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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권리’의 찬송가를 넘어

[인권문헌읽기]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

흔히 인권은 의무와 책임에 소홀한 것처럼 오해받곤 한다. 권력을 가진 쪽은 ‘의무’라는 이름을 빌어 권력을 오남용했고 인권은 그것을 막으려고 했기에 의무라는 말을 제한적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비뚤어진 권리관이 인간의 사회에 대한 의무를 회피해온 측면도 있다.

비뚤어진 권리관

비뚤어진 권리관이란 ‘나홀로 권리’의 찬송가라 부를 수 있다. 동료인간과의 공통점과 공감을 찾기보다는 나만 분리하려 든다. 확실하고 현실적인 것은 개인의 이익뿐이지 사회 공동의 이익 같은 건 없다고 본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만 보고, 타인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을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기이익을 추구할 테니 그를 통해 사회전체의 이익도 증진될 것이라는 단순한 계산법에 근거해 만사를 판단한다. 욕망의 폭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의지는 없고 욕망의 해방만을 꿈꾼다.

이런 권리관에서 인간은 물질적 자기 이익을 판단과 행동의 핵심요소로 삼는다.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면 그게 의료나 교육 같은 기본적 인권을 표현한 제도라 해도 내 돈 내고 내가 사고 싶은 데서 사겠다는 소비자 정신만이 투철하다. 따라서 사회적 연대의 표현이어야 할 의료·교육·주거·환경 등과 관련된 제도들을 개인의 구매력에 기반을 둔 제도들로 바꾸려 든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를 주무르는 권리관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운하 건설의 망상, 광우병 소고기 수입, 잠 안 재우기 고문식의 교육 비틀기, 환자를 메치는 공공의료의 후퇴, 집값 올려주겠다는 공약에 대거 당선되는 선거풍토 등에서 팽창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이기적 권리의 폭정을 본다.

폭정이 있으면 저항과 대결이 요구된다. 여기서 인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의무가 나온다. 어떤 의무인가?

질서에 대한 권리, 공동체에 대한 의무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며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만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선언에서 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는 많은 국제인권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화를 존중할 의무, 전쟁을 선동하지 않을 의무,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증오를 고취하지 않을 의무, 국제인권법을 지킬 의무, 만인의 복지를 존중할 의무, 사회진보와 발전을 성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 등이다. 또한 여기서 말한 공동체란 나와 가까운 가족 또는 민족·종교·문화 공동체를 넘어서서 가능한 한 넓게 해석돼야 한다.

인권을 가진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 유엔전문기관 중에서는 유네스코가 유일하게 ‘책임’에 관한 선언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 읽어볼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됐는데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현세대가 가져야 할 행동지침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책임’에 관한 선언

선언은 전문에서 “다가올 천년의 사활이 걸린 도전들을 맞게 될 미래 세대의 운명을 우려”하고 “역사적인 이 시점에서 인류와 환경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고 밝히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이에 미래 세대를 보호할 수 있는 필수적인 기초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충분한 존중”이며 “새롭고 평등하며 지구적인 협력관계와 세대 간 연대를 수립”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빈곤, 기술적 및 물질적 저발전, 실업, 배제, 차별, 환경에 대한 위협을 포함하는 현재의 문제들”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를 위해” 해결돼야 하며, “미래 세대의 운명은 오늘 우리가 취하는 결정과 행동에 상당 정도 달려있다”고 했다.

선언의 본문에서는 우리 시대의 연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들을 열거하고 있다. 국경과 세대와 종을 넘어 생명의 동등한 가치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그에 근거한 관계를 다질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연대해야 할 우리는 사실상 이해타산도 다르고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의 정도와 수준도 다를 때가 많다. 그러하기에 인권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인권에서 연대해야 할 대상은 권리가 없거나 약한 사람이다. 또는 이 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직접 겪지 못할 ‘미래 세대’이기도 하고 우리와 종이 다른 자연의 모든 생물종이기도 하다. 사회에서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꾸는 일, 사이코패스가 돼가는 사회적 무관심 또는 냉정함과 대결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인권에 대한 상상력과 실천이 끊임없이 만나야 할 것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

(Declaration on the Responsibilities on the Present Generations towards Future Generations, 1997년 11월 제 27차 유네스코총회에서 채택)

(전문 생략)

제1조 미래세대의 필요와 이해
현 세대는 미래 세대의 필요와 이해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

제2조 선택의 자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충분히 고려해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도 그들의 정치·경제· 사회 체제를 완전하게 선택할 자유를 누리며 문화적·종교적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제3조 인류의 지속과 영속
현 세대는 인간 존엄성을 제대로 존중해 인류의 지속과 영속을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 삶의 본질과 형식을 어떤 형태로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제4조 생명 보전
현 세대는 인간 행동으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지 않은 지구를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책임이 있다. 동시에 지구를 한시적으로 물려받은 각 세대는 자연 자원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생태계를 해롭게 변형해 생명체가 손상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모든 과학기술 진보가 지구 생명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제5조 환경 보호
1. 미래 세대가 지구 생태계의 풍요로움을 통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현 세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생존조건, 특히 환경의 질과 원상태를 보전해야 한다.
2. 현 세대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건강이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 지도 모르는 오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3. 현 세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인간 생활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에 꼭 필요한 천연 자원을 보전해야 한다.
4. 현 세대는 주요사업을 실행하기 전에 그 결과가 미래 세대에게 미칠 가능한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제6조 인간 게놈과 생물다양성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충분히 존중해 인간 게놈을 보호해야 하며, 생물다양성을 지켜야 한다. 과학기술 진보가 어떠한 형태로도 인간과 기타 생물종의 보전을 해치거나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제7조 문화 다양성과 문화유산
현 세대는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며 인류의 문화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 세대는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정의하고 보호하고 지키며 이러한 공통의 유산을 미래 세대에게 넘겨줄 책임이 있다.

제8조 인류 공통의 유산
현 세대는 국제법이 정의한 대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인류 공통의 유산을 사용할 수 있다.

제9조 평화
1. 현 세대는 그들과 미래 세대 모두가 평화, 안전, 국제법의 존중, 인권, 기본적인 자유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보장해야 한다.
2. 현 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전쟁의 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현 세대는 미래 세대가 휴머니즘 원칙에 반하는 모든 형태의 공격과 무기 사용뿐만 아니라 무력 분쟁의 해로운 결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10조 발전과 교육
1. 현 세대는 특히 가난을 타파할 목적으로 가능한 자원을 공정하고 신중하게 사용함으로써 개인과 총체적인 측면에서 미래 세대의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보편적인 사회경제발전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2. 교육은 인간과 사회 발전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교육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익을 위해서 평화, 정의, 이해, 관용, 평등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제11조 비차별
현 세대는 미래 세대에 대한 어떤 형태의 차별을 유도하거나 영속하는 모든 행동과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제 12조 (생략)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