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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한국사회 인종주의 대책 시급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제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90일 이상 해외이주나 유학, 연수, 취업 등의 목적으로 외국으로 나간 한국인 출국자가 전년 대비 4.7% 증가한 데 반해, 취업이나 국제결혼, 유학 등의 이유로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들의 증가세가 전년 대비 25.9%나 뛰었다. 비합법적 체류를 제외한 이주자들의 수만 모아도 2010년 최소 293,07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단일민족 신화에 오래도록 젖어있던 데다, 반도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외국인과 공존한 역사와 경험이 일천했다. 한국에서 인종주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아공이나 미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로 여겨졌다. 유색인종인 한국인들이 인종주의의 가해자로 등장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 살고 있는 적잖은 유색인종 외국인들은, 외국인혐오와 인종차별적 발언이 한국에서 거침없이 행해지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2011년 여름 영국에서 터진 폭동사태에 가담한 이들은 애초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유색인종 집중 거주 지역에 사는 흑인 실업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대략 1/4 가량이 백인으로 집계되었지만, 여전히 영국 안팎에서 런던폭동은 흑인들이 자행한 소요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의 부분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현상에는 영국경찰이 흑인청년을 잠재적인 법죄 집단으로 의심한 나머지, 무려 백인에 비해 9배 이상 불심검문을 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 2011년 여름 영국에서 터진 폭동사태에 가담한 이들은 애초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유색인종 집중 거주 지역에 사는 흑인 실업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대략 1/4 가량이 백인으로 집계되었지만, 여전히 영국 안팎에서 런던폭동은 흑인들이 자행한 소요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의 부분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현상에는 영국경찰이 흑인청년을 잠재적인 법죄 집단으로 의심한 나머지, 무려 백인에 비해 9배 이상 불심검문을 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 내부의 인종주의에 무감각한 한국

한국인들이 우리 안의 인종주의에 관해 관대하게 반응하는 데는, 서구의 인종주의가 한국에는 없다는 막연한 낙관뿐만 아니라, 유색인종 외국인들이 겪는 일상적인 차별에 대해 무관심과 방조로 일관한 탓도 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이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와 농촌 가릴 것 없이 이제 더 이상 외국인들은 낯설지 않다.

한국인들은 보통 외국인을 연상할 때 선진국에서 건너온 백인들이나 기껏해야 일본인들부터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른바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거나 결혼하기 위해 건너온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숱한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가 많은 한국은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저돌적인 자세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들을 친한파로 다독여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고취해야 한다는 다그침이 이어져왔다. 이러한 지상과제를 이룩하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한국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건너온 유색인종들에게는 볼썽사나운 추태를 여과 없이 보여 왔다.

선진국 출신 백인들에게만 친절한 한국인

졸부 근성을 집단심성으로 다져온 한국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는 허황된 세계화 및 친한파 양성 프로젝트가 야기한 모순이 그대로 녹아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인종이나 국적, 직업에 따라서 천양지차로 한국을 겪고 있다. 대체적으로 선진국 출신의 백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한국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빈국 출신 외국인들이 마주하는 한국인들은, 편견으로 얼룩진 채 기회주의적으로 차별하는 사람들로 비치는 경우가 제법 있다. 다음 사례는 그들 중 몇 명이 필자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요약이다.

흑인은 잠재적인 범죄자인가요? 정부초청장학생으로서 한국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할 청사진을 품고, 한국어를 열심히 익히고 있는 코트디부아르 학생은, 버스에 탈 때 자신의 곁에 사람들이 앉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고 전했다. 그는 몇 달 전 애인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유명백화점에 들렀을 때, 점원 두 명이 집요하게 그를 감시하는 것 같아서 아주 불쾌했다고 전했다.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일반화, 재밌나요? 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한국계) 중국인은, 한국인들이 대화중에 스스럼없이 “짱께”를 언급할 때마다 놀란다고 전했다. 그는 얼마 전 프랑스에 여행을 가기 위해 수많은 여행객들이 가입돼 있는 인터넷카페에 들렀을 때, 중국인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일반화가 마구잡이로 쓰여 있어서 참담했다고 토로했다. 적잖은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싸잡아서 “시민사회 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지저분하고 궁상맞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노닥거리는 집단”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왜 백인 관광객만 존중받나요? 영국에서 공부 중인 한국인이 방학을 맞아서 자신들의 대학동기 두 명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한 명은 금발머리의 백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흑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백인청년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표현하면서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려 했다. 한 떡집에서는 주인이 복조리를 거저 주기도 했다. 반면, 흑인청년은 한국 친구에게 “흑형”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그가 영국인이라고 말했을 때 믿지 않았다. 일부 한국인들은 유창한 ‘영국식 발음’을 들은 뒤에 태도를 돌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슬람 = 테러리스트?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파키스탄 인은 금요일 예배를 본 뒤에 민속의상을 입고 귀가했다. 이미 한국생활을 오래 한 데다 한국어 구사능력이 좋은 그는 자신을 겨냥한 적대감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느 한국인은 “수염을 거무스름하게 기른 채 귀신처럼 흰옷을 치렁치렁 입은 사람은 알카에다 추종자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선진국 출신의 백인들은 환대하면서 선망을 표하는 반면, 한국보다 경제력이 뒤지는 나라에서 건너온 외국인들에게는 노골적으로 반감과 무시를 드러내는 일그러진 작태가 위의 일화들에서 극명하게 나오고 있다.

차별이 가장 극명하고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은 일터와 가정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습관적으로 반말로 욕설을 내뱉으며 차별적인 증오발언을 내뱉는 한국인들이 결코 드물지 않다. 마치 인권이 사람마다 다르게 주어진 양,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홀대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관념이 한국사회에 흐르는 것은 아닐까. 또한, 결혼이민자 여성들은 최소 20년 넘게 더불어 살아왔던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보존하도록 존중 받기 힘들다. “값싼 후진국 문화”는 그다지 소중하지 않기에 내다버려도 그만이라는 시각이 온존해 있다. 필자가 만난 태국 출신의 결혼이민자는,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에 대해서 추호의 존중 없이 한국문화와 언어를 강요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저의로 보여서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한국 = 인종차별의 안전지대?

한국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이 쉽게 나오는 것은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한 것이 한 몫 담당한다. 한국에서 인종주의가 없다는 인식은 곧 법제화를 촉구하지 않기에 불처벌 특권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형국이다. 우리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이나 불이익에 대해서는 비분강개하면서도, 정작 우리 안으로 비판의 잣대를 겨누는 데 게으르다. 인종차별에는 역지사지가 잘 통하지 않는 것이다.

스웨덴의 인종차별 극복방법 귀 기울여야

피부색이 뭐가 중요한가요?

▲ 피부색이 뭐가 중요한가요?

우리의 인종주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참고할 만한 외국의 사례는 없을까. 오래도록 계승된 시회민주주의 정신과 제3세계와의 연대를 자랑하던 스웨덴에서는, 한국처럼 인종주의가 그저 나라 밖 이야기일 뿐이라고 안도하는 시각이 팽배했다. 인종차별 문제가 별로 없다고 자위하는 여론은, 자연스레 무관심과 무대책을 자라게 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스웨덴 내의 인종차별에 대한 체계적인 법제화와 문제의식이 활발하게 진척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민자들과 유색인종 입양인들이 스웨덴의 인종차별이 결코 경미하지 않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것과 동시에, 스웨덴통계청이 자살이나 실업률, 교육열 등을 통계 낼 때 인종 항목을 추가하면서, 스웨덴이 결코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스웨덴에서는 인종주의가 주도권을 가진 집단이 소수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면서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점이라고 통찰하기 시작했다. 인종주의자들은 일부 외국인들의 범죄나 인습을 부풀려서 담론화하며, 이러한 편견을 전체 집단(인종)에 대한 차별과 불신으로 증폭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인종주의자들은 외국인들과 주류집단이 매우 다르다는 차이를 강조하면서 다민족사회에서 결코 공존하며 융화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경향이 농후하다. 최근 서구의 인종주의는 극우정당으로 흡수되면서 제도권에 안착하는 것 같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서구사회가 점증하는 무슬림 이민자들의 행렬로 인해 이슬람화하면서 언젠가 백인들이 소수인종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무슬림들은 납세자들의 혈세를 표리부동하게 챙기며 복지 부담을 가중시키고, 갈수록 많은 무슬림들이 일자리를 장악하면서 백인 실업자가 증가한다는 주장이, 현재 유럽 전역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지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고전적 인종주의와 현대적 인종주의

스웨덴의 경우 ‘전통적인 인종주의’보다는 일상에 은밀하게 녹아 있는 새로운 (현대적) 인종주의가 교묘하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웁살라 대학의 연구진들인 나자르 아크라미(Nazar Akrami) 등이 정리한 인종주의에 대한 예를 살펴보자.

“고전적인” 인종주의

1. 이민자 집단정착촌은 시내 밖에 외딴곳에 세워져야 한다.
2. 이민자들은 집을 깨끗하게 치우지 않는다.
3. 이민자들은 위생에 신경 쓰지 않는다.
4. 이민자들은 대체로 부정직한 사람들이다.
5. 일반적으로 이민자들은 대개 낮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
6. 이민자들은 보통 지적이지 않다.
7. 이민자들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8. 이민자들은 아이를 잔뜩 낳아서 복지수급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반면, 자식들의 교육이나 취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현대적인” 인종주의

1.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더 이상 우리나라에는 없다.
2. 이민자들의 고용촉진을 돕기 위한 충분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3. 이민자들을 공격하려는 단체나 개인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4. 이민자들은 동등권을 강박적으로 내세운다.
5. 이민자들의 문제가 언론에서 지나치게 많이 다루어진다.
6. 이민자들의 후손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낭비이다.
7. 이민자들을 위한 고용창출은 역차별을 불러일으킨다.
8. 다민족사회 국가는 단점이 많다.

스웨덴에서는 차별방지 옴브즈맨의 가동으로 인종차별이 처벌되는 데다, ‘정치적인 올바름’에 반하는 행동으로 낙인찍히면서, 전통적인 인종주의 공격은 줄고 있다고 분석된다. 반면, 유색인종 이민자들과 입양인들은 갈수록 우회적인 인종주의적 증오발언과, 표정이나 뉘앙스처럼 감수성에 상처를 주는 인종주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고발한다.

외국인을 위험집단으로 모는 미디어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외국인들이 범죄 집단으로 분류되는 데는, 사실관계나 통계보다 편견에 편견을 붓는 미디어의 보도행태가 결부되어 있다. 스웨덴에서는 피의자에 대한 무죄추정 원칙과 인권보호가 더해져서, 대부분의 범죄보도에서 피의자의 거주지역과 나이, 성별만이 나올 뿐이다. 반면, 피의자가 이민자이거나 외국인일 때 통상적인 보도와 달리 그가 유색인종이거나 외국인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얼마 전 영국전역에서 불거진 폭동사건에서도 실제 약탈이나 폭력에 가담한 이들이 흑인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숱한 미디어가 가해자 대부분이 흑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외국인이 버스에서 노인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화제가 되었다. 당시 언론보도에서 외국인의 인종과 외국인인 점이 부각되면서 금세 여론이 인종적 혐오로 들끓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제재가 없다시피 한 현실

한국에서는 인종주의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 및 문제의식이 뒤따르지 않은 결과, 고전적인 인종주의와 새로운 인종주의가 혼재해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이제 인종주의를 엄격하게 비판하며 단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찍이 보노짓 후세인 교수의 인권위 진정도 부분적인 이슈화와 처벌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가까웠다. 만일 인종차별 피해자가 한국에서 교수직을 맡는 이가 아니라, 난민신청자나 이주노동자였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유색인종 외국인이나 혼혈인들을 상대로 가해지는 증오범죄에 대한 인식과 처벌 움직임이 지나치게 약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부터 학교, 미디어, 거리, 상점 등에서 일상적인 인종주의 공격에 취약하게 방치돼 있다.

인종주의가 한국에서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처벌이 단행되어야 한다. 인종주의는 전체집단을 일그러지고 편협한 편견으로 배제해버리며, 피해자들을 단지 생김새와 국적으로 차별하며 괴롭힌다. 우리 역시 다른 나라에 가면 인종주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소수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 때문에 불편부당함을 겪고 있다. 우리 모두가 침묵과 방관을 끊으며 각성하고 실천해야 한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