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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방역의 정치 넘어, 인권의 정치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인권활동가의 고민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국 사회는 강력한 방역 정책과 행정 조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재난 상황 등을 마주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권리를 침해하는 정부 정책,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영역을 넘나드는 대응을 위해서 인권단체들이 모여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를 결성했고, <코로나19와 인권 -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문제점과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안전과 방역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 소위 ‘부주의하게’ 감염된 것은 확진자 개인의 책임이라는 여론, 집회시위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보수우익 집회 참여자들이 마스크 없이 모였다는 말에 멈칫하는 마음과 같이 정리되지 않는 난감함은 여전했습니다. 이에 인권활동가들의 고민을 나누고 운동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내부 집담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인권활동가들의 고민 - 인권으로 전환하자! 방역의 정치 넘어 인권의 정치로>라는 제목으로 11월 3일, 10일, 24일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집담회에서 각각 ‘인권의 원칙’, ‘책임성’, ‘전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코로나19와 인권의 원칙

코로나19 확산 이후 긴급한 재난 상황이라는 인식 하에 강력한 행정 조치들이 연달아 펼쳐졌고, 특정한 정체성이나 집단이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비난받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인권단체들은 문제적 정책과 상황을 비판했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마치 방역과 안전을 해치려는 시도처럼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자유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라는 식으로 문제적 상황을 ‘방역vs권리’나 ‘안전vs자유’와 같이 권리의 대립 구도로 바라볼 때, 인권의 원칙은 힘을 잃고 ‘개인에게 속한 소유권적 권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인권운동은 문제적 상황에 묻힌 목소리를 드러내는데 힘써왔지만, 이는 사건의 나열 구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각 문제를 연결해내며 공통의 지평을 확인하는 인권의 원칙을 이야기하게 된 배경입니다.

첫 번째 집담회에서 발제자인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는 존엄, 자유, 평등, 연대라는 인권의 토대 위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권의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 존엄성 존중의 원칙, △ 기본적 자유 존중의 원칙, △ 존중의 평등 원칙, △ 연대성의 원칙 아래 각각 세 개의 세부 원칙이 자리해 총 열 두 가지의 원칙이 이야기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확인함으로써 팬데믹 상황에서 인권의 지도를 그려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권침해를 개별적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한계나 각 개인의 권리가 대립하는 구도를 넘어서는 활동, 사회적 관계 속에 성립하는 권리를 제안하는 운동의 필요성을 나눴습니다.


책임성에 대하여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자신의 동선을 숨겼던 인천의 한 학원 강사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그에 따르는 감염병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회구조적 원인을 외면한 채 문제로 지목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책임이 모두 개인에게 돌려지자, 감염 및 감염으로 인한 차별과 혐오는 마치 개인의 잘못에 대한 징벌처럼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집담회에서는 책임을 둘러싼 인권운동의 난감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코로나19 성소수자대책본부 한희 활동가, 공권력감시대응팀 정록 활동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서채완 활동가가 각각 성소수자, 집회시위, 법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먼저 나눠주었습니다. 이태원 집단 감염 이후 언론과 여론이 모두 성소수자를 공격할 때,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방역 당국과 소통하며 감염의 확산과 혐오차별의 확산 모두에 대응했습니다. 방역 당국은 “혐오차별이 방역에 도움 되지 않는다”며 성소수자들에게 검진을 독려했지만, 정작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며 집회 참여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방역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개인에게 돌려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는 법으로 규율할 수 없는 행위나 내용까지 법적 처벌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법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의 경계를 흐리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며 국가의 책무부터 개인의 도의적 책임까지 수많은 ‘책임’이 난무하는 지금, 인권운동이 물어야 할 책임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라도 책임의 다양한 층위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고민을 나눴습니다. 책임론이 등장하는 여러 상황을 잘 들여다보고 인권운동의 구체적 입장을 정립해야 할 필요도 제기되었습니다. 응보나 징벌적 책임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적 책임을 제시하자는 의견,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상황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는 ‘인권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다짐도 이어졌습니다.

  


어떤 전환을 말해야 할까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드러난 문제들이 모두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 드러내듯이,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구조적 문제가 감염병이라는 상황과 결합하며 거대한 사회적 재난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돌봄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망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의 대응은 여전히 특정 정책이나 상황을 비판하는 수세적 활동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재 집담회에서는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운동,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운동을 고민하며 인권운동은 어떤 전환을 지향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권운동이 바라보는 전환의 키워드로 ‘노동’, ‘기후위기’, ‘나이듦과 돌봄’에 대해서 각각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안명희 활동가, 청소년기후행동 김보림 활동가,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 활동가가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대한 인식과 전환의 방향을 이야기했습니다. 나아가 전환의 방향뿐 아니라 전환의 움직임을 만들어나갈 ‘세력화’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전환을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각 영역이 더 많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인권의 정치와 세력화를 통해 전환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인권활동가들의 고민>이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세 차례에 걸친 집담회는 명확한 입장이나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인권활동가들의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집담회를 통해서 현재 인권운동이 마주한 막막함을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고민을 확인하고 함께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는 의미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담회를 함께 기획한 ‘인권연구소 창’, ‘인권저널’,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앞으로 집담회에서 나온 고민을 심화하는 자리를 만들어나갈 예정입니다. 방역의 정치를 넘어서는 인권의 정치가 무엇일지,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더라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