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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 저작권법, 막아야할 것과 바꿔야할 것

정보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는 법안 중 하나는 저작권법이다. ‘지식·문화의 상품화’가 정보사회를 떠받히고 있는 기둥의 하나라면, 저작권법은 ‘지식·문화의 상품화’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이라는 환경의 변화를 저작권법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는 전 세계적인 논쟁의 대상이었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 2003년, 2005년, 2006년에 걸쳐 저작권법이 개정되었다. 특히 2006년은 저작권법 전체가 개정되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문화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미래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저권법 개정은 ‘저작권의 확장과 강화’라는 일방적인 목표만을 향해왔다. 한미 FTA 협상이 국회에서 비준된다면, 저작권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정될 수도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 보호와 공정한 이용의 균형

'문화의 발전'이라는 저작권법의 목적에 비추어보면, 권리자의 보호는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이용'의 '균형'이 내재적인 원리이다. 배타적 권리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문화의 향유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기존 저작물의 향유와 이용에 기반한’ 또 다른 창작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저작권법은 이제 ‘창작’보다는 ‘투자’를 보호하는 법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실제 창작자는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혹은 기업에 종속된 계약자)일 뿐이며, 저작권은 ‘투자자’인 정보·문화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UN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가 채택한 일반논평에서도 "지적재산권 제도는 주로 기업의 이익과 투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문화기업은 로비를 통해 전 세계적인 저작권 강화를 추동하고, 이렇게 강화된 저작권은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 강화는 ‘정보에 대한 접근권’, ‘표현의 자유’, ‘커뮤니케이션 권리’ 등의 권리를 제약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에 대한 접근은 복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보의 조합, 변형, 편집 등을 통한 새로운 창작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도 권리자에게 '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Copy-right!)를 부여한다면, 시민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과 재창작은 제약당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디지털 도서관에 대한 원격 열람, 드라마 커뮤니티에서의 콘텐츠 공유, 대중음악을 활용한 비영리 인터넷방송의 제작 등이 저작권 보호를 이유로 제한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지식, 문화의 향유와 소통을 막지 않으면서도, 창작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저작권을 넘어선’ 새로운 모델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

저작권 관련 세미나 홍보 웹자보(출처:정보공유연대)

▲ 저작권 관련 세미나 홍보 웹자보(출처:정보공유연대)


저작권 세 번 위반하면 아웃?

현재 국회에서 쟁점이 될 법안들도 ‘문화 콘텐츠 산업의 발전’이라는 기존 담론에서 벗어나있지 않다. 18대 국회에 발의된 저작권법 개정안만 해도 2009년 2월 23일 현재 10개에 이른다. 이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법안은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사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준비한 법안인데, 의원 입법의 형식을 취했다. 문광부가 2008년 7월 16일 입법예고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소위 ‘삼진아웃’ 제도를 주 내용으로 한다. 불법 복제물을 반복적으로 게시한 이용자의 계정을 해지하거나, 불법 복제물 삭제 명령을 반복적으로 받은 게시판을 폐쇄하거나, 특정한 온라인 서비스를 폐지하도록 (저작권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문광부 장관에 부여하겠다고 한다.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은 우선 제재조치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마치 주차위반 몇 번 했다고 면허를 취소하거나 특정 지역에 출입을 금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용자 계정은 이용자가 정보에 접근하고, 글을 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필수적 관문이다. 이용자 공간에는 이용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활동 및 소통의 기록들(예를 들어, 메일, 글목록이나 거래목록, 게임 아이템 등)이 저장된다. 이용자 계정의 해지는 이용자의 정보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며, 해당 이용자를 그 공간 내에서 추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시판의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복제물이 몇 번 올라왔다고 특정 게시판을 불법 복제물의 온상이라고 볼 근거는 없을 뿐더러, 이를 빌미로 게시판을 폐지한다면 불법 복제물과 관련 없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소통 공간 역시 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 동호회에 불법 복제된 영화 클립이나 스틸 이미지가 올라왔다고 게시판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합당한 규제일까? 특정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난 해 촛불 집회 과정에서 주목받았던 ‘아프리카 (afreeca) 서비스’에서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서비스는 방송 생중계의 불법 전송문제로 논란이 되었고, 지난 2008년 6월 문용식 대표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만일 아프리카 서비스가 5월 이전에 불법 복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면, 촛불집회 과정에서 보여준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새로운 모델’의 실험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저작권법 정부 개정안은 또 다른 인터넷 통제법

이러한 비판을 고려한 듯, 강승규 의원의 개정안은 정부 개정안보다 제재 수위를 완화시켰다. 예를 들어, 이용자 계정의 정지 기간을 1년 이내로 제한하였으며, 게시판의 폐지도 ‘해당 게시판의 형태, 게시되는 복제물의 양이나 성격 등에 비추어 해당 게시판이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요건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제재 수위가 완화되었을 뿐, 본질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 개정안의 다른 큰 문제점은 자의적인 내용 규제, 즉 검열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개정안을 보면, 그 구조가 ‘인터넷 내용 심의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다. 인터넷 상의 표현물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용 심의와 시정 요구․권고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삭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저작권위원회가 심의를 하고, 불법복제물의 삭제, 이용자 계정의 해지, 게시판의 폐지, 사이트 폐쇄 등의 시정권고를 할 수 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문광부 장관이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인터넷 상의 내용 심의에 관한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현재 위헌 소송 중이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로 위헌적이다.

‘상영 중인 영화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명백한 불법복제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사실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 비평 게시물에서 동영상 클립이나 사진, 음악 등을 이용했을 때, 이것이 저작권 위반인지 공정이용인지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물며 어떤 게시판이나 서비스가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부가 이러한 판단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도대체 법원은 왜 필요한가? 정부 개정안은 사법적인 판단도 없이 이용자, 게시판 운영자, 서비스 사업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검열’ 혹은 또 다른 인터넷 통제에 다름 아니다.

‘권리자 편향적’인 저작권법을 넘은 대안 입법

현재 정보공유연대 IPLeft와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정부안에 대한 비판과 함께, 우리들의 입장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권리자 편향적’인 저작권법이 조금이나마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대안 법안에는 ‘공정이용’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공정이용이란 권리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교육 목적이나 시사보도, 도서관에서의 이용 등 공익적 목적이나 저작물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권리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복제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 현행 저작권법에도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이용에 해당될 수 있는 경우를 모두 나열하기는 힘들며, 환경 변화에 따른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면 공정이용으로 인정하는 ‘공정이용 일반조항’을 신설하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공정이용 일반조항이 있다. 또 세금과 같은 공적 자금의 지원으로 창작되는 정부 저작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디지털 도서관을 제 자리로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디지털 도서관’에 원격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대안 법안에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디지털 도서관’의 역할을 복원하고자 하는 조항도 있다. 학내 연구실에서 학교 도서관에 접근하여 열람하는 것조차 불법인 현실이다. 도서관 내에서 열람할 때에도 동시에 열람할 수 있는 이용자 수는 ‘이용허락을 받은 도서의 부수’로 제한된다. 직접 도서관에 가야하고, 동시에 열람할 수 있는 이용자 수마저 제한한다면 ‘디지털 도서관’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저작권법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도서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디지털 도서관으로 원격 열람이 가능하다면, 누가 돈을 주고 책을 사보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과도할뿐더러, 굳이 비판매용 도서에까지 동일한 제한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원격 열람을 허용하되, 판매용 도서의 경우 5년이 경과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원격 열람을 제한하고, 5년이 경과한 후라도 원격 열람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형사 처벌 독소조항은 이제 그만

지난 몇 년 동안 저작권자를 대리한다는 법무법인들이 불법 복제를 빌미로 게시자를 협박하여 합의금을 받아내는 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왔다. 비록 저작권 위반 행위를 했다고 하나, 형사 처벌을 빌미로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서로 다른 시점에 행해진 저작권 위반 행위를 미리 알고서도 합의 이후에 다시 합의금을 요구하는 등 법무법인들의 비윤리적 행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자살하는 청소년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작권 위반에 대한 형사 처벌을 ‘영리 목적의 업으로 한 자’로 제한하도록 하였다. 변재일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도 ‘총 소매가격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005년 저작권법 개정 이후, 네티즌들이 자신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려둔 배경 음악이나 사진, 동영상을 삭제하는 등 큰 혼란이 있었다. 저작권법은 우리의 문화 생활이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이미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작권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일은 ‘불법복제도 허용하자’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합법인지’, '어떠한 체제가 진정 문화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묻는 일이다. 그러나 ‘불법복제는 도둑질’이라는 단순한 구호만 사회를 맴돌고 있다. 이제 인터넷, 지식, 문화에 대한 우리의 수용 방식을 규정하는 저작권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할 때이다.
덧붙임

오병일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이자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