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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앗간] 비혼은 현재진행형

최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에서 발표 한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54.3%,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40.0%로, 결혼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2002년 조사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문항의 비율이 61.2%이고 그 이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결과를 통해서도 우리 사회의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청년세대만이 아니라 청소년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짚어볼 만한 부분은 성별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남자 청소년의 비율이 62.9%인데 반해, 여자 청소년의 비율은 45.6%이다. 이러한 차이는 비청소년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2012년 사회조사에서 같은 문항에 대해 미혼남성은 60.4%, 미혼여성은 43.3%로 응답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과연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이 결혼을 필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견해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더 높은 것은 왜일까?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경제적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의 이유로 말미암아 결혼을 지연시키거나 선택하지 않는다는 분석만으로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그것에 더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잘 설명해 낼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제도는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가사노동 및 가족의 돌봄과 맞벌이를 통한 생계유지라는 이중의 짐을 질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예전보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여성과 비교했을 때의 것일 뿐, 현재의 남성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이번 조사에서 남자와 여자가 모든 면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느냐는 물음에 여자 청소년이 95.7%, 남자 청소년이 88.2%가 그렇다고 답한 것이나 가사는 공평하게 부담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여자 청소년이 74.6%, 남자 청소년이 58.9% 그렇다고 답한 것들을 본다면, 양성평등 인식과 결혼에서의 성별 역할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아직도 성별에 따라 크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한다면, 여성들은 여전히 집 안에서의 노동과 바깥에서의 생계 둘 다 책임져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떠안으며, 출산과 양육이라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일을 일정기간 중단하게 되거나, 다시 찾아간 일터에서도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남성임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여자 청소년들은 곧 자신들에게 펼쳐질 미래를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은 청소년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이다. 청소년 모두 1순위를 적성과 흥미, 2순위를 수입으로 꼽았지만, 여자 청소년이 적성과 흥미, 보람․자아성취 등에 대한 선택 비율이 더 높은데 비해, 남자 청소년은 수입과 안정성에 더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여자 청소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집중도나 자아실현의 욕구가 더 크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여성들이 결혼/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각본대로 성별 역할을 수행하게 만드는 지금의 결혼제도는 여성들의 자아실현이라는 욕구를 채워주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실상이 이러한데 어떻게 여성들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선택할 수 있을까?

7월 11일 세계인구의 날 기념행사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편화되고 있는 만혼 추세나 출산 기피 현상 등은 젊은 세대의 선택이나 사회적 추세로만 관망할 수 없으며” “일자리, 주거 문제를 포함한 정부 정책 전반이 결혼과 출산 중심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모든 사회·복지정책은 결혼과 가족을 기반으로 짜여있다. 얼마나 더 결혼/가족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강화하여, 여성들의 실제적인 욕구와 생각들을 저버리려는 것일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정하고 이에 따른 정책·제도를 기획해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의 문제의식과 인식수준이 저러하다는 것을 볼 때마다 분노스럽다 못해 이제는 지겹기까지 하다.

여성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회·경제가 불안정하든 안정적이든 관계없이 자유로운 삶의 기획의 기회를 거의 가져본 적이 없다. 여성이 결혼/가족의 울타리 안의 성별화된 규범과 역할에서 벗어나 자아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자기실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진정 원하는 것과 실제로 처한 현실에 대해 정책입안자들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 여성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이 자기만의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흐름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고, 스스로가 원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더 많이 드러내야 한다.

언니네트워크는 올해 6월부터 비혼여성․1인 가구를 위한 가이드북 제작 프로젝트 <플랜 B>를 진행 중이다. 정책․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혼여성이 각각의 흩어진 점이 아니라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를 확인하고 선을 잇고 네트워킹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된 감자모임을 통해 나는 비혼여성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도 자유롭고 의미 있는 삶을 기획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비혼으로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지만,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어 답답했던 주거, 일자리, 세제, 건강, 안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과 커뮤니티 사례 및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노하우들을 나누고 그 성과들을 가이드북 형태로 담아낼 예정이다. 따로 또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삶의 모델과 대안을 찾아보고 상상해봄으로써 진정 자신이 원하는 생애 기획을 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라며, 보다 많은 여성이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여전히 굳건한 결혼/가족 중심의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다양한 형태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덧붙임

케이리오 님은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