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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철거민 어머니의 호소

한국도시연구소가 1998년에 펴낸 <철거민이 본 철거>

내가 처음 철거민을 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바람고개라 불리는 언덕 주변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 아는 언니, 오빠,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터 집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가고 돌무더기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비닐 천막이 한두 개씩 늘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단지 궁금했던 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비닐집에서 옷은 어떻게 갈아입으며 용변은 어떻게 해결할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의 눈물을 봤다. 비닐집에 사는 친구였다. 혼자서 비닐집에 앉아(너무 추웠다) 빨래를 개며 그 친구는 연신 중얼거렸다. “울 엄마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울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어린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서야 그 눈물에 담긴 서러움을 짐작하게 됐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닥쳤기 때문이다. 철거는 아니지만 단칸방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가는 일이 흔했다. 몇 차례 같은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건 집달리는 꼭 새벽 4시경에 온다는 거였다. 잠에 취한 식구들이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그들은 살림을 밖으로 집어던진다. 차가운 새벽바람에 정신을 차린 식구들이 체념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하면 그들의 우악스럽던 손길이 좀 얌전해졌다. 엄마가 밥풀로 벽에 붙어뒀던 상장들이 찢기고 밥상이 깨진 후 길바닥에 나동거리는 초라한 살림을 주워 모았다.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 임시거처를 구하러 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동생들은 창피하다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 홀로 알량한 살림을 지키느라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 있으면, 나와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대학교 때 철거지역에서 잠깐 공부방을 했다. 거의 다 부서진 동네에서 역시 반쯤 부서진 집 이층을 청소하고 마련한 거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같이 노는 활동이었다. 학년도 성별도 다른 아이들은 공부에는 집중하려 하지 않았고, 어쩌다 같이 간 남학생들은 아이들이 하도 말을 태워달라고 해서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학교 축제로 한 주를 건너뛰고 찾은 공부방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이미 부서진 집이었음에도 공부방이 눈꼴셨는지 철거반원들이 공부방에 오르는 계단조차 아예 무너뜨렸다. 아이들과 작별인사도 못했고 다시 보지도 못했다.

뉴타운개발로 강제퇴거 위기에 놓인 왕십리 주민들의 모습(출처:빈곤사회연대)

▲ 뉴타운개발로 강제퇴거 위기에 놓인 왕십리 주민들의 모습(출처:빈곤사회연대)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후 이런 문건을 접했다. ‘세계주거권회의’라는 게 있는 데 거기서 한국을 남아공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인간적으로 철거를 하는 국가로 지목했다는 거였다. ‘참 안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심각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권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법적 해석은 1991년에 발표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적절한 주거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4"이다. 이에 따르면 주거권은 물리적인 주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말한다. '적절한 주거'의 개념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반드시 자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집을 소유할 수도 있고, 임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하든 임대하든,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에서 살든 간에 안정적으로 살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임대했던 집에서 갑자기 쫓겨나거나 집이 철거되거나, 또는 그 집에 살 수 없도록 강한 협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갑작스럽게 거주 공간을 빼앗기거나 위협을 받는 경우, 국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거나 안정된 주거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유엔에서는 또한 이런 주거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대표적인 현상을 지목하였다. 그건 바로 땅 투기와 부동산 투기이고, 토지 몰수와 수용, 토지 소유의 불평등, 토지 파벌의 성장을 통제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이다. 또한 저소득자가 생계를 위해 필수적인 토지 및 부동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정부의 시장개입의 소극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용산 참사가 벌어지고 참 속상한 일들이 많이 이어졌다. 철거민을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측의 대립도 적지 않다. 인간의 죽음 앞에서 벌일 일이 아닌 일들이 많다. 그중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슬렸다.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에 왜 경찰력이 끼어들었느냐’는 식의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 일은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주거권에 소홀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원인은 거기에 있다.

애초에 주거권이란 인권이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거리에 치우치지 못하도록 사회경제적 강자의 탐욕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국가가 나서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적 폭력인 용역이 와서 괴롭히면 공권력이 나서서 퇴거 대상인 사람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손잡고 춤을 췄다.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에 괜히 끼어든 게 아니라, 공권력은 고의적으로 늦게 왔고, 작정하고 저들의 편에 섰다.

용산참사 현장 뒤로 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 철거가 끝나뒤 들어설 건물에서 다시 일을하고 살게될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몇이나 될까?(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용산참사 현장 뒤로 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 철거가 끝나뒤 들어설 건물에서 다시 일을하고 살게될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몇이나 될까?(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법은 강자에게 엄하고 약자의 설움을 껴안아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강자도 약자도 법을 외면할 것이다. 강자는 굳이 법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고, 약자는 ‘법에 호소해 봤자’라고 체념할 테니 말이다. 아니, 체념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법이 있고 공권력이 있고 생계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당국이 있었다면 망루가 세워졌겠는가. 당신들의 세상과 당신들의 법과 당신들의 공권력에 대한 체념이 무엇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들이 감당 못할 그 무엇이 될 것은 확실하다.

<철거민이 본 철거>,1998

철거반만 오면 아이들은 놀다가도 “엄마, 철거반 아저씨들이 곡괭이, 몽둥이 들고 와. 빨리 나와!”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허겁지겁 맨발로 뛰어나와 살림을 챙기고 판자조각이라도 부서질까봐 주섬주섬 뜯을 때는 정말 숨이 꽉 막히고 심장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나마 판자조각이라도 없어지면 당장 한데서 자야 하는 저희들의 신세고 보니 사정도 해봅니다. “아저씨, 제발 우리가 뜯을 테니 부수지 말아요”하고 두 손 모아 애타게 애원하지만, “높은 사람이 위에서 보고 있으니 곤란하다”면서 사정없이 부숴버리는가 하면 방 구들까지 곡괭이로 마구 파버리고 갑니다.…(1975년, 중랑천변 철거민 ‘어머니의 호소’)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호화주택이나 고급 아파트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새끼들이 살 수 있으면 하는 땅과 집입니다. 하늘과 땅을 사람에게 준 하나님 왜 우린 한국에서 태어나 땅도 집도 없이 쫓겨다니며 살아야 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 양심가지고 하루종일 일해도 땅도 집도 살 수 없으니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까? 어디를 가도 땅도 집도 많은데 우리 집 땅은 하늘에나 있는지요. 잠시 살다가 갈 땅과 집이 없으니 어떻게 자식 새끼들하고 살아야 합니까? 63층 건물속에 살아있는 수족관 물고기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까? 죽을까봐 수억을 들여 살게 합니다. 똑같은 1표의 투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도 왜 우린 쫓겨다니고 짐승취급도 못받고 소리치면 때리고, 목조르고, 감옥에 집어 넣는다고 호통을 칩니까? 하나님, 한국은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래서 세계에서 발전한 우방 대열속에 끼는 것이 됩니까? 우리도 도둑질하고 때리고 죽여서 잘 발전된 사회를 만들며 살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칠까요?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벌어 땅과 집을 마련하여 잘 살라고 가르치고 계속 투기, 투기, 투기해서 부자 되어 살라고 할까요? (1984년 목동. 신정동 ‘셋방살이 어머니 호소’)

저희 세입자도 마찬가지로 주민세, 재산세, 오물세 등 주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내야할 세금은 다 내고 살아왔습니다. 지키라는 법 다 지켰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역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고 내쫓겨야만 합니까 아파트 입주권이 무슨 말입니까 입주권을 얻어서 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더욱이 이 지역 주민 중 많은 사람들이 전세 월세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입자들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이 그냥 나가라고만 하니 나가 죽으란 말입니까 이렇게 쫓겨 날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우리는 못나갑니다.
각하! 남은 돈 벌 때 뭐하고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느냐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어려운 작업장에서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자식 놈까지 사회에 뛰어들어 가정을 도우고 있지만 우리는 좀처럼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난도 부도 모두가 사회가 만들어 내었다고. 그래서 가난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으니까 세입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구청에도 수십번 찾아가고 시청에도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아 이 딱한 사정 좀 들어보라고 어쩔 수 없이 시위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갖은 수모와 구타 심지어 머리가 찢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살아보겠다고 살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정의사회 구현이 이런 겁니까 힘없고 가난하고 그래도 생명이라고 살아볼려고 바둥대는 우리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부유하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호화 아파트를 짓고 그 돈으로 공원 만드는 것이 정의사회란 말입니까? (1985년 목동, 신정동 지역주민)

재개발이 도대체 뭐 길래, 이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듯 사람이 다치고 들것에 들려나가고 피눈물이 그치지 않는 겁니까?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투기꾼 복부인 그리고 재벌회사를 위한 사업이 아닙니까?
그러니 돈 많고 권력 있는 저들이 돈 벌기 위해 하는 짓이면 뭐든 그게 다 법인 세상입니다. 그거 반대하면 무조건 위법이 되는 거구요.
권력과 돈이 한통속이 되어 깡패를 내세워 폭력 청부를 주고 우리를 죽이러 오는데 그렇다고 우리라고 가만히 병신처럼 죽은 듯 엎드려 있어서야 어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자식들 앞에서라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싸워야겠습니다.

민주 애국 시민여러분!
근본적인 것은 가난한 국민이 집에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주택정책이 세워져야 하는 것인데 이 정부는 그 책임을 우리 같은 철거민들에게 뒤집어 씌워 무조건 우리더러 일방적으로 당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희생이 되고 쓰레기가 되어야 합니까?
이 나라 정부가 근본적으로 가난한 국민은 사람 취급도 안한다는 증거가 바로 살인 철거인 셈이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 이 나라를 말아먹은 다른 증거가 바로 재개발 사업인 것입니다. (1985년 사당동 철거민)

어려운 교육여건 속에서도 올바른 2세를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 애쓰시는 선생님께 드립니다.
부족하고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선생님의 고마우신 마음 항상 마음속에 담고 있습니다.
찾아뵈고 아이들에 대해 상의도 드리고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었지만 여유 없는 생활에 쫓기다 보니 마음뿐이군요.
더구나 대비 없이 갑자기 당한 강제철거로 아이들의 학습준비는 물론 먹고 입는 것조차 챙기지 못해 학교에서 아이들 문제로 더욱 큰 걱정을 하시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온갖 세상풍파 겪고 살아온 어른들이야 그럭저럭 참고 산다고 치더라도 잘못된 현실로 인해 어린 아이들까지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문입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싸워야 하고 앞으로도 싸워야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희의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이렇게 살다보니 혹여 또 다시 강제철가 들어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서 안이 될 런지. 저들의 말로는 난지도에 우리들의 짐을 버린다고도 하니 앞으로의 일을 예기치 못하게 되어,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등교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점 이해해주시고 저희들을 격려해 주십시오. (1990년 서초 3동 철거민 학부모 일동)

덧붙임

류은숙님은 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