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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첫 번째 행위는 자유로운 표현의 파괴

[인권문헌읽기] W. 더그러스 ‘민중의 인권’ 중 표현의 자유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을 불태운다”고 시인 하이네는 읊었다. 인권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인권이 대규모로 침해될 때 그 전령사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이 하는 짓은 맘에 안 드는 표현을 불태워 없애버리거나 혹은 그전에 불태울만할 표현을 할 사람들부터 때려잡는 것이다. 창작물이 나오기도 전에 싹을 없애버리는 것이니 효율적이기 그지없다. 누구 말마따나 그야말로 ‘실용적’이다.

출처 ; 진보넷 <정보인권에 접속하다> (http://toon.jinbo.net)

▲ 출처 ; 진보넷 <정보인권에 접속하다> (http://toon.jinbo.net)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서 ‘치욕’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이다. 매카시라는 상원의원이 내 손에 공산주의자 명단이 있다고 떠들어댔고, 근거도 없는 그런 주장에 사회가 발칵 뒤집어져 빨갱이 색출에 나섰다. 영화인 등 수많은 표현의 생산자들이 애국심을 심사받는 청문회에 서서 양심을 까뒤집어 보이거나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W. 더그러스는 1939년부터 1975년까지 무려 36년간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사를 지낸 사람이다. 그가 유명한 것은 그렇게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사회의 지배계급에게 눈에 가시 같은 소수의견을 일관되게 냈다는 데 있다. 그의 별칭은 ‘길들여지지 않는 더그라스’, ‘위대한 반대자’, ‘고귀한 소수 의견자’였다. 오늘 읽어볼 ‘민중의 인권’은 다름 아닌 매카시즘이 판치던 때에 쓰인 글이다.

인권의 역사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찍이 프랑스 인권선언은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인쇄할 수 있다”고 했고,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세계인권선언도 시민들이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정부와 국가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주의자 밀은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을 허용해야 할 근거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묵살되고 있는 어떤 의견은 진실일 수 있다. 둘째, 만약 그 의견에 다소 거짓이 있더라도 일말의 진실을 담을 수 있다. 지배적인 의견 하나가 전체의 진실을 담을 수는 없기에 반대의견과의 충돌은 남아있는 진실이 공급될 기회를 보장한다. 셋째, 지배적인 의견이 총체적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지배적인 의견이 치열하게 논쟁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은 합리적 근거에 대한 이해나 느낌보다 편견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이므로 가치가 떨어진다. 넷째, 독트린 자체로는 의미를 잃거나 사람들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빼앗길 것이다.

출처 ; 진보넷 <정보인권에 접속하다> (http://toon.jinbo.net)

▲ 출처 ; 진보넷 <정보인권에 접속하다> (http://toon.jinbo.net)


나치즘이 책을 불태우고 결국에는 사람까지 불태운 야만을 저지른 후에 한 철학자는 “열린 사회는 사상의 개방과 기타 기본적 자유를 막으려는 세력들에 대해 영구적인 감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며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경계”라 부르짖었다.

이런 표현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공통되는 주장은 자유로운 표현의 파괴는 언제나 독재자와 전체주의 국가의 첫 번째 행위라는 것이다. 글쓰기와 인권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다. 표현의 자유는 잠재적인 인권침해의 지표일 뿐 아니라 올바른 거버넌스의 기초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 ‘함량미달’, ‘용량부족’이란 별칭을 단 통치자가 있었다. 이 자는 수시로 사고를 치면서도 무대책일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을 끔찍이 싫어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엄중 대처하라’, ‘단호하게 대처하라’를 반복했다. 그래서 유권자 인민 사이에는 ‘무대책이 엄중대처’요,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가 ‘단호한 대처’라는 말이 떠돌았고, 그걸 참지 못한 통치자의 언론통제로 ‘엄중’하고 ‘단호한’이란 단어를 쓴 사람들이 표현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가택수색, 출국금지, 구속 등 표현의 세계에 들이닥친 통치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모두들 놀랐고, 인권침해의 전조를 느꼈으니 근본대책을 마련하자며 똘똘 뭉치게 됐다. 이후 이야기의 결론은 잘 모르겠지만 해피엔딩이길 바란다.

W. 더그러스 ‘민중의 인권’ 중 표현의 자유

(출처: 도서출판 물레, 박홍규 역 『민중의 인권』, 1987)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페리클레스(고대 아테네 정치가)는 행복의 비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기는 자유이고 자유는 행복이나, 자유는 용감한 마음을 갖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토론과 토의는 때때로 전투 그 자체보다도 더욱 훌륭한 용감함의 증거이다.”

완전한 언론자유는 체제도전을 포함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존하는 정권이 서있는 기본 전제 그 자체에 도전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한, 완전한 의미에서의 언론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헌법 수정 제1조(“연방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빼앗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미국 정치체제의 기초 그 자체를 공격하는 논의나 주장조차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미국 헌법 수정 제1조는 참으로 대담한 실험이었다. 그것은 모든 일을 민중의 무제한한 토론에 거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 부닥치는 가치 속에서 얘기하고 주장하고 이끄는 자유를 다른 것에 우월하는 권리로 선택했다. 그것은 그 결과 무엇이 생기는가를 묻지 않고, 결과야 어찌되든 간에 자유로운 토론과 여론에 편드는 입장에 국민을 둔 것이다.

제퍼슨은 …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신문을 갖지 않은 정부와 정부를 갖지 않은 신문 중의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전혀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독재는 언론·출판을 철저히 탄압한다. 메이(영국의 헌법학자)가 『영국헌법사』에서 쓴 바와 같이 “어떤 나라에서도 권력을 갖는 자는, 토론을 자신의 주권과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 벌컥 화를 내는 태도를 취해왔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민중이 완전히 주권을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정치적 권리이다. 민중이 주권행사의 엄숙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적절히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보장이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공적 쟁점의 몇 가지만이 논의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없다면 민중은 획일주의에 억눌려져 그 결과 세계와 세계의 정세에 대한 관심을 전적으로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의견의 자유에는 더욱 깊은 의의가 있다. 그것은 개혁의 기회를 보증하는 것이다. 만일 살아남고자 한다면 언제나 변화하여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법칙인 것이다. 버크(영국의 정치가)가 말했듯이 “어떤 변화의 수단도 갖지 않는 국가는 스스로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도 갖지 않는 국가이다.”

마지막 한사람에게도 언론자유는 주어져야 한다. 이 권리가 만일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하층의 더욱 수가 적은 더욱 비천한 소수파에게까지 주어져야 한다.

민중이 현명한 주권자이기 위해서는 문화적, 학문적, 예술적, 지적인 생활에 대한 제약 내지 제한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지식의 탐구가 자유롭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이어야만 한다. “나치스 독일의 경우와 같이 대학은 정치권력을 흔드는 사람들을 위한 확성기가 되어버려서는 안된다.” 교사는 사상을 추구하고 어떤 영역에도 나아가도록 허용되어야만 한다. 토의에 관해서는 종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 “교육은 끝없는 대화의 일종이고 대화하는 것은 그 성질상 견해의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나의 필생의 목표이고 모든 미국인의 삶의 대상이기도 하다고 내가 믿는 문명이라는 것은 대화의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여러분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 대신에 여러분과 함께 사물의 이치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획일주의는 정신적 영양실조를 초래한다. … 획일주의 국가에 있어서의 시민의 시계(視界)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기 때문에 자기 주위의 세계에 대하여 현명한 반응을 보일수가 없다. 그들은 정부가 조작하는 선전기관의 희생자로 될 뿐이다.

공정한 평론의 특권이라는 것은 공공이익에 관계되는 사실 예컨대 정부의 행동이나 공직 후보자의 적합성과 같은 사실에 대한 평론에 관한 한, 그것이 진실인가 허위인가에 관계없이 비방에 관한 법의 엄격한 적용을 배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단지 비방하는 것이 때로는 치안을 침해한다든가 그러한 경향을 갖는다든가 하는 것뿐의 이유로 어떤 특정한 문서에 의한 비방을 유죄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고 이 특정의 비방이 가솔린의 증발연기가 충만한 장소에서 성냥을 켜는 것과 비슷한 경우에만 유죄로 되어야 한다.

적정절차는 무엇인가? 적정절차는 입법기관이 합리성을 갖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준은 수정 제1조와는 무관한 것이다. 수정 제1조는 본래 표현이 어떤 경우에 ‘합리적으로’ 억압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권한 그 자체를 정부로부터 뺏으려는 의도 하에서 제정자가 입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상은 범죄로 될 수 없다.… “사상범이라고 하는 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행동의 범죄뿐이다.”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