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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아프간 인민은 미국 점령의 즉각적인 종식을 원한다

말라라이 조야

십년 전 미국 컬럼비아 대학 인권연구소의 초청으로 세계 각국에서 모인 10여명의 인권활동가들과 뉴욕에서 5개월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를 당황케 한 상황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계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한 참여자들을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여기까지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냐’는 짧은 질문으로서 내가 온 곳에 대해 파악하려 드는 것이었다. 세계 여행을 다니지 않더라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적어도 어떤 나라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수도는 어디며 주로 어떤 것을 먹고 주요 문제가 뭐 인지를 아는 것이 상식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비행기로 미국 여기까지 몇 시간 걸리는 곳이냐는 것 외에 내가 온 곳에 대한 관심도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위 인권 엘리트들이 그랬다. 그럼 보통의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좀 공포스러웠다. 그런데 자신들을 주요 의사결정자로 생각하고, 지구 어느 곳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곳의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논하고 사활이 걸린 중대결정을 많이 내린다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찬가지로 당황스럽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해외진출을 하고 심지어 파병을 논하는 상황이다. 국익이니 국위선양이니 하는 것이 진짜 누구의 이익이고 누구의 편에서 얘기되느냐는 문제는 둘째로 치고, 우리는 우리의 행동으로 영향 받을 다른 곳에 사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안으로 멍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프간 재파병 계획이 터져나왔다. 역시 해오던 방식대로 속전속결이다. 아프간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그곳 사람들이 어떤 곤란을 겪고 있는지 우리가 연대하고 함께 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아프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보고들에는 익숙할지 모른다. 유엔인간발전보고서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 순위에 올랐다거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26% 수준이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30%도 못되고, 90%이상의 사람들이 위생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 경우가 20%에 불과하다는 식의 보고 말이다. 이런 수치들은 생활의 비참함을 증명할지는 모르지만, 우리와 똑같은 필수적인 필요를 가진 인간이 왜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성찰할 것은 무엇이 다수의 사람을 그런 처지에 밀어 넣었냐이다. 모든 답을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확실하고 강력한 답은 있다. 그 사람들이 원치 않는 외국군의 점령과 계속되는 전쟁이다. 속속들이 알지 못해 모든 문제에 함께하고 돕지는 못할지라도 자명하게 드러난 걸림돌을 치우는 것을 도울 수는 있다. 그런데 재파병이란 그들이 진 무게에 돌을 더 얹어주는 행위 아닌가? 점령군의 철군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점령군과 함께 하러 ‘우리가 간다’라고 선포하니 말이다.

조야가 파라지역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있다.

▲ 조야가 파라지역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이다. 말라라이 조야는 <나의 목소리를 높이다 Rasing my voice>라는 책을 최근 출간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아프간 여성이다. 전쟁과 저항 속에서 살아온 그녀는 혹독한 여성억압 속에서 2005년 국회의원에 선출됐으나 아프간 정부와 범죄자나 다름없는 정치인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살해 위협 속에 살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그녀는 미군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며 미국 주요도시 순회를 하고 있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왜 미군의 철군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점령군이기 때문이고 점령군이 아프간 인민의 적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점령군이 떠나야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두 명의 적보다는 한 명의 적과 싸우는 것이 훨씬 쉽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녀에게 세 명의 적을 만들어 주려 하는가?

아프간 인민은 미국 점령의 즉각적인 종식을 원한다(말라라이 조야, 2009년 11월 12일)

의원으로 선출된 아프간 여성인 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내 나라에 대한 점령을 즉각 그만두라고 요구하려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8년 전, 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구실 중 하나로 여성의 권리가 이용됐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여성 권리의 파국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프간 여성에게 삶이란 서구 주류 언론에 결코 반영되지 않는 일종의 지옥을 닮았습니다.

2001년 미국은 북부동맹의 군벌과 마약왕 등 최악의 여성 혐오자인 범죄자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는 걸 도왔습니다. 이들은 탈리반의 복사판으로 간주돼야만 합니다.

단행본 <나의 목소리를 높이다 Rasing my voice> 표지 사진<br />

▲ 단행본 <나의 목소리를 높이다 Rasing my voice> 표지 사진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북부동맹의 군벌들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것과 정부의 자리를 차지하여 민주주의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미국의 지원 덕택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늘날 벌어지는 재난의 상당 부분에 그들은 책임이 있습니다.

탈리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소위 “중도파 탈리반(moderate Taliban)”이란 가상의 범주를 만들어서 중세의 탈리반에게 권력을 내줄 준비가 돼있고 탈레반더러 정부에 들어오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8년 전 긴급 수배된 테러리스트 명단의 우선순위에 있었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Gulbuddin Hekmatyar)가 정부 참여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미국은 마약왕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 내 나라가 세계의 마약 수도가 되도록 도왔습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아편의 93%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됩니다. 많은 의원들과 고위층 공무원들이 공공연하게 마약 거래에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카르자이(Karzai) 대통령 자신의 형제가 유명한 마약 거래상입니다.

반면에 보통의 아프간 사람들은 궁핍하게 살고 있습니다. 최신 유엔인간발전지표에서 아프가니스탄은 182개국 중에서 181위에 올랐습니다. 1천8백만 아프간 사람들은 하루에 2달러도 못되는 돈으로 살아갑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지역에서 어머니들은 자기 아이를 팔 준비가 돼있습니다. 아이들을 먹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8년간 3백6십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고 미국이 단독으로 아프간 전쟁에 쓴 돈은 하루 1억6천5백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내 나라는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들의 수중에 잡혀있습니다. 내 인민은 현재 벌어지는 대통령 선거라는 드라마에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선거가 아프가니스탄에 아무런 변화도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후보자인) 카르자이나 압둘라나 미국의 꼭두각시이기 때문에 아프간 사람들은 증오합니다.

진실
이 전쟁의 최악의 사상자는 진실입니다. 불의와 불안과 점령에 반대하여 일어서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 당했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것을 강요받거나 간단히 살해되었습니다.

우리는 세 개의 강력한 적들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미국과 나토라는 점령 세력, 탈리반, 그리고 하미드 카르자이의 부패한 정부입니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증파할 것을 고려하고 있고 전 대통령 부시의 잘못된 정책을 확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9.11이후 최악의 대량학살은 오바마의 재임 중에 있었습니다. 나의 출신 지역인 파라(Farah)는 지난 5월에 미국의 폭격을 당했습니다. 백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고 그중 대다수는 여성과 아이들이었습니다. 9월 9일 미국은 쿤두즈(Kunduz)에 폭격을 가해 2백여 시민을 살해했습니다.

아프간 인민은 질려버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미국의 점령을 당장 끝내기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