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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밀양 765kV 송전탑 문제가 나의 문제인 이유

공공연한 수탈에 동조하지 않으려면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뙤약볕과 폭우도 막을 수 없었다. 강아지도 일손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쁜 농번기, 밀양 주민들은 한해살이를 기대는 땅을 뒤로 하고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매일 깊은 산속 공사현장을 향했다. 인부들이 출근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3시에 나서야 했다. 하루 끼니를 챙기고 일흔, 여든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무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8개월간 중단되었던 밀양 지역의 765kV 송전탑 공사를 5월 20일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다시 강행하면서 밀양 주민들의 일상이 바뀐 것이다. 5월 29일까지 지난 열흘 간 20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다쳤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단지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의 문제일까? 한전은 밀양 주민들이 국책사업을 극성스럽게 반대한다며 지역이기주의로 비방했다. 국책사업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송전탑이 왜 필요한지 먼저 해명할 수 있어야 하건만, 한전은 오히려 저 스스로 밀양 주민들의 일상과 삶터를 밀어버리는 불도저가 되고 있다.

불도저 한전

한전이 현재 추진하는 것은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울주군, 기장군, 양산시, 밀양시를 거쳐 창녕의 북경남 변전소까지 90.5km를 161기의 송전탑을 세워 수송하는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다. 그중 52기를 밀양의 단장면,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4개면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전은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 없이 송전탑 공사를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 2006년 밀양 주민들의 반대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오늘까지 8년이란 시간이 있었지만, 한전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공사 강행에만 열을 올렸다. 공사 저지를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2교대, 3교대로 나누어 새벽마다 산에 올라 인부들과 기계들에 맞섰다. 용역이 처음 투입된 2012년 1월 16일, “이 억울함을 부디 세상이 알아주길 바란다”며 분신한 고(故) 이치우 어르신의 죽음으로 밀양 송전탑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알려졌다.

초고압 송전탑인 765kV 송전탑은 45층 건물 높이 140m로, 거대하다. 환경이 파괴되는 것뿐 아니라 소음, 전자파 등의 문제도 심각해 주민들의 건강은 물론, 오랫동안 일구어온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밀양 구간은 송전탑이 마을에 너무 가깝고, 논밭 위로, 과수원 위로, 학교 주위로도 지나는 경우가 많아 더욱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밀양 주민들은 765kV 송전탑이 불가피한 것인지 명백하게 밝힐 것을 한전에 요구하며, 지중화(地中化, 송전선을 땅으로 묻는 일) 등 다른 대안에 대한 검토를 할 수 있는 전문가 협의체 구성을 제안해왔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한전은 동계 전력수급 위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며 다시 공사를 강행했고 공권력 투입까지 요청했다. 그런데 공사 이유로 내세웠던 급한 불이 사실상 전력수급 위기 때문이라기보다 UAE 원전 수주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는 밀양 주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한전은 기계에 몸을 묶으며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폭력으로 화답했고, 경찰은 방조했다.

한전의 못된 짓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지난 8년을 온몸으로 이야기해온 밀양주민들에게 한전은 협의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765kV 송전탑 수용만을 강요해왔다. 송전탑 피해가 덜한 마을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면서 마을공동체 간에 갈등을 유발했고, 주민들의 삶터가 가진 의미를 함부로 삭제하더니 밀양 송전탑 문제를 돈의 문제로 치환시켜버렸다.

“땅값이 똥값 되었다”는 하소연은 보상을 더 해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소중하게 일구어온 땅과 그 땅에서 정성껏 기른 생명들이 함부로 저평가되는 게 서러워서 하는 말이다. 한평생 농사꾼으로 살며 몸으로 배운 땅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지켜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가치는 사라지고 가격만 판치는 이 사회는 제멋대로 밀양 주민들을 쉽게 이기주의자로 호명해버린다. 더구나 한전이 “획기적”이라며 내세운 보상안의 실상은 피해 주민들에 대한 직접 지원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책정하려는 보상금을 차라리 지중화 하는 데 사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주민들의 요구는 묵살되는가?

공사재개를 막는 밀양 주민들과 시민들의 모습

▲ 공사재개를 막는 밀양 주민들과 시민들의 모습


밀양-우리 모두와 연결된 문제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공급을 위한 송전설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5월 28일 열린 ‘밀양 송전탑과 전력수급, 쟁점과 대안’ 긴급토론회에서도 참여자들은 그간 ‘공급확대’만 집중한 전력수급 정책의 문제가 이번 밀양 송전탑 문제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아랑곳 않고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신규 원전 건설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이다. 2011년 시도별 전력자급율을 보면 서울은 3%, 대구는 1.3%에 불과한데 비해 밀양이 있는 경남은 210%에 달한다. 이렇게 비수도권에서 서울-수도권 및 광역도시로 전력을 끌어오는 원거리 수송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초고압 송전탑 건설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전력수급 정책의 방향이 ‘공급확대’가 아닌 ‘수요관리’로 전환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밀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밀양 송전탑 문제는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와 연결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지 열흘째 되던 5월 29일, 40일 간 공사를 중단하고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여 검증을 하기로 했다. 긴박했던 상황이 잠시라도 멈춘다는 게 다행스럽지만, 검증기간 40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답답한 것은 이미 강정에서 쓴맛을 봤기 때문일 게다. 올해 초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70일 검증기간을 갖고 그 기간 동안 공사를 중단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불법공사가 자행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검증기간 중임에도 박근혜 정부는 제주해군기지를 적기에 완공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70일 검증기간이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몫은 밀양에서 ‘공사검증기간 40일’이 요식행위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촉구하는 일이다. 그간 주민들이 제안해온 여러 대안이 전문가 협의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나의 편의를 위해 침묵하고 외면해왔던 상황들과 마주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전력수요를 줄이지 않는 한 공급확대 정책을 정부와 한전이 바꿀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밀양주민들에게 연대하는 것은 무한 전기 소비에 익숙했던 도시에서의 우리 삶을 성찰하고 바꾸는 첫 순간이기도 하다. 함부로 쫓겨나고 빼앗기고 내몰렸던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들, 이러한 연대가 이어질 때 나의 삶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과 삶터를 지킬 수 있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