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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주거권 침해의 사법심사 가능성

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발생한지 7개월이 지났지만 이들을 사망하게 한 개발의 구조적 원인과 세입자들의 주거권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개발정책은 지속되고, 세입자들은 자기가 살고 있었던 곳보다 열악한 곳으로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는 확실하나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이 없다보니 “과연 무엇을 침해라고 할지? 과연 무엇을 죄로 물어야 할지?” 각이 서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람이 죽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회권의 사법심사 가능성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속에는 주거권을 포함한 사회권 침해는 법정에서 권리침해를 다툴 수 없다는 관행과 인식이 깔려있다. 어떤 권리가 침해되었을 경우 법원에 소(訴)를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준사법적인 기관에 권리침해를 호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법심사 가능성’이라고 한다. 사회권의 사법심사 가능성을 부정하는 흐름에는 사회권을 인권의 목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즉 자유권은 사법심사 가능성이 인정되므로 ‘진짜 인권’이고, 사회권은 사법심사 가능성이 없으므로 ‘가짜 인권’이라는 것이다. 사회권의 사법심사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그룹은 사회권의 경우 점진적으로 실현하고, 법의 문제가 아닌 정책과 정치의 문제라는 이유로 법원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경제․사회적 권리가 법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엄격하게 분류․채택하는 것은 자의적인 것이고, 두 종류의 인권(사회권과 자유권)이 나뉠 수 없고 상호의존한다는 원칙에 위배”될 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집단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원의 권한을 현저히 축소시킬 것”이라 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에 관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에서 “어떤 개인이든 집단이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은 국내 및 국제적 차원 모두에서 효과적인 사법적 혹은 기타의 적절한 구제조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는 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를 채택하면서, 이분법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사회권의 사법심사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인권침해를 다룰 수 있는 ‘죄’가 없다

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가 발효되면, 사회권을 침해받았을 때 국제인권체계인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다. 반면 국내법정에서 주거권 침해 여부를 놓고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의 주요 행위자-시공사, 조합, 지자체-들을 기소할 수 있을까? 용산4구역 주민들에게 폭행, 협박 등 한 용역업체 직원들을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용산구청장에게 직무유기 혐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시공사-조합-지자체-정부를 묶어서 개발행위로 인해 벌어지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죄’를 다룰 수 있는 ‘법’이가 없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강제퇴거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공권력의 남용에서 벌어진 사망사건임에도, 국내에는 ‘강제퇴거를 금지하는 법’이 없고 ‘강제퇴거죄’라는 것도 없다. 세입자들의 점유 안정성을 보장하는 국내법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한국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규범 사회권규약 2조1항, 12조 및 자유권규약 12조, 17조에서 ‘강제퇴거’는 중대한 인권침해이고, 강제퇴거를 금지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강제퇴거의 위협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재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사국에게 촉구하고 있다. 국제법은 국내법에 우선하는 법적 효력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 한국에서는 강제퇴거의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해외에서 강제퇴거는 최후의 수단, 그러나 국내에서 최선의 수단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강제퇴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강제퇴거가 어쩔 수 없을 때 행하는 최후 수단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산 철거민 사망에서 볼 수 있듯이 강제퇴거는 생존권과 직결되는 강력하고 강제적인 조치인 만큼 ‘강제퇴거에 따른 사전 절차’가 자세하고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하며 반드시 ‘법원의 명령’을 통해 시행되어야 한다. 또한 ‘강제퇴거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강제퇴거라는 최후의 선택을 피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강제퇴거는 ‘행정대집행과 명도소송’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규정을 살펴보면 ‘강제퇴거의 절차’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강제퇴거를 위한 사전조치’ 또는 ’강제퇴거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과 비교할 수 있는 해외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선 영국은 ‘강제퇴거에 있는 그 절차’와 ‘퇴거대상자의 대항력’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으며 부당한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쉽게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퇴거 대상자들에게 강제 퇴거로 인한 주거권 침해와 관련해서 법적인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이용하기 쉬운 절차 및 상담 등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개발사업지역 세입자 등 주거빈곤층 주거권 보장 개선방안을 위한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2005) 강제퇴거에 대한 사전적 절차는 필리핀의 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도시개발 및 주택법(Urban Development & Housing Act)’ 제28조에 자세한 사항이 규정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철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적절한 신원증명을 요구하고 있고 퇴거에 응하지 않는 가구가 있는 경우 월요일부터 금요일 정규 근무시간 동안 날씨가 좋을 때에만 퇴거나 철거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닌 경우 중장비를 사용한 철거가 금지된다.

재정착을 위한 다양한 시도

한국의 경우 사전절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 판단인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퇴거가 가능한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사전절차 외에 강제퇴거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영국은 기존 거주자들에 대한 사회주택 입주권 부여와 주거급여가 동시에 제공되어 ‘이주대책의 적절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필리핀 역시 임기적 혹은 영구적 재정착이 이루어져야함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단일이주지원과 부동산획득법(Uniform Relocation Assistance and Real Property Act)’의 제정으로 강제퇴거가 ‘사실상’ 진행되지 않게 되었다. 강제퇴거에 앞서 이주비 지원과 각종 대체주택 마련이 법적으로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강제퇴거의 문제에 있어 법 규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강제퇴거가 최후의 수단임을 인정하는 정부의 태도이다. 영국 정부는 소수의 주민들이 끝까지 퇴거를 거부한다 해도 이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절차를 밟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실제로 법원의 이주명령서를 받고도 이주하지 않는 가구들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대체주택의 마련과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주택정책의 도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이는 용역의 폭력까지 묵인하며 퇴거를 강제해 이주문제를 해소하려는 한국정부의 태도와 큰 차이를 보인다.

2008년 주거의날 '집은 인권'이라고 참가자들이 선언하며 각자의 요구를 들고 있는 모습(사진 출처 : 빈곤사회연대)

▲ 2008년 주거의날 '집은 인권'이라고 참가자들이 선언하며 각자의 요구를 들고 있는 모습(사진 출처 : 빈곤사회연대)


용산 4구역 주민들이 겪은 강제퇴거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이 발표한 <개발로 인한 퇴거와 이주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들>에서 강제퇴거는 “개인, 집단 및 공동체를 그들이 점유 또는 의존해 살아가던 집, 땅, 공동자산으로부터 강제 또는 비자발적으로 이주시킴으로써 그들이 적절한 형태의 법적 보호 및 기타의 보호를 제공받지 못하고 특정 거주지나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거나 제한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용산 4구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삶을 조명하면, 용산 4구역 주민들(주거/상가)은 수 년 전부터 용산4구역에서 거주 또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조합(집주인)으로부터 임대차 재계약에서 퇴거 조건을 강요받거나, 용역업체 직원들의 지속되는 집단 괴롭힘, 법원의 명도판결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현행법에 따라 제공되는 세입자대책을 받거나 받지 못한 경우, 모두 특정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거나 제한받았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세입자들은 적절한 방법으로 통지받지 못하였고, 과정에 반대하거나 조합과 협의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였고, 법적 구제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였으며, 세입자들은 이러한 강제퇴거에 저항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강제퇴거의 관행이 용산4구역에서 발생한 것은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시공사-조합-지자체-정부의 의도와 강제퇴거로부터 주민을 보호할 입법/사법/행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 때문이다.

이러한 인권침해의 책임을 묻기 위해 10월 18일 <용산국민법정>이 개최된다. 직접 사인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결과이지만,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주거권 박탈은 구조적인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박장규 용산구 구청장, 김석기 전 경찰청장, 시공사 (포스코 윤석만 회장, 대림산업, 삼성물산 대표이사 이상대), 용역회사 (현암건설산업 대표이사 박기찬, 호람건설 대표자 김성용, 이기호), 이춘우 용산4구역조합 조합장을 기소해서 이들의 죄를 물을 것이다.

주거권 침해, 이제 그만

그동안 개발지역에서 세입자들의 주거권 침해 사례나 투쟁은 신문 사회면 단골 뉴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이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우리 사회가 무감한 것은 도대체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주거는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 국가나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한 점 ▲주거를 소유의 개념으로 국한시켜 다양한 점유형태가 인정되고 있지 않은 점 ▲강제퇴거의 관행들이 어떤 사회적인 통제 없이 용인되고 있는 점 ▲주거권을 침해받아도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점 ▲주거권을 침해한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점 등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거는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국제인권법이나 헌법 속에서 숨죽여있었던 것은 아닐까? 6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지금도 강제퇴거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전세대란으로 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나를 위해! 숨죽여 있는 주거권을 깨우고 국민법정의 기소인이 되자. “강제퇴거는 안 돼” “점유의 안정성을 보장해” “국가는 주거권을 보장할 책임이 있어”라고 외쳐보자.


덧붙임

최은아, 연정,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