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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 평택에서 ‘강제퇴거’된 인권

국제인권기준의 눈으로 본 대추리, 도두리 강제퇴거

13일 한국정부는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경찰과 철거용역을 투입해 마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새벽 6시경 국방부는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내년 초부터 부지조성공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불가피하게 철거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추리 43채, 도두리 38채, 내ㆍ동창리 9채 등 총 90채를 철거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경찰 164개 중대 1만5천여 명과 철거용역 400여 명이 대추리, 도두리로 몰려와 굴삭기를 동원해 주택을 부수고 저항하는 인권활동가들을 연행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강제퇴거는 오후 4시경 가옥 60채를 파괴한 채 종결됐다. 이에 앞서 경찰은 철거대상 가옥 주변을 에워싸 주민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한편, 4개 마을로 진입하는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평택지킴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강제퇴거 막아야할 국가가 자행한 강제퇴거

이날 강제퇴거는 한국정부가 비준하고 있는 국제인권규범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일 뿐 아니라 국가가 앞장서서 평화적 생존권과 주거권을 위반한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한국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국제사회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게 강제퇴거를 시행해온 나라로 꼽혀왔고, 13일 진행된 강제퇴거는 그 오명을 다시금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1997년 제16차 회기에서 채택한 사회권규약 ‘일반논평7’에서 “당사국은 어떠한 강제퇴거, 특히 대규모 집단이 관련된 강제퇴거에 앞서 강제력 사용의 필요성을 피하거나 적어도 최소화시키기 위해 관련자들과의 협의 하에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도 “강제퇴거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사회권규약 당사국인 한국정부는 ‘인권기준’은 무시한 채 5월 4일 대추분교를 무너뜨리고 주민들의 생명과도 같은 들판에 쇠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설치하는 등 자신들의 일정에 따라 작업을 진행해 왔다. 또한 출석요구서를 받고 경찰서에 자진출두 한 김지태 대추리 이장을 구속시켰고 최근에는 농사를 지었을 뿐인 주민 4명을 ‘불법영농자’로 고발했다. 정부는 강제퇴거의 근본원인이 된 미군기지확장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재협상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 등 ‘강제력 사용의 필요성’을 피하려는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1976년 제1차 세계주거회의에서 채택된 ‘인간정주에 관한 밴쿠버 선언’은 국가의 이념이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집과 토지를 빼앗거나 권리나 이용을 위축시키는 것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지만 ‘친미사대’라는 국가의 이념에 저항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게 가해진 것은 국가폭력뿐이다.


저항을 억누르려는 보복성 ‘퇴거’

게다가 이날 강제퇴거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저항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다. 국방부는 애초 부지조성공사 과정 중 문화재 시굴조사 등을 위해 “비어있는 가옥들부터 철거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강제퇴거 과정에서 경찰과 용역이 표적으로 제일 먼저 달려든 곳은 ‘비어있는 집’이 아니라 평택지킴이들이 ‘사는 집’이었다. 또 이날 경찰과 철거용역들은 ‘빈집’만 철거한다는 국방부 발표와 달리 주민이 살고 있는 집도 철거했다. 13일 오전 대추리 4반 김 아무개 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철거용역들이 집에 들어가 전기를 끊고 건물을 완전히 파괴했다. 철거용역들은 방모 씨의 집에도 들어가 가재도구를 밖으로 들어냈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만류해도 듣지 않은 채 철거준비를 하다 거센 저항에 부딪혀 물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당장 가옥을 철거할 필요가 없는데도 정부가 ‘빈집’을 철거한다는 명목으로 강제퇴거를 자행한 것은 끝까지 저항하려는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과 공포를 가해 스스로 떠나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물리적으로 주택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저항의 싹을 자르겠다는 포석으로 평화적 생존권을 옹호하는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를 고사시키겠다는 의도이다. 앞서 소개한 ‘일반논평7’은 이런 상황에 대해 “징벌조치로서의 강제퇴거 및 주택철거 역시 동 규약의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강제퇴거 그 자체는 인권 침해

철거 과정에서 경찰과 철거용역이 보인 폭력성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가옥 옥상이나 지붕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거나 '강제철거 인권침해'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서서 평화적으로 저항했을 뿐인 활동가들을 강제로 연행하고 부상을 입혔다. 또한 사람이 올라가 있는 지붕을 방패로 부수면서 내려올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방부는 “철거작업간 인접한 다른 집들에 피해를 주거나, 단전, 단수 등으로 불편을 겪지 않도록 빈집들에 대해서만 미리 단전, 단수 조치하는 등 용역업체 및 한전과 협조”했다지만 철거현장은 무차별적인 주택파괴와 함께 전봇대가 무너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철거는 강제를 수반하는 폭력이 따르기 때문에 생명과 안전,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 ‘일반논평7’은 “강제퇴거의 관행은…보장된 권리에 대한 분명한 침해일 뿐 아니라, 또한 생명권, 개인의 안전에 대한 권리, 개인, 가족과 가정의 사생활 불간섭에 대한 권리, 그리고 소유물의 평화적인 향유에 대한 권리 등과 같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침해”라고 선언하고 있다.


소유형태와 상관없이 점유의 안정성 보장되어야

국방부는 철거대상 주택들이 자신의 소유로 넘어왔다며 강제퇴거 명분을 앞세웠다. 하지만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규약 ‘일반논평4’에서 “점유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강제 퇴거, 괴롭힘, 또는 기타 위협으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점유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주택을 소유하고 있느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즉 그 점유형태가 어떠하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지 않을 권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추리, 도두리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의 점유 안정성은 당연히 존중, 보호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주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은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집까지 잃게 되었다.


강제퇴거가 남길 정신적 외상과 평화롭게 살 권리

강제퇴거는 신체적인 외상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수반한 강제철거는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생활터전을 파괴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수반한다. 집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옮겨갈 수 있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집을 기초로 이웃을 맺고, 마을을 이루면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강제퇴거는 필요 없는 집 몇 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이 담고 있는 모든 인간다운 권리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대추리, 도두리에서 나고 자란 농민들과 평택지킴이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짧게는 지난 몇 달 길게는 수백년동안 이어온 마을의 문화를 형성한 기반이다. 집이 파괴되는 상황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보다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나는 이제 뵈는 게 없어”라며 실신한 농민의 절망을 정부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집은 무너졌어도 투쟁은 계속 된다

대추리, 도두리에 누런 알맹이를 담고 있는 벼가 자라고 있는 한, 주민과 평택지킴이가 살고 있는 한 ‘강제퇴거’는 중단되어야 한다. 비록 노무현 정권은 대추리, 도두리에서 강제퇴거를 단행했지만 저항까지는 파괴할 수는 없다. 강제퇴거에서 보여준 정권의 야만성은 그 의도와는 반대로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는 거대한 투쟁의 함성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난 8일 청와대 앞을 출발해 전국 방방곡곡에 평화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와 한미FTA협상 저지를 위한 전국행진단’과 함께 9월 24일 서울에서 개최될 4차 평화대행진을 민중역전의 계기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