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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이름으로 강제철거 막는다

코앞으로 다가온 평택 대추리·도두리 강제철거

달콤한 소금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따뜻한 얼음을 만져본 적은 있는지? 세상에 ‘달콤한 소금’이나 ‘따뜻한 얼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권적인 강제퇴거·철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부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확장 예정 부지에 몇십 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여전히 그 땅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들을 내쫓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입니다. ‘인권’을 외쳐온 현 참여정부가 과연 인권적인 강제퇴거·철거를 할 수 있을까요? 유명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 떠오릅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판사가 ‘살은 떼어가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고 판결함으로써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패소하고 맙니다. 같은 판사가 ‘건물 강제철거는 하되 사람들을 내쫓는 반인권적인 강제퇴거는 하면 안된다’고 판결한다면 과연 정부는 뭐라고 할까요?

집은 어떤 공간일까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아이. 정부에서 강제철거를 강행한다면 이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까?<출처; 평화바람>

▲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아이. 정부에서 강제철거를 강행한다면 이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할까?<출처; 평화바람>

우리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밥을 만들어 먹고 몸에 밴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잠을 잡니다. 생물로서의 인간 종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내일을 꿈꾸고 어제를 돌아봅니다. 또 집은 집 안에 함께 사는 사람들만의 공간은 아닙니다. 마을의 이웃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곳이기도 하고 멀리 사는 친구들이 놀러오기도 합니다. 동네 가까이 있는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근처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가까이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집은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공공의 공간과 통해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집은 수많은 의미들이 오가는 공간이기에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거권을 이야기합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곱 가지 요소로 주거권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전기, 수도, 난방시설 등을 갖추어야 하고 △쾌적해야 합니다. 적당한 넓이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어야 하고 환기도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 집은 △적당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학교나 직장과 가깝거나 지하철역과 같은 교통시설 이용도 편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집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특히 취약한 계층에 대한 우선적인 고려가 필요합니다. △주거비부담이 다른 기본적 생활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비용, 지불할 수 있는 만큼의 비용이어야 하고 △개발이나 국가정책이 함부로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점유의 안정성’ 역시 중요합니다. 이것은 소유 여부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집주인이든 임차인이든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 수 있어야 하죠.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공익사업’

토지의 강제수용을 규정하는 법률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아래 토지수용법)’입니다. 이 법에 의해 토지 등을 취득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사업은 ‘공익사업’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공익사업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택지개발이나 사회기반시설, 즉 도로나 제방 등을 공급하기 위한 사업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국방·군사에 관한 사업’도 포함됩니다. 이 사업이 정말 토지를 강제수용 해야 할 정도로 절실한 공익사업인지에 대한 판단은 건설교통부 장관이 내립니다. 토지의 강제수용이 가져올 피해를 생각한다면 행정기관의 장이 섣불리 사업의 공익성과 필요성을 판단하도록 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늘 안고 있을 수밖에 없죠. 결정의 과정에서부터 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추진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미군기지와 관련된 ‘국방·군사에 관한 사업’의 경우에는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방부장관의 승인만 얻으면 건교부 장관의 승인을 따로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국방부에서 군사적인 목적에 따라 계획을 세우면 자연스럽게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공익사업’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야할 정도로 필요한 공익사업이라면 공익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 수용대상 토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토지 강제수용의 인권적 절차

현재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토지 강제수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익사업' 선정 과정에서도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배제됐다.<출처; 평화바람>

▲ 현재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토지 강제수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익사업' 선정 과정에서도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배제됐다.<출처; 평화바람>

한편 공익사업으로 인정된다고 바로 토지를 강제수용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용될 토지 등의 관계인은 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을 신청할 수 있고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식행위처럼 존재하는 수용재결이나 이의신청과정은 계획 자체에 대한 검토가 아니라 보상의 수준에 한정되고 맙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를 취득하기 위해 ①수용신청 전의 협의 ②수용신청 ③수용절차 중의 협의 ④수용재결의 단계를 두고 있습니다. 강제로 취득하기 전에 두 번 협의를 하도록 한 것은 ‘강제’ 수용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입니다. 이 협의는 한국의 토지수용과정에서의 협의와 달리 실질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이런 협의를 사법상 계약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협의절차는 보상계획을 공고하고 열람하도록 하는 것에 그치고 있으니 분명 다르지요.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토지의 강제수용은 명백한 주거권침해입니다.

강제퇴거의 인권침해

토지 강제수용은 강제퇴거를 낳고 강제퇴거는 여러 가지 피해를 낳습니다. 당장 사람이 생존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들을 박탈당하게 되고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생계수단을 상실하게 됩니다. 주거환경은 악화되고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이웃들과 맺어왔던 관계는 파괴됩니다. 주거권의 침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권침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강제철거의 과정에서 생명이 위협당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노동권을 침해당하기도 하죠.

그동안 수많은 개발과정에서 집이 헐리고 부서지는 것은 인권침해이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부작용 정도로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강제퇴거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강제퇴거는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불안과 같은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유발하는 인권침해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에서는 강제퇴거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책을 두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정당한 철거라 하더라도 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3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의도적으로 퇴거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또 영국의 ‘반퇴거보호법’은 임차인을 불법으로 퇴거시키거나 괴롭힐 때 그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철거는 반인권적이다. 사진은 평택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는 군인들.<출처; 평화바람>

▲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공권력에 의한 강제철거는 반인권적이다. 사진은 평택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는 군인들.<출처; 평화바람>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 지역인 대추리·도두리에 대한 강제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강제철거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이자 야만적인 인권침해입니다. 헌법에는 ‘주거·이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서 보장하고 있습니다. 헌법을 앞장서 수호해야할 정부가 헌법마저 위반하면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정의한 권력에는 저항하는 것이 바로 인권과 정의를 바로세우는 민주주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