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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북한 인권 기록보존소와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에서 ‘인권에 기반한 접근’은 멀어지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북한인권신고센터와 북한인권기록관을 열었다. 지난 3월 15일 개소식까지 성대하게 치렀다. 시민들은 북한인권기록관을 박물관 혹은 전시관의 일종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기록관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위도 개소식 관련 보도자료에서 “신고센터와 기록관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피해자에 대한 복권, 보상, 재심 및 사회일반의 인권교육 등 통일 후 남북 사회 통합을 위한 활동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복권, 보상, 재심’, 이는 곧 과거청산의 법적 절차들이다. 그런데 북한체제에 대한 과거청산을 남한 국가기구가 담당한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결국 인권위가 말하는 ‘통일 후 남북 사회 통합’이란 그 의도가 무엇이든, 북한붕괴와 남한에로의 흡수통일, 그리고 북한 체제에 대한 단죄로 연결될 것이다.

사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북한인권기록관’은 독일의 잘츠기터(Salzgitter) 중앙기록보존소(die Zentrale Erfassungsstelle der Landesjustizverwaltungen)를 모델로 한 것이다.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여 동-서 베를린의 자유로운 통행을 차단하자, 서독 정부는 기록보존소를 설립하여 동독의 정치 폭력과 인권 유린에 대한 처벌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 기록보존소의 발상은 원래 1958년 나치 과거청산을 위한 중앙조사부(die Zentrale Stelle der Landesjustizverwaltungen)에서 따온 것이었다. 뉴른베르크의 국제적 전범 재판에 더하여 독일은 자체적으로 과거 청산을 도모한 선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독일의 기관들은 그 원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법무행정(Justizverwaltung)의 한 부분이며, 형사소추를 위한 예비적 조사기관이었다. 실제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독일 통일 때까지 약 4만 2천 건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기록하여 관할 지역의 형사당국에 인계하고 1992년 그 임무를 마쳤다.

우리 정부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소식을 보면 정부 내에서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법무부 산하에 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원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안」들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였다. 그 법안들 그리고 정부 부처들은 그것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에 대하여 각기 다른 입장을 보여 왔다. 통일부는 자신들이 관장할 수 있는 인권재단을 설립하여 그 안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둘 복안을 가지고 있었고, 인권위는 이번에 문을 연 북한인권기록관처럼 자신들의 조직 내에 두고자 하였고, 법무부는 그것이 종국적으로 형사소추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자신들 소관 업무라고 주장하였다.

거꾸로 선 인권 만들기에 앞장서는 국가인권위원회. 2009년 인권위는 대한민국인권상을 반북단체에 주었다.(그림: 이동수화백, 인권오름 177호)

▲ 거꾸로 선 인권 만들기에 앞장서는 국가인권위원회. 2009년 인권위는 대한민국인권상을 반북단체에 주었다.(그림: 이동수화백, 인권오름 177호)



인권위가 서둘러서 북한인권기록관을 개소한 까닭

인권위에서 북한인권기록관 개소식이 열리는 날 정부종합청사에서는 법무부, 통일부, 인권위 관계자들이 모여 국무총리실 중재로 ‘공식적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논의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권위가 북한인권상담센터와 북한인권기록관을 서둘러 연 것은 그 기록보존소를 자신들의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공개적 시위와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인터넷 동아일보 2011-03-16 03:00:00 참조).

그에 앞서 인권위는 2010년 4월 26일 그리고 같은 해 12월 6일 거듭하여 국회의장에게 북한인권법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국가인권위원회 설치와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조항 삭제를 내용으로 법을 제정하도록 권고하거나 의견표명을 한 바 있다. 인권위가 압력단체로서의 역할까지 한 것이니,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대한 인권위의 집착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한변협도 2010년 2월 18일 성명서를 내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부가 아니라 인권위에 설치하여야 한다고 권하였으니, 인권위는 법조의 우군까지 얻은 셈이다.

타 정부 부처에 맞서 인권위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법조계의 지원까지 받는 모습은 언뜻 보아 참신하다. 드디어 인권위의 위상과 자율성이 신장되고 있는가? 그러나 실상은 우스운 일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지금과 같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결국 법무행정으로 귀속될 부분이다. 그렇다면 인권위가 기록보존소를 따오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나서서 법무부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에 불과하다. 그것도 인권위의 예산과 인력으로 말이다.

알다시피 인권위는 2009년 정부에 의하여 조직 감축을 당한 상처를 안고 있다. 기존 조직에서 20% 이상 감축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인권상담센터와 북한인권기록관을 신설하였으니 새롭게 조직이 확충된 것인가? 하지만, 인권위의 직제령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가뜩이나 줄어든 인력과 예산 내에서 북한 인권이라는 커다란 사업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안은 셈이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권위가 북한 인권에 공을 들이고 있으니, 북한 인권은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현 위원장을 임명할 때, 북한 인권에도 신경쓰라는 특별 주문을 한 바 있다. 현 위원장은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 구성 자체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북한 인권과 북한민주화의 전문가인 뉴라이트의 홍진표 씨가 상임위원이 된 것도 그렇고, 북한 인권에 열심이었던 김태훈 비상임위원이 전례 없이 연임된 것도 그렇다. 정책국장 원재천 씨도 원래 북한 인권이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우리 인권위는 남한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라 북한인권위원회로 스스로 변태해가는 중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 그리고 인류 모든 역사에서 인권유린과 인간 참극의 기록은 보존되어야 마땅하며 그것은 인간이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인간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식으로든지 북한의 인권현실과 역사에 대한 기록은 보존되고 또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 부처들이 서로 눈독을 들이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과연 그러한 역사적 성찰을 위한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어째서 남한 인권 기록보존소의 얘기는 나오지 않나? 현재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남북 정치적 대결의 최전선에 있다. 우리 인권위가 그에 대한 전위부대 역할을 기꺼이 맡고 나선 것이다. 예정대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입법화되면, 아마도 북한은 ‘남한인권기록보존소’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인권 문제의 정치수단화는 분명해 보인다.

독일의 기록보존소를 본뜨는 게 타당한가

사람들은 그렇게 남북이 인권적 대결을 벌이는 것이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인권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이 상호 적대적 대결을 통하여 신장된다는 것은 ‘인권에 반하는 방법으로 인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가당착일 뿐이다. 독일의 경우 그 기록보존소가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에 기여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서독 관계에서 그것이 적대와 갈등을 심화시킨 면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동독은 일찍이 1980년대 냉전이 심화되던 시절에 동-서독 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로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폐지를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서독이 큰 피해 없이 동독을 흡수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특별한’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남북의 통일이 그렇게 독일과 같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우리와 독일 사이의 차이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첫째로 무엇보다 동서독은 서로 전쟁을 겪지 않은 관계였다. 그 만큼 상호 반목과 적대가 덜하였다. 둘째, 동독은 거의 소련의 위성국가였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소련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동독의 붕괴는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소련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이 더 높으며, 소련이 붕괴되었지만, 중국은 오히려 미국과 세계 패권을 경쟁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독일 민족이 동서독 모두 리버럴리즘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 제2제정이 붕괴한 후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리버럴한 민주공화국을 건설한 경험이 있으며, 그것이 비록 나치의 제3제국에 의하여 전복되긴 하였지만, 현대 통일 독일의 역사는 바이마르 민주공화국 리버럴리즘의 공동 유산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서로 공유하는 근대 헌정질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남한의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는 북한에게는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다.

독일의 경우 서독의 자유민주적 인권체제 중심으로 동독 인권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하여, 한반도에서도 남한 중심의 인권체제로 북한을 포섭하려는 것이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남북의 이질성과 상호 피해의식은 그만큼 깊은 것이다.

북한 인권에도 인권적인 원칙으로 접근해야

인권의 본질을 보편성이라고 하지만, 보편성의 근본은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도 곧 공존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북한에게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최대한의 공존, 즉 서로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 인권 문제에서도 북한을 흡수하고 단죄하려는 발상보다 남과 북의 공존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이다. ‘인권’을 문제 삼아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과연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오히려 남북한, 한반도 민중의 평화와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지는 않을까? 현 단계 북한 인권, 아니 한반도 인권 문제의 급선무는 바로 비등해져 있는 남북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공존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 체제 비판과 규탄이 아니라 관용의 원리를 앞세우는 주장은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북한 인권현실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기본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인권문제를 인권적 원칙에 입각하여 접근해 가자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여기서 관용이란 우월한 측이 열등한 측에 시혜를 베푸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 관용이란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우월하지는 않다는, 즉 양 쪽 모두 틀릴 수 있다는 자기 한계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이는 상호 이질적인 체제나 국가 관계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한반도의 현대사도 그렇듯이, 인류 인권의 역사, 참극의 역사는 바로 그와 같은 관용의 결여, 자기 한계에 대한 망각, 배타적 지배의 탐욕, 근본주의적 패권주의에서 기인하였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앞서 인류 인권의 역사적 기록을 먼저 음미해 볼 것을 권유한다.
덧붙임

정태욱 님은 인하대학교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