밀경찰 국정원에게 여전히 모호하고 그래서 광범위하게 정보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국정원이 사고를 치지 않은 이상!). 국정원이 무슨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는지? 수집된 정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집적되고 유통되고 관리되는지? 국정원이 정보수집업무라고 하면서 해왔던 광범위한 사찰은 정권을 비판한 특정 집단들에게만 향한 걸까?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관념은 자유로운 양심, 사상, 표현 및 소통을 억압하고 민주사회에 다양한 의견형성을 ‘인위적으로’ 가로 막습니다. 보이지 않는 물리적인 힘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동안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 사회의 작동으로 오독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노동권 등 기본권의 소중함을 외쳐도, 한국정부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했다고 해도,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이라고 해도 국정원과 같은 존재가 있는 이상 인권과 민주주의는 진전할 수 없고 또한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밀경찰 ‘국정원의 존재’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합니다. 비밀경찰의 정치는 군부독재시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정원이라는 비밀정보기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한 한국사회에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조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중보부로부터 시작한 비밀경찰 국정원의 역사가 40여년이 넘고 그동안 발생한 인권침해가 수도 없이 많은데 사회운동으로서 국정원에 대한 전문적인 감시단체 하나 없는 현실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국정원에 의한 통합진보당원들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사회운동의 힘이 국정원을 겨냥하지 못한 채, 공안탄압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채 지난 3년이 흘러갔습니다. 그 사이 국정원은 올 초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고 또다시 사이버테러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기회를 시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흥행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구조

 

내란음모 사건을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국정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흥행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구조는 무엇이었나를 심각하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20년 민주주의로 이루었다고 믿고 싶었던 성취들이 신기루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한국사회에 대해 보다 날카로운 분석과 인식이 필요합니다. 국정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흥행할 수 있었던 한국사회의 구조를 떠올릴 때 ‘분단과 북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권이 보편적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한국사회는 북이 언급되는 순간 인권은 멈추고 예외상태가 합리화됩니다. 그렇다보니, 국정원 등 공안세력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모든 의제를 ‘북’과 연결하여 물꼬를 틉니다. 테러방지법을 제정할 때도 국정원은 북의 테러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서울시 조작간첩사건 때도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받았지만 국정원은 끝까지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확신하며 간첩을 잡으려다가 무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간첩조작도 문제이지만 ‘간첩을 필요로 하는’ 한국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비판을 함께 마주해야 하는 대목입니다.

 

 

 

북이 언급되는 순간 멈추는 인권

한창 종북몰이가 심각할 때, 많은 사회운동은 “나는 통합진보당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라는 서두로 입을 때었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에서 종북논란을 비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종북몰이에 맞장 뜨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북’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분단체제가 만들어놓은 반공, 반북, 분단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는 매우 특수한 방식으로 이미 북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 북을 찬양하는 이른바 ‘불법게시물’이 올라와 경찰과 방송통신위원회로 삭제명령을 받았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삭제명령이 부당하니 검토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해보았습니다. 우리는 국가권력에게 게시물을 왜 삭제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지만, 법원은 성의 없이 ‘국가보안법 7조에 따른 불법게시물이니 삭제하라’고만 했다. 뭔가 견고한 벽 앞에 딱 멈춰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명백하고 현저한 위험이 없는 표현물들이 단지 북의 주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니. 통합진보당 해산 경우도 거칠게 이야기하면, 통합진보당의 주의 주장이 북의 주의 주장과 동일하니 해산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불법게시물 삭제명령과 거의 흡사한 논리적인 구조를 갖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지난 20년간 유엔인권기구로부터 폐지와 개정 권고를 받아왔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자리 매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유엔인권기구에 ‘한결같이’ 북의 존재를 들먹이며 권리 제한의 타당성을 역설해왔습니다.

 

지난 6월 유엔 자유권규약에 따라 한국정부가 정기적으로 한국의 인권상황을 보고하고 유엔으로부터 심의 받는 자리에서 한국정부의 답변은 “국가보안법 제7조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대치한 상황에서 필요최소한으로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걸 알면서 북한의 주의 주장에 찬양 동조하는 경우에만 적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악용되지 않도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물리적 힘으로서 위력을 갖는 분단체제

 

1948년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나뉜 후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조건에 의해 강력한 규정을 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3년간 끔직한 내전을 겪은 후에도 한반도의 남과 북은 평화체제로 이행하지 못한 채 지난 70년간 군사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분단체제는 남과 북 모두 강력한 국가주의, 남북 모두 상대를 적대시하는 법 제도, 초유의 군사비 지출, 헌법을 압도하는 공안기구들의 권력 강화로 귀결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가능성이 높고 좌우 대립과 갈등이 내면화된 사회의 모습이 분단체제가 마주하는 얼굴입니다.

 

지배 권력은 1987년 6월 항쟁이 이끌어낸 ‘민주주의’ 이후에도 분단체제를 유지시켰고 매우 구체적인 물적 조건들을 통해 한국사회를 촘촘히 엮어냈습니다. 동아시아의 군사적 대치, 한반도에 배치된 엄청난 무기들, 최근 사드배치까지 한반도의 군사화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단체제는 한국사회 내적으로 징병제, 천문학적인 국방비, 헌법을 뛰어넘는 공안기구들의 활동으로 묶여있습니다. 사라지는 듯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 분단체제의 물리력을 우리의 운동은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