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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세계화에서 인권은 빠뜨릴 수 없다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삶을 헤아려야

책을 읽을 때마다 너무나 빈번하게 나와서 저절로 살이 붙는 단어들이 여러 개 있다. 그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화’이다. 세계화에 관해 논술하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판에 박힌 의미로 후딱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만큼, 세계화는 나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한국처럼 영토가 작은 나라에서는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해야 하기에 개혁개방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며, 해외 기업인들(혹은 투기꾼들)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세계화에 가장 모범적으로 임하는 것 같은 한국인들은 진정 올바르게 세계화의 의미를 통찰하면서, 능동적이고 민주적인 세계시민으로서 전 세계를 무대로 더불어 살고 있을까.

#1 한국인들의 자부심을 위해 배제되는 해외입양인

한국에서는 늘 타자의 시선(보통 선진국 출신의 부유한 백인)을 통해 한국을 수직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대단히 중시한다. 각종 국제지표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선진국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온갖 순위에 맹목적으로 집착한다. 한국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한국이 부유한 산업국가라고 평가받을 때 가장 흐뭇해한다.

반면, 한국의 명예를 깎아내린다는 ‘삐딱한 주장’은 주류에서 잊히기 십상이다. “더 이상 빈곤하지 않은 한국”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말은 좀처럼 통역되지 않는다. 추산컨대, 약 이십만여 명의 한국 아동들이 해방 이후 세계 각지에 입양되었다. 저출산을 하염없이 걱정하는 정부의 인구정책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천 명이 넘는 아동들이 해마다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현재 국제입양은 세계화의 한 단면으로 여러 국가들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동들을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는 국가 중에서 한국을 제외한 OECD(오이시디, 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들은 전혀 없다. 한국에서 입양인들의 권리를 연구하는 킴 수 라수므슨(Kim Su Rasmussen)은, 왜 한국의 국사교과서에 한국입양사가 누락되었는지 연거푸 묻는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과거사 왜곡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이면에, 우리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입양사가 누락된 점을 쉽사리 간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출신의 국제입양전문가 토비아스 휘비네트(Tobias Hübinette)는 <고아가 된 나라를 위로함>이라는 박사학위논문에서 우회적으로 여러 입양인들의 문제의식과 피멍든 비판에 답변한다. 궁핍한 모성가구의 적나라한 양육환경과 극심한 양극화, 낙후된 사회복지 및 핏줄에 대한 집착, 그리고 국제입양사업의 일그러진 작태 등의 혼재된 문제를 노골적으로 내보이는 한국 출신 입양인들은, 한국인들에게 이율배반적인 존재로 와 닿는다는 것이다. 한껏 부유해졌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한국인들의 만족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입양인들은 또 다시 보이지 않는 타자로 배제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진정 경청해야 할 말들은 화려한 외모로 신변잡기식 차이를 부각하는 수다가 아닌, 고통스럽고 참혹할지언정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 생존자들의 말이 아닐까.

#2 한국정부가 애써 외면하는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

지난 주 국제앰네스티*는 매년 발행하는 연례보고서를 냈다. 한국에서도 촛불집회를 전후해서 앰네스티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대되었다. 유럽에서 국제앰네스티의 위상은 어떤 면에서 보면 국제연합(UN)을 능가하는 측면까지 감지된다. 2008년 앰네스티의 전임 사무총장 아이린 칸(Irene Kahn)이 한국의 인권상황을 우려하며 방한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접견을 회피했다.

앰네스티를 기념해서 만든 우표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페로 제도, 덴마크.

▲ 앰네스티를 기념해서 만든 우표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페로 제도, 덴마크.


올해 한국 보고서는 내용으로만 보면 선진국답지 않은 치부들로 가득하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나머지, 정권에 반대의견을 품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직도 양심수가 존재하며, 잊을 만하면 시국사건으로 사람들이 연행되어서 사상과 글쓰기를 조사받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눈에 띄게 감소한다며, 앰네스티의 2010년 보고서는 한국의 인권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앰네스티의 2010년 보고서에 대해서 국내 미디어는 대부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한국에 대한 앰네스티의 각종 보고서와 캠페인을 접하는 외국인들은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는 한국의 인권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를 신경 쓰지 않는 정부의 자세는 각종 국제지표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자세와 대조적이다. 소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의 등급 매기기에는 호들갑을 떨면서, 내로라하는 국제 인권단체의 연례보고서는 한국의 실정에 대해 편향된 의견을 가졌다며 묵살해버리는 정부의 자세는 올바른가. 앰네스티 보고서의 지적사항이 해마다 시정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원인도 이러한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3 부족한 외신 보도로 인한 국제문제 무관심

스웨덴이나 영국의 일간지를 읽으면 마치 국제문제 전문 미디어를 보는 것처럼 해외뉴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한국에서는 외신 비중이 지극히 미미하다. 대부분의 외신은 단신으로 처리되며, 그나마 해외 언론을 뒤늦게 베끼는 것에 머물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으레 국내 뉴스로 담론이 형성되면서, 한국 밖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 상당 부분 둔감해지며 무관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언론이 주로 집중해서 다루는 외신조차 천편일률적으로 한국과 직접적인 상관성이 강한 문제들뿐이다.

오늘날 외신에서 헤드라인 뉴스를 채우는 기사는 중동에서 연일 들끓고 있는 민주화시위와 이를 폭정으로 진압하는 정부의 잔악성이다. 현재 여러 나라들에서는 야만적인 진압에 대항하는 항의집회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이나 각국 정부 차원에서 학살의 주범들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정식으로 회부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귀감을 보이고 싶다면, 우리들도 한국 밖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나 자연재해, 인권탄압에 대해서 국내문제와 유사한 수준의 관심과 연대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스웨덴이 국제적인 강소국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단지 적은 인구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복지국가를 풍요롭게 실현한 데만 있지 않다. 스웨덴은 국제연합(UN)의 발전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의 중재를 이끌어내는 데 앞장서왔다. ‘평화주의 수상’으로서 암살로 삶을 마감한 올로프 팔메(Olof Palme)는 재임기간 동안 제3세계의 권익을 국제사회에서 상승시키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며, 베트남전이 최악으로 치달을 무렵 스톡홀름에서 열린 베트남전 반대시위에 일반 참가자 신분으로 참여하기까지 했다.

세계화된 시민으로서 책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지 언론의 보도태도만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외교부는 중동 시위를 비롯한 한반도 밖의 극심한 인권유린에 대해서 입장을 개진하면서 제재안에 동참하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과거 한국도 독재와 폭정, 제노사이드를 겪은 나라로서, 지금 처절하게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려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단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며 실행되어야 한다.

#4 선진국 출신 외국인만 반기는 인종주의

오늘날 한국에서 이주민들은 더 이상 적은 인구가 아니다. 적잖은 한국인들은 스스럼없이 차별적이고 경멸적인 단어를 이들에게 내뱉는다. 세계화의 한 양상으로, 한국보다 좀 더 가난한 나라들에서 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온 여성들이 부닥치는 것은 코리언드림의 실현이 아니다. 그들이 살던 문화나 언어에 대해서 일체의 존중 없이 한국문화를 재빨리 강요하며, 집요하게 한국과 결혼이민자의 출신국가를 우열의 잣대로 평가하고, 오로지 돈 때문에 그들이 한국에 왔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태도로 인해 이들의 삶은 깨지기 십상이다.

앰네스티는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더 이상 이주노동자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를 감탄고토처럼 이용하는 데 급급한 한국의 노동구조에 대해서 긴 분량의 보고서를 낸 적 있다. 무차별적으로 단속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연행 과정을 전후해서 이들을 범법자로 취급하며 가두거나, 심지어 임금체불이나 외상치료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강제송환을 강행하는 방식이 오래도록 비판받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다가 잡힌 활동가들을 강제송환할 때 본국에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서, 이들이 귀국 후 또 다른 인권탄압을 당하게끔 부추기는 작태는 재발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 한국인들도 해외로 나가서 인종주의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추방 위협을 서럽게 감수하며 일했다. 나날이 심화되는 빈곤층의 실업과 가난으로 인해, 아직도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불법체류자로서 위태롭게 돈을 벌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수많은 이주민들은 저마다 꿈을 간직한 채 고국으로 금의환향할 날을 학수고대하며, 한국인들이 삼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경제활동을 돕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숱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현실 속에서, 획일적인 법적 잣대로만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자세가 어느 누구에게라도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의문이 든다.

#5 난민인정에 나 몰라라 하는 자칭 선진국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OECD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난민 수가 가장 적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국을 탈출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는 몇 년째 군인들과 반군들이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하며 제노사이드를 자행하는 대형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비단 수단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이라크, 버마, 예멘, 짐바브웨, 리비아 등에서는 상시적인 테러와 학정, 극단적인 궁핍이 사람들의 삶을 갈기갈기 찢고 있다. 도저히 안전하게 살 수 없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나라 밖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의 난민위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난민문제에 불용으로 맞서고 있다. 호주는 자국 영토 밖 섬에서 난민신청자들을 죄수처럼 가두고는 하염없이 난민심사진행에 늑장을 부린다. 강경하고 엄격한 이민정책을 실시하는 덴마크는 결혼이민까지 극심하게 막아서 ‘국경 없는 사랑(케얼리흐 우운 그란써/Kærlighed Uden Grænser)’이라는 시민모임까지 결성되었다. 최근 북아프리카에서 작은 배를 타고 탈출을 도모했던 사람들은 나토(NATO)의 항공기를 비롯한 여러 배와 항공기에 구조요청을 했지만 죄다 거절당해서, 상당수 탑승자들이 배고픔과 탈수에 시달리다 죽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되었다.

현재 난민억제정책을 지극히 이기적으로 펼치며 반이민자정책을 매니페스토로 삼고 있는 극우정당이 유럽 곳곳에서 선전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부터 오스트리아, 핀란드, 덴마크,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는 인종주의, 반이민정책, 난민강제송환, 동성결혼반대, 이슬람사원 및 첨탑 건설 중단 등을 핵심적인 정책으로 깔고 있는 극우정당들이 오래도록 축적되어 온 시민사회와 다민족사회의 관용과 다양성의 가치를 파탄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은 위의 국가들보다도 더욱 형편없는 난민수용정책을 갖고 있다. 일단 난민신청 허용 비율이 굉장히 낮아서 한국의 경제수준과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국경을 넘나들며 줄기차게 섞이며 공존한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안겨줄 법한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자세는 단견이다. 한국이 명실공한 난민수용정책을 이끌어간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도 확대될 것이다. 한국정부가 이른바 우방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몇몇 국가 출신의 난민심사에 대해서 우방들의 눈치를 보는 자세도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스웨덴은 몇 년 전 이란에서 동성애자 소년들이 성적지향을 이유로 공개 처형되는 야만적인 사건을 목격한 후에, 정치적 박해로 인한 난민의 범주에 동성애를 이유로 극심하게 핍박을 받는 사람들도 포함시켰다. 한국도 난민들의 인권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전 세계 인권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는 나라로 노력할 때 선진국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세계화의 의미를 넓게 이해해야 한다

세계화로 인해 끊임없이 물자에서부터 사람들까지 빈번하게 이동하고 있다. 세계화를 단지 경제적인 이윤을 얻어내기 위한 도구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자본의 이동 못지않게 온갖 사연을 품은 사람들의 삶도 함께 헤아리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보다 약한 처지에 봉착한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겪는 인권문제를 다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난민에서부터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해외입양인, 국제적 인신매매까지 인간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새로운 환경에 놓이며 인권유린을 당하기 쉬운 환경에 봉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인들도 더 이상 변방의 시민으로 그저 사태를 바라보는 자세를 탈피해서, 세계로 관심을 뻗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나서 연대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엠네스티는 미국에 기반을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와치(인권감시, Human Rights Watch)와 달리, 각국의 인권수준을 등급으로 매기지 않는다. 다만, 상대적으로 인권문제가 양호할 경우 보고서에서 그 국가들을 제외하는데, 한국이 여태껏 빠진 적은 없었다.
덧붙임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