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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소수자 재현이 그릇된 관념과 피해자화를 낳을 때

친구의 어머니는 대형 할인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가장이다. 남편이 오래도록 장기실업상태에 있어서 살림을 궁색하게나마 꾸리기 위해 저임금과 고된 노동을 참아가며 돈을 번다. 몇 년 전에 직장을 잃을 위험이 생겨서 농성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모 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어머니와 가족은 며칠 후 신문기사에 실린 사연을 보고 기겁을 했다. 기사에서 그려진 여성노동자는 이름과 얼굴, 그리고 약간의 정보만 어머니의 것일 뿐, 기자가 소설을 쓰듯 창작한 것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스스로의 굳센 힘으로 삶을 강인하게 꾸리는 독립적인 여성은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의 동정에 찬 지지를 간절하게 호소하는 불쌍한 여성 노동자로 둔갑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고정관념이 강한 나머지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없을 만큼 허약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때, 그들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시종일관 왜곡되게 그려지는 입양인들

소수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한 재현에서는, 더욱 교묘하게 주체가 왜곡되기 십상이다. 해외로 입양된 최소 150,000명 이상의 한국 출신 입양인들은 쉴 새 없이 수많은 학자들과 작가들, 기자들에 의해 다루어진다. 내로라하는 입양 전문 학자 중 하나인 엘레나 김(Eleana Kim)의 여러 논문들을 읽으면 입양인으로서 논문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그는 한국의 국제입양에 대해서 어느 누구 못지않게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의견을 표방하는데다, 그의 중점적인 연구영역이 한국의 국제입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실 그는 입양인이 아닌 재미교포 2세대이다.

그의 연구가 문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입양 문제를 주로 몇몇 '입양인들'의 육성 혹은 대화로 드러내는데서 비롯된다. 이상스레 그와 마주치는 거의 모든 입양인들은 연구자와 유사한 생각을 품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한국에서 입양인들을 위해 실시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탐탁지 않아하며 크고 작은 것에 몹시 화가 나있다. 한 '덴마크 입양인'은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한국인과 결혼하라고 다그친다 호소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입양인들'은 강동구청에서 명예구민증을 주는 것이 흡사 장난을 치는 것 같다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울부짖는다. 다른 '미국 입양인들'은 입양인들을 위한 행사에서 한국 당국이 자신들을 여행객처럼 취급한다며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이밖에도 그의 논문에 등장하는 입양인들은 대단히 성이 난 상태에서 완벽에 가까운 것들을 까다롭게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분노한 입양인들’, 전형성을 띠는가?

분명히 한국의 입양인 정책에 대해서 분노를 억제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입양인들 중에는 자신들의 구미에 꼭 맞는 정책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연구할 때 소수의 의견이라도 민감하게 청취하며 다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현방식이 궁극적으로 입양인들에게 도움이 될까. 입양처럼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안을 다룰 때, 단지 그 목표가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성과로만 측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수많은 문제점들을 도출해낸 연구자의 비판이,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지침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엽적인 문제점까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드러내면서 모든 것이 문제투성이라고 성토할 때, 그 글을 읽는 사람들부터 두통에 시달리며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자책하며 손을 뺄 것이다.

입양인들이 입양 관련 자료를 볼 때의 불편함

입양인들은 엘레나 김의 논문을 어떻게 읽을까. 이것 역시 필자와 친분관계가 있는 (기본적으로 필자와 유사한 사회·문화·정치적 배경, 관심사, 호감도가 있을 법한 사람들) 입양인들에게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편향되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제입양이나 인종주의, 한국인과 입양국가 시민으로서의 복수적 정체성 등에 여느 입양인들보다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체 입양인 중에서 이러한 그룹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평가된다.) 세미나를 할 때 뜻밖에 거의 모든 입양인들이 그의 논문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푸념했다.

코펜하겐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덴마크 입양인은 강동구청에서 명예구민증을 발급할 때 그것이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할지언정 큰 감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길거리에서 버려진 나머지 아무런 서류가 없어서 자신의 생일과 한국이름조차 불확실한 삶을 살다가, 난생 처음 한국으로부터 증서를 받았을 때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덴마크 입양인은 자신의 친모가 단 한 번도 한국인과의 결혼이나 영구정착을 권유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서운했다고 고백했다. 비록 자신이 레즈비언이어서 남성과 결혼할 뜻이 없지만, 결혼이나 정착 제의가 자신을 다시금 한국으로 귀환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일 것 같아서 내심 바랐다고 넋두리했다.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는 한 입양인은 몇몇 학자들이 입양인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학문적 업적을 쌓는데 급급하다고 비판하였다. 최근 전향적으로 한국 당국이 한국에 방문한 입양인들을 위해 실시하는 각종 지원책에 대해서 입양인들이 온통 불만에 가득 차있다는 여론이 퍼질 경우 문제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물론 한국 당국이 입양인들을 위해 실시하는 정책에 문제점들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족한 상태에서나마, 제도의 취지를 잘 살려서 입양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입양인들이 매우 까다롭고 민감하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지는 순간, 입양인들이나 국내입양에 대해서 부정적인 관념이 더욱 확대되어서 결국에는 입양인들이나 버려진 아동들 문제해결에 추호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하였다.

“불쌍한 소수자”는 편견의 시선일 수도

한국인 기자가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우리의 어머니(평소에는 사회문제에 도통 무관심한 '평범한 아줌마' 운운하며)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보도할 때, 여성노동자들은 제한된 역할을 띨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힘주어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범하기 쉬운 잘못이 그들을 ‘피해자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 또한 자신들을 피해자 의식에 가두어버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해결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남을 수밖에 없다.

모든 입양인들이 인종주의의 속수무책 피해자인가?

다시 입양 문제로 돌아가자면, 입양인들은 입양국가에서 종종 인종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자신이 다수인종과 다르다는 인식을 충격적으로 하게 된다. 이때부터 자신이 머나먼 나라에서 입양되었다는 점, 어딘가에 자신의 친 가족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궁금증, 자신이 왜 버려졌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분노를 머금을 수 있다. 성장기 동안에도 크고 작은 인종주의와 차별에 부지불식간에 노출될 수 있다.

친 가족이나 자신과 똑같은 인종적 배경을 지닌 집단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아동들은 자연스레 인종주의로부터 자신을 지킬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입양인들은 다수인종(백인 중산층)에 속하는 양부모로부터 인종 차별에 대해서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이럴 때 무심코 당하는 인종주의 공격은 이들의 건강한 정체성과 자신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입양인들이 만성적으로 차별과 입양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속단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국제입양을 반대하는 학자들의 경우, 주로 입양인들이 겪는 각종 문제점들을 돌출해서 보여주기 마련이다. 이때 서구국가들은 제3세계를 착취하는 국가, 입양 송출국(친모)과 입양 수신국(양부모) 사이의 권력관계 불균등, 서구국가들이 만성적으로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괄시하며 괴롭히는 불용의 땅이라는 성토, 양부모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가난한 제3세계 여성들로부터 아이들을 빼앗아온 사람들로 묘사되기 십상이다.

입양인들 중에는 위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입양인들도 적지 않다. 한 노르웨이 입양인은 자신의 양어머니가 입양 후 자신을 기르기 위해 약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희생적으로 길러준 점을 상기하며, 몇몇 입양인들이 지나치게 양부모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는다고 쓴 소리를 했다. 한 스웨덴 입양인은 자신들이 앓는 모든 문제들을 입양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일부 입양인들도 그릇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누구나 살다보면 운이 나빠서 불미스러운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 불상사를 겪는 이유가 온통 자신의 인종이나 입양 때문이라고만 믿으며 지레 우울해하는 것도 슬기롭지 않다는 것이다.

소수자가 가질 수 있는 강점

한 캐나다 입양인은 소수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들면서 사춘기가 지난 이후 누구 못지않게 강인해진 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는 늘 부모님이나 친구들처럼 백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내 잘못으로 입양된 것도 아니고, 백인이 아닌 게 단점도 아니기에 당당하게 살기로 결심했어요. 성인이 되어서 몇 차례 한국에도 가봤고, 한국음식이나 한국 대중문화를 일상적으로 즐겨요. 캐나다에서 한국어도 배우고 한인들과도 갈수록 친해지고 있어요. 저는 캐나다인이기도 하면서 한국인이기도 하니까 남들보다 더욱 부자인 셈이죠. 교사로 일하면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소수자로서 품을 수 있는 강점이니까, 더 이상 입양인이라는 점을 의기소침하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덴마크 입양인은 입양인으로서 독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주 어릴 때 거리에서 마주친 한 아저씨가 제게 덴마크에서 떠나라고 외쳤어요. 그때 너무 어려서 말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주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눈치 챘어요. 한국 출신 입양인으로서 차별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면 과장이겠죠. 하지만 심각한 문제로 와 닿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소수인종 출신 덴마크인들 중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구직과정에서 그대로 써도 취직이 잘 돼요. 만일 덴마크가 무시무시한 인종주의 사회라면, 중동이나 베트남 출신인 것이 훤하게 나타나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면접을 볼 기회조차 차단되겠죠. 아주 가끔 인종주의 공격을 당할 때 인종주의자들이 굉장히 멍청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에 화도 안 나요. 그냥 무시해요. 어디에 가나 바보 같고 배타적인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억압이 낳는 내공

사람들은 차별을 당할 경우 억압과 부당함을 박차고 맞설 뚝심을 얻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멸시 어린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통해 운동을 하게 된 이들을 더러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타인들이 안겨줄 수 있는 것이 이율배반적이고 일시적인 동정심이 아니라고 소리친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를 자각하고,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매진할 수 있으며, 스스로의 저력으로 삶을 끌고 나갈 힘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소수자들이 타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횡행한다. 필터에 걸러진 왜곡된 눈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에 들어오는 입양인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미지가 실제 그들과 얼마나 똑같을까. 누군가의 눈과 입을 통해 얻는 소수자들에 대한 수동적인 정보가, 궁극적으로 그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힘들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소수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들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발언권과 사회적 영향력이 제한된 소수자들을 타자들이 재현할 때, 자신들의 관점을 살리는 데만 급급해서 그들을 일반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소수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권력이나 다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고 묘사할 경우, 결국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또 다른 편견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직접 그들의 말, 그리고 ‘그들’이기도 한 ‘우리들’의 말을 우리가 직접 당당하게 할 기회와 용기를 찾아야 한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