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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과 후퇴 반복 속에 제자리걸음 하는 의료급여제도

의료급여제도 30년을 되돌아보며

7년 전의 구호가 그대로

“의료보호 대상자 종별 구분과 본인부담금을 전면 폐지하라”
“정부는 본인부담금을 경감하고, 가난한 이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얼핏 보면 최근의 요구 같아 보이지만 2000년 의료보호법 시행규칙이 입법예고 되자 보건의료단체에서 낸 성명서를 인용한 것이다. 지금도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지만 노동능력이 있거나 다른 이유로 의료급여 2종이 된 수급자들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도 본인부담금 15%라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여전히 의료이용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의료보호대상자에서 의료급여 수급자라는 명칭만 달라졌을 뿐, 7년 전의 요구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현실은 의료급여제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의료급여공동행동이 지난 10월 9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개최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 [출처] 의료급여공동행동

▲ 의료급여공동행동이 지난 10월 9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개최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 [출처] 의료급여공동행동



의료보호법으로 시작한 의료급여제도

의료급여제도가 독자적인 의료보호제도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77년이다. 그전에는 생활보호법의 시행 속에 의료보호가 실시되다가 1976년 ‘의료시혜 확대방안에 의한 세부시행규칙’이 발표되면서 생활보호와 구분된 별도의 의료보호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에서 질병이 가난으로 이어지고 가난은 질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빈곤층에게 반복된다.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하면 막대한 의료비 지출을 개인이 전부 감당해야 하기에 사회의 밑바닥, 빈곤의 밑바닥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개인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노동환경, 주거, 영양 등에서 생활하는 빈곤층에게 불건강은 필연적으로 맞부딪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료보장이 최소한이라도 된다면 이러한 악순환은 약화될 수도 있기에 빈곤층의 의료보장은 사회안전망에서 기본이 된다.

의료보호법으로 시작한 빈곤층의 의료보장제도가 의료급여법으로 2001년 명칭을 바꾼 것은 의료보장제도에 대한 시각변화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의료보장의 권리 주체임을 의미하며 의료급여제도가 단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동정적이고 시혜적인’ 제도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돈이 없어도 ‘평등하게’ 의료보장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의무적인 제도임을 표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급여제도를 운영하는 복지부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의료급여 수급자들을 ‘공짜로’ 의료이용을 하는 사람들, 다른 사회구성원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고마움을 모르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들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책 방향도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향이 아닌 의료이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이번 30주년 기념행사 때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기념행사에서 복지부가 높이 치하한 의료급여관리사의 활동은 의료급여수급자의 의료이용을 줄였다는 점이었다.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급여 30주년 기념식 [출처] 보건복지부

▲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급여 30주년 기념식 [출처] 보건복지부



의료이용의 통제, 급여일수(치료일수)를 둘러싼 정책의 변주

의료급여수급자의 의료이용을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의료급여제도를 운영한 것은 아래 <의료급여 연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급여일수 조정’과 변화에 잘 드러난다. 의료급여 시행규칙 8조 3에 의하면 의료급여 일수란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입원일수, 투약일수, 투약없이 외래로 의료급여를 받는 경우의 급여일수 및 제4호의 규정에 의한 경구약제만을 투여받는 경우의 급여일수를 합한 것이다. 쉽게 말해, 급여 일수란 매년 병원에 몇 회 갔느냐가 아니라 약을 먹는 등의 의료이용을 한 모든 경우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러한 급여일수를 시행규칙 8조 급여일수의 통보에서 급여일수가 180일이 넘을 경우 분기별로 해당 시장·군수·청장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급여일수가 300일 이상이 되는 수급권자의 경우에는 해당 시장·군수·청장에게 매월 1회 이상 통보하도록 하고 있어 의료접근권을 떨어뜨리고 있다.

만성질환자나 복합질환자가 대부분인 의료급여수급자들은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당뇨나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약을 중단하지 않는 한 급여일수는 365일을 넘을 것이고 중복 질환이라면 급여일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급여일수 제한은 강제적인 의료이용 통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급여일수 통보 때문에 의료이용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느끼고 있다.

급여일수 제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1991년에는 의료보호 기간을 180일로 제한했다가 2000년에는 365일로 확대, 2001년 5월 의료급여법으로 개정하면서 의료급여수급기간을 폐지하였다. 그러다 그해 12월에 의료급여일수를 365일로 다시 제한하는 대신 급여일수를 연장신청하면 급여일수를 연장해주는 ‘연장승인제’를 도입했다. 급여일수 상한제의 도입과 변화과정은 복지부가 정책수립과정에서 여전히 의료급여수급자들의 건강 증진보다는 재정 부담 감소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는 급여일수 제한을 두지 않는 사실과 비교하면 의료급여수급자에 대한 차별임이 분명하다. 급여일수 제한은 과잉진료를 막고 중복처치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행위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한국 의료시장은 의사의 진료행위 하나하나가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별 수가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과잉진료를 부추긴다. 공급자인 병원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건강보험가입자나 의료급여수급자 모두에게 과잉진료를 하게 된다. 실제 무상의료가 실시되고 있는 영국 국민의 의료이용 회수가 한국 국민보다 적다. 2005년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찰을 받은 회수는 연간 11.8회로 OECD 평균인 6.8회의 2배 정도로 집계됐다. 과잉진료 방지라는 근거는 건강보험가입자에게도 해당되는데, 의료급여 가입자에게만 그런 근거를 댄다는 것은 차별일 수밖에 없다.

사실 과잉진료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면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를 포괄수가제로 바꾸고 공급자에 대한 감시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현재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의료의 상업화를 중단해야 한다.

의료급여공동행동이 지난 10월 9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개최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 [출처] 의료급여공동행동

▲ 의료급여공동행동이 지난 10월 9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개최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 [출처] 의료급여공동행동



의료급여 대상자의 확대, 뒤이은 의료급여 후퇴

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2006년도 말 현재 183만 명(전체인구의 3.8%)이며 이중 기초생활수급자가 150만 명, 차상위계층이 20만 명이다. 의료급여 대상 확대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과거에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중심으로 실시한 의료급여제도가 이제는 수급대상을 ‘국내에 입양된 18세 미만의 아동, 희귀난치성질환자’ 등까지 확대하였다. 사실 지금도 의료급여 대상자이지만 각종 수급자격으로 인해 수급 받지 못하거나 건강보험을 체납해 의료이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차상위계층의 의료보장을 실시하기 위한 대상 확대는 올바른 방향이며 더욱 확대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대상 확대로 인한 재정 증가를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몰며 그동안 있었던 의료급여제도의 보장성을 악화시키고 의료접근권을 후퇴시키는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을 감행했다.

그 결과 의료급여 1종 수급자도 외래로 병원을 이용할 때 법정 본인부담금을 내야하고, 그동안 급여항목이었던 파스가 비급여항목이 되어 관절염을 앓고 있는 수급자들의 질병은 적절히 치료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또한 복지부가 밝힌 재정 절감 효과와 중복투약 등의 관리를 위해 만들었다는 ‘선택병의원제’ 때문에 수급자들의 병의원 이용이 어려워졌다. 그런데 복지부가 도입취지로 밝힌 재정 절감 효과나 중복투약 관리는 이 제도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의료계나 복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수급자들의 중복투약을 방지하고 과잉 진료를 줄이려면 제대로 된 ‘주치의제도’가 필요하다.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면 중복투약이나 과잉진료를 방지할 수 있을 뿐더러 환자의 질병 치료만이 아닌 아프지 않도록 관리하고 치료하는 것이 목표가 되므로 수급자들의 건강관리를 포괄적으로 할 수 있다. 주치의제도의 실시는 현행 의료급여제도가 수급자의 의료비 지원에만 머물지 않고 예방할 수 있는 의료보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급자들의 경제적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비급여 항목

건강보험을 비롯한 비급여 항목이 많은 한국의료현실에서 의료급여수급자들이 병원에서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매우 크다. 사실 법정 본인부담금만 나라 지원이 되었지 나머지는 수급자들의 주머니에서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급여 범위의 포괄성과 급여 수준의 완전성, 보편성이 이루어지는 무상의료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3차 병원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무조건 선택진료라는 비급여를 지급해야 하고, 신기술은 당연히 비급여항목이며 MRI 급여 기준의 까다로움, 초음파 등 필수적인 검사 및 진료 항목 등은 여전히 비급여 항목이다.

복지부 권한 남용 가능케 하는 의료급여제도

행정 권력의 남용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복지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부 정책의 변경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매우 신중하게 국민적 동의와 심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의료급여법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위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몇 개월 만에 제도를 바꾸는 게 가능하고 실제로도 복지부는 그렇게 해왔다. 현 의료급여법은 의료급여 수급자의 범위, 급여기준 및 급여일수의 조정 등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바꿀 수 있도록 위임된 부분 등을 바꾸어야 한다.

인식의 전환으로 정책방향을 바꿔야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시장원리로 수급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용의식을 강조하는 복지부의 논리는 수급자들의 건강을 시장원리에 맡겨두는 것과 같다. 오히려 돈이 들더라도 인력이 많이 들더라도 국가가 적극적인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복지부 예산이 지난해 4조원으로 증가했으니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재정으로 차상위계층까지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얘기되고 있는 적자재정전략은 한국복지제도, 의료복지제도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민간보험으로 인해 한국보다 의료제도가 더 나쁘다는 미국에서도 저소득층 의료보장체계인 메디케이드 적용 인구가 2000년 기준 전체 인구의 15%를 넘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의료급여 대상이 되고 있는 수급자는 2005년 전체 인구의 약 4%인 183만 명이다.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상대적 빈곤층이 인구의 15%인 최소 700만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자 선정 기준을 현실화하여 의료안전망을 더욱 넓히고 그에 따른 재원 마련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이다.

복지부에서 의료급여가 차지하는 돈이 4조원으로 과거보다 늘었다고 하지만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공공의료에 들어가는 돈은 매우 적다. OECD 국가간에 비교한 자료에 의하면, 총 의료비중 공공재원비율은 2004년 기준으로 평균 71.4%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51.4%로서 OECD 국가 중 최하위 3위에 머물러 있다. 이 위치는 한국이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정체된 상태이다. 더구나 의료급여제도가 시혜적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의료체계에서 조정하는 분배제도라면 재원 마련도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과정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조세마련정책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해외투자펀드수익에 대한 비과세법안, 골프용품 등 사치재에 대한 특소세 감면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급여 제도에서 바꾸어야 할 것은 사실 많다. 공공서비스의 확충으로 만성질환자의 체계적 관리를 포함한 의료서비스 제공의 대안적 체계 수립, 의료급여 1종과 2종의 구분 폐지,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된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욕구 반영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도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인 사회권 규약에서는 정책 수립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와 적극적인 의사반영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현 의료급여제도에서는 의료급여 수급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어 수급자의 건강권 향상에 필요한 의견과 요구가 담기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기관의 자의적 판단, 의료기관의 편의적 조치 속에서 의료급여수급자의 건강권이 침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의료급여 심의기관에 수급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구조를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수급자의 요구 및 의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의료급여 제도가 잔여적이고 시혜적인 제도가 아닌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급여 연혁>

1977. 12 의료보호법 제정
1979. 1 의료보호법에 의한 의료보호 실시
1984. 1 3종 의료보호를 2종으로 통합
1986. 1 의료부조 실시
1990. 1 의료보호 수가를 의료보험 수가와 일치
1991. 3 의료보호 기간을 180일로 제한
1993. 1 한방의료보호 실시
1994. 1 의료부조제도 폐지, 의료보호 2종 통합하고 1차 진료 본인일부부담금 도입
1997. 1 장애인 보장구 급여화
1999. 2 의료보호 진료지구제 폐지, 제1차 및 제2차 진료기관 지정제도 폐지
2000. 7 의료보호기간을 365일로 확대
2001. 5 의료급여법으로 개정, 의료급여수급기간 폐지
2001. 12 의료급여일수 365일로 제한, 급여일수 연장승인제 도입
2003. 1 본인부담금 보상금제도 도입, 의료급여관리사 배치
2004. 1 차상위 희귀난치성질환자 및 만성질환자 의료급여 적용
2004. 6 본인부담상한제 도입
2005. 1 차상위 12세 미만 아동 의료급여 적용
2006. 1 6세 미만 아동 입원진료시 본인일부부담금 면제
2006. 2 차상위 18세 미만 아동 의료급여 적용
2007. 5 의료급여 텔레케어 시범사업 실시
2007. 7 의료급여 1종 외래 본인일부부담제도 도입, 건강생활유지비 지원, 선택병의원제 실시, 의약품 선별등재방식 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