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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인권상 수상 거부자들을 위한 축사

지난 12월 10일은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인권의 날이었다. 인권실현을 위해 전진해온 발걸음을 북돋아주고, 무시하고 외면한 부분을 돌이켜보는 날이다. 그런 일 중에 하나가 이런저런 이름의 인권상 시상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상들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상이다.

상을 받는 사람의 활동 내용과 태도를 보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인권문제들을 알게 되고, 외면했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기회가 되고, 수상자로 인해 드러나는 삶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게도 된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의혹'을 공론화시킨 활동으로 불교인권상을 수상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의 시상식판은 크게 엎어졌다. 제 역할을 못하는 현병철 체제하의 국가인권위는 상 줄 자격 없다는 이유로 수상자들의 수상거부가 잇따른 것이다.

[설명: 세계인권선언 제62주년 기념식에서 수상단체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강재경 집행위원장이 사퇴 거부 의사와 함께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쳐 보이자, 현 위원장이 짐짓 웃음을 짓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www.beminor.com]<br />

▲ [설명: 세계인권선언 제62주년 기념식에서 수상단체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강재경 집행위원장이 사퇴 거부 의사와 함께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쳐 보이자, 현 위원장이 짐짓 웃음을 짓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www.beminor.com]



예산날치기 정국에 아이들 밥그릇과 약통이 엎어지고, 4대강 파헤치기가 초고속 질주하게 됐다. 이속에서 국가인권위가 취해야 할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역할,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장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그런 국가인권위가 독단과 아집으로 황폐화된 상태이니 인권탄압의 세찬 바람을 피해 뛰어든 건물이 냉동창고인 꼴이다.

이런 와중에 국가인권위가 주는 상을 거부한 사람들의 소신은 전혀 다른 성격의 감동을 줬다. 수상자들은 상을 받지 않았으나 이미 우리에게 상보다 더한 것을 주고받게 했다. 이들 인권상 수상 거부자들을 위하여 아래 세분을 가상으로 모시고, 축하의 말을 들어보았다.

저는 케이트 로키입니다. 작년 인권의 날에 호주국가인권위에서 인권상을 받았지요. 이번에 한국의 인권위원위에서 인권영상공모전 대상을 받기로 돼있었던 ‘장애IN 소리’의 선철규 씨,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저의 수상 소감을 나누고자 합니다. 당신들이 시상대에 섰다면 세상에 대해 외치고 싶었던 말을 저의 수상 소감으로나마 대신 해볼까 합니다.

“장애를 갖고 산다는 일은 여전히 아주 힘듭니다. 우리는 나라를 발전시켜왔고 앞으로 전진해왔다고 생각하고 장애 문제에 잘 대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불평등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그걸 잘 압니다. 제가 심각한 청각장애라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 21살에 생을 거의 마칠 뻔 했거든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인생에서 아주 많은 장벽에 직면합니다. 재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말입니다.

잠시라도 귀가 안들린다고 상상해보세요. 아침에 시계소리도 들을 수 없고 전화에 응답할 수도 없고 텔레비전 소리도 안들리고 영화관에 갈 수도 없어요. 당신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청각장애는 아주 사람을 고립시키는 장애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까지 장애인의 삶을 낫게 만들려 분투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갖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 저는 알거든요.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은 그 국가가 가장 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가로 측정돼야 한다”고요.

저는 우리가 위대함을 성취하길 원합니다. 저에게는 죽기 전에 성취하고 싶은 4가지 꿈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소득에 상관없이 보청기와 인공귀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TV를 볼 수 있고 영화관에 가고 DVD와 온라인 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세계의 생활 조건으로 야기되는 중이염 때문에 예방할 수 있음에도 청각을 상실하게 되는 원주민 아동의 수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원합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에서 가능한 것을 알게 되고, 굉장한 일을 성취하는데 도전하길 원합니다. … ”



저는 하비 밀크입니다. 저는 미국사회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당선된 정치인으로 동성애자 권리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197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1978년에 암살됐지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는데요. 요즘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공격하는 언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 일터에서의 성소수자 차별실태 분석’이란 논문을 써낸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성전환자와 관련한 논문으로 최우수상을 받게 된 이상윤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게다가 그런 큰상을 거부했다니 더 큰 박수가 나옵니다. 이상윤씨의 수상거부소감에서 “나는 희망의 이름으로 수상을 거부한다”는 구절, 정말 맘에 와 닿았습니다. 제가 했던 연설 중에 ‘희망의 연설’로 알려진 것으로 답할까 합니다.


“… 6개월 전에 아니타 브라이언트(동성애권리에 반대해 온갖 혐오적인 캠페인을 벌인 미국여가수)가 말하길 캘리포니아의 가뭄이 동성애자들 때문이라 했어요. 제가 당선된 다음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요. 제가 선서를 하던 날, 시청에 걸어 들어갔고 날씨가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맹세합니다”라 말하자마자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계속 비가 오고 있으니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비를 멈출 유일한 방법은 절 소환해서 해임하는 것이겠지요. 농담입니다.

… 제가 여기서 말하려는 바는 이겁니다. 여러분이 신문과 라디오에서 보고 듣는 것들은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들이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는 바를 표현한 겁니다. … 모든 라디오와 TV 방송에서 모든 집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좋게든 나쁘게든 동성애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대화의 장벽을 열어젖히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사람들의 의견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편견을 부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1977년에 우리는 대화가 시작된 것을 봤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애자가 선출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 다른 모든 집단처럼, 우리 동성애자들은 우리의 지도자에 의해,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에 의해, 눈에 보이는 사람들로서 판단돼야 합니다. 안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옥의 변방, 신화 속에 머물러있습니다. 동성애자에게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자매도 없고, 이성애자 친구도 없고, 중요한 자리에 전혀 있지 않은 것 같은 신화 말이죠. … 우리 중 일부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은 우리가 오해받고 있기 때문이고, 친구들이 그 분노와 좌절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저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망 없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성애자건, 노인이건, 흑인이건, 자신들에게 이질적인 언어로 자신들의 문제와 열망을 설명하려 애쓰는 라틴계 사람들이건간에.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건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제가 자랑스럽기 때문에 “나”라는 말을 씁니다. 제가 오늘밤 동성애자 자매들, 형제들, 친구들 앞에 선 것은 제가 여러분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 찾아야 할 유일한 것은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희망을 주어야만 합니다. … 희망이 없이는 동성애자 뿐 아니라 흑인, 노인, 장애인, 우리들은 포기하게 될 겁니다. … 동성애자가 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겁니다.



저는 마틴 루터 킹입니다. 저는 인종차별주의를 비롯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억압에 맞서 싸우며 자유와 평등에 대한 꿈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살았던 미국사회처럼 한국에서도 인종주의, 나이주의, 성차별주의 등이 기승을 부리겠지만 여러분이 거기에 굴하지 않을 것을 저는 믿습니다. ‘언론은 있지만 여론은 없는 학교’라는 탁월한 글로 청소년인권문제를 다룬 김은총씨의 문장에는 힘이 넘치더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김은총 씨의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어렵게 <이주노동자 방송국>(MWTV)을 운영해온 분들에게서 참 언론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의 노벨상 수락연설(1964년)로 여러분을 응원할까 합니다.


“저는 인간이 단지 삶의 강물에서 유영하는 부유물일 뿐이고, 그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저는 무장하지 않은 진실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현실에서 최후의 힘을 가진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는 일시적으로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악한 승리보다 강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나라들의 유혈이 낭자한 거리에 부상당한 채 쓰러지고 널브러져 있는 정의가, 이 치욕의 수렁에서 일어나 가장 고매한 자리로 올라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모든 민족들이 자신의 신체를 위하여 하루에 세 끼 식사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정신을 위하여 교육과 문화를 누릴 수 있으며,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인간적 존엄과 평등, 그리고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허물어뜨린 것들을 타인중심적인 사람들이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이 믿음은 우리에게 미래의 불확실성과 직면할 용기를 줍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자유의 도시를 향해 큰 보폭으로 내달리다 지칠 때, 우리의 발에 새로운 힘을 줄 것입니다.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인해 우리의 낮이 황량해질 때, 또 지난 날 그 어느 밤보다 우리의 밤이 더 어두워질 때, 오히려 진정한 문명이 태어나려고 고군분투하는 창조적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 위드북스에서 인용)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