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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하셔야죠.

지난 6월 7일 신촌 연세로 차없는거리에서 진행된 제15회 퀴어문화축제는 유례없는 진통을 겪었다. 해마다 퀴어퍼레이드를 할 만한 장소를 찾고 그 장소의 사용을 두고 기관과, 때로는 민간기업과 협상하고 애를 먹었던 것이 반복된 건 두말할 것도 없지만, 올해는 특히 보수기독교의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조직적으로 퀴어퍼레이드를 방해하여 축제의 시작부터 참여하는 사람들이 혐오발언과 폭력에 노출되고 퍼레이드 진행이 4시간 가까이 지연되었다.

심지어 제15회 퀴어문화축제는 경찰에 집회신고를 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도로 위에 눕고 행사 차량을 막아서는 등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집회 방해 행위에 대해 경찰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경찰의 이해도나 성소수자 인권보호에 대한 경찰조직 자체의 책임감 있는 태도는 차치하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배경에는 퀴어문화축제의 장소사용과 관련하여 서대문구청이 보여주었던 미적지근 하다못해 방해에 가까운 태도가 주요한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대문구청은 사전에 신촌 연세로 차없는거리에 대한 교통통제 및 행사진행을 승인하였지만 5월 27일 ‘세월호 사태와 관련한 사회분위기’를 명목으로 승인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바 있다. 명목은 ‘사회분위기’였지만 실상은 민원게시판을 도배하고 민원실에 전화를 집중적으로 걸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표출하며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한 보수기독교 세력의 조직적인 방해에 서대문구청이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 이유였다. [“서대문구청, '퀴어문화축제' 승인 갑자기 취소”, 오마이뉴스, 2014.05.28]
[사진 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 [사진 출처] 동성애자인권연대


공적 공간의 사용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의지’를 가져야하는 공공기관이 “어쩔 수 없다.”라고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위치로 빠지는 순간, 성소수자들은 공공기관도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 그 성소수자 혐오를 직접 대면하고 맞서야 하는 입장이 된다. 서대문구청은 퀴어문화축제 당일에도 실제로는 구청의 승인을 받은 적이 없는 혐오세력의 반대집회에 대해 구청의 승인을 받은 행사라는 허위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경찰이 적극적으로 반대집회를 저지하지 않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이행되지 않은 권고

안타까운 것은 서대문구가 2013년 11월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인권위원회를 두고 있는 자치단체라는 점이다. 지난 7월 15일 뒤늦게 공개되기는 했지만, 서대문구 인권위원회는 이미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기 이틀 전인 6월 5일 서대문구청의 “연세로 퀴어문화축제 교통통제 및 행사승인 취소”가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임을 인식하고 서대문구청장을 상대로 “퀴어문화축제의 진행을 보장하고, 앞으로 성소수자임을 이유로 한 행사불승인 등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문을 낸 바가 있다.

서대문구 인권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행사는 일상적으로 편견과 차별, 폭력에 노출된 성소수자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이러한 고통과 억압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평등을 주장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인권행사”라며 퀴어문화축제의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

서대문구청이 승인을 취소한 근거이자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논리로 제시한 ‘사회분위기’에 대해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고 흥겨움만을 추구하는 행사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퀴어문화축제가 “우리사회가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추도와 애도의 사회적 의미”를 환기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퀴어문화축제가 ‘세월호 사태와 관련한 사회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자의적인 판단을 무력화시켰다.

인권위원회는 특히 지난 2013년 마포구 <커밍아웃문화제> 행사 개최에 대해 마포구청이 홍대 앞 나무무대 사용신청을 거부한 사건과 2014년 4월 <제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개최에 대해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이 2.28기념공연 청소년광장 대여요청을 거부한 사건을 서대문구청의 교통통제 및 행사승인 취소와 연결 지음으로써 서대문구청의 승인취소가 성소수자의 공적 공간 사용을 거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행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서대문구 인권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민원 발생과 갈등이 예상되는 행사를 승인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는 있으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그러한 갈등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불합리한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고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라고 권고함으로써 소수자 인권 증진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서대문구 인권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6월 5일 결정문이 나오고 나서 이틀 동안 서대문구청의 교통통제 및 행사승인 취소는 번복되지 않았다. 서대문구청이 인권위원회가 권고하였던 대로 승인취소를 철회하고 정말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했더라면 퀴어문화축제가 적법하게 신고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 혐오세력과 대치하며 집회의 자유를 침해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듣고 싶은 답변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과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축제조직위)는 서대문구 인권위원회의 권고문을 바탕으로 7월 16일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반대집회가 구청 승인 행사라는 허위 사실이 전달되게 된 책임 소재와 향후 성소수자 관련 행사 개최 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서대문구청의 재발방지대핵 내용 및 추진계획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지난 6월 7일 제15회 퀴어문화축제 시 신촌연세로 독수리약국 앞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위로콘서트는 우리 구에서 불허된 행사입니다.
우리 구는 함께 만들어가는 인권도시 서대문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연세로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하여 주말만 차없는거리를 시범운영하는 관계로 연세로 사용 및 운영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향후 공정하고 체계적인 사용·관리가 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 중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끝.“


7월 25일 도착한 한 장, 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이 한 단락의 공문은 “정말 이 내용이 ‘끝.’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동시에 애초에 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하여 무슨 질문을 했었는지 다시 자문해볼 정도로 ‘아무 답변이 되지 않았다.’

‘차없는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 앞이든 광장이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이용해서 ‘공공장소’라고 여겨지는 공간들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방침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성소수자가 지역 커뮤니티를 이루는 일원으로서 다른 구성원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공적’ 공간을 만들어낼 의지가 서대문구청에 있는지를 듣고 싶은 것이다.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거리에서는 그 거리가 어디든지와 관계없이 수많은 만남이 이루어진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으로 존재가 확인되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성소수자요, 혹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자요라고 집단적으로 커밍아웃하는 현장에서 누군가는 꼴 보기 싫어할지라도 성소수자들은 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집단적으로 확인된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이, 길을 걷는 학생들이, 데이트를 나온 이성애자커플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시 들어간 커피전문점 손님들이 성소수자를 보게 된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와서 트럭에 음료수를 건네주고 혼자 고립되어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의 연결성을 찾지 못해 말라가던 성소수자가 또 다른 성소수자를 보게 된다. 보수기독교 세력의 동성애 혐오 발언에 일상적으로 상처 입는 크리스천 성소수자 중 누군가는 퀴어퍼레이드에서 그들을 축복하는 또 다른 크리스천 성소수자를 만나게 된다.

‘공적’인 공간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이 사람들을 만나는 곳.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못하는 지점에 부딪히더라도 서로 다른 ‘우리’가 이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대면하게 해주는 장소가 ‘공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서대문구청이 ‘차없는 거리’의 사용에 대해서 ‘정말로’ 고민해야 하기를 바란다. 어떤 행사에 그 장소를 내어줄 것인가, 어떤 절차에 의해서 승인할 것인가에 대한 규칙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리가 시민들이 만나고 서로를 인식하고 부딪치고 이해하는 공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서대문구청이 보내준 답변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듣고 싶은 답변이다.

활력 있는 공적인 삶은 민주주의의 열쇠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만나는 기회를 얻고, “타인들”이 머리에 뿔을 달고 있기는커녕 삶을 풍부하고 활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긴장은 위협적이기보다는 교훈적이고 힘을 불어넣어주며 심지어 흥미진진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공적인 삶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평가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언하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다. 그리고 그들 중 어떤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도 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파머, 글항아리 159-160



파커 J.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2012,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글항아리
몽, “양해해주시면 안될까요?”, 인권오름, 2013년 12월 04일
오마이뉴스, “서대문구청, '퀴어문화축제' 승인 갑자기 취소”, 2014년 5월 28일
일다, “성소수자에게 너무 먼 ‘국가’, 2014년 8월 11일
레고, “공적공간에서 함께 영화보고 이야기하기”, <성소수자와 공적공간 “물의인가, 무리인가”>, 2014년 6월 11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15회 퀴어문화축제 관련 서대문구청 입장 및 계획 질의”, 2014년 7월 16일
서대문구인권윈원회결정, 제2014-06호, “서대문구청장의 연세로 퀴어문화축제 교통통제 및 행사승인 취소 관련 권고”, 2014년 6월 5일
덧붙임

나기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