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기초생활보장, 가족이 아닌 국가의 의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8월 10일 정부는 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기본계획(2021~2023)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약속했었다. 2015년 교육급여, 2018년 주거급여에 이어 2020년 생계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 하지만 가장 예산이 많이 드는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제가 남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공약은 파기됐다.

이번 발표는 “20년 만에 생계급여 부양의무제 폐지, 26만 명 신규 혜택”을 강조하며 전파됐다.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보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당시 그렸던 권리로서 국민의 기본생활 보장이라는 청사진을 온전히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평하지만,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없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온전한 실현은 불가능하다. 부양의무제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제정 배경과 원칙 속에서 바라본다면 부양의무제 폐지 여부는 단지 수급권자 확대 여부나 예산의 문제로만 말할 수 없다.

복지의 권리, 의무는 가족?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작됐다. 그 배경에는 IMF 외환위기가 있었다.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빈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다. 앞서 생활보호법이 노령이나 질병 등으로 생활능력이 없는 이들을 특정해 보호대상으로 하는 시혜적 성격이었다면, 기초생활보장법은 어려움을 겪는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권리로의 전환이었다. 헌법에 명시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구체적인 법률로써 확립한 것이었다.

복지를 보편적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선언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작됐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누구에게나 이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보호법에서 그대로 가져와 존치한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의 부양책임을 우선에 두고, 그것이 어려운 경우만을 선별해 제한적으로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1촌 직계혈족(부모/자녀) 및 배우자인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소득·재산이 일정 수준에 되지 않아 부양할 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기피·거부하여 부양받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확인될 때 수급권자의 자격이 주어졌다.

누구나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현실에서 제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부양의무제는 빈곤을 개인과 가족이 떠안아야 하는 문제로 이미 규정하고, 그럴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게 증명될 때만 제한적으로 국가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러한 제도의 작동으로 복지는 누구에게 얼마만큼 줄 것인지의 문제로만 접근되어 왔다. 부양의무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라는 국민의 기본권 실현의 책임이 국가에게 있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었다. 부양의무제는 기본권 실현의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격’을 걸러내는 부양의무제

빈곤으로 죽음에 내몰린 이들의 소식이 자주 전해진다. 그때마다 정부는 사각지대가 문제라며 위기에 처한 이들을 ‘발굴’한다는 대책만 반복해왔다. 부양의무제는 복지제도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가장 먼저 선별되는 문턱이다. 실질적인 부양관계에 있지 않아도 부양의무자가 존재하면 잠재적 부양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소득과 재산조사를 통해 일정 기준 미달로 ‘부양 능력이 없음’이 확인될 때, 가족 해체 증명서로 가족과 단절된 사유를 소명하고 ‘부양 관계가 아님’이 확인될 때 수급권자의 자격이 주어진다. 부양의무자에게 기준보다 조금이라도 초과한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비가 깎이고, 통화내역을 조사해 연락을 주고받은 게 확인되면 부양의무자가 있다고 보고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부양의무제라는 족쇄는 최저의 생활수준으로, 가족 관계의 부정으로 빈곤층의 삶을 가둔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제도 자체가 만들어낸 문제인 것이다.

부양의무제를 폐지하자고 할 때 부정수급은 대표적인 반대 이유다. 제도의 틈새로 세금이 새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기준을 없애면 도덕적 해이가 심해지고 부정수급은 더 늘어날 거라는 이유다. 누수 없이 복지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고 그러려면 더욱 엄격한 자격 심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부는 부정수급 적발 건수와 액수를 알리며 그 심각성을 드러내곤 하지만, 대다수는 진료기록 허위 작성, 과다청구, 장기입원 유도 등으로 돈벌이한 요양기관이다. 그럼에도 ‘공짜로’ 나랏돈을 타먹는 수급자의 도덕성 문제처럼 호도하거나 수급권자를 예비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보건복지부는 부정수급의 유형으로 수급권자 자격을 얻기 위해 본인과 가족의 소득·재산을 숨기거나 적게 신고하는 경우, 허위로 부양의무자와 가족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를 제시한다. 하지만 수급자 본인이 어려워 신청하는 것인데 가족의 소득이나 가족과의 관계 유지가 왜 문제가 되는가.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이는 빈곤을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며 도움을 구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고 걸러내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복지의 혜택을 받을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면서, 복지를 국민의 권리가 아닌 국가의 시혜로 만들었다.

필요가 아닌, 예산에 맞춰 선별하고 관리하는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지 않은 의료급여의 경우, 건강보험제도를 강화해 보완하겠다고 한다. 2019년 의료급여 수급률은 2.9%(148만 명)에 불과하고,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의료급여에서 배제된 이들은 73만 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 중 70%가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체납이라는 결과가 보여주듯, 수중에 몇 만 원이 없어 아파도 참으며 병원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빈곤층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난 10년 동안 의료급여 수급률을 2~3%로 유지해오고, 의료급여만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유지한 것은 비용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 중 의료급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의료급여 지급이 확대되는 것이 부담이기 때문이다.

2017년 UN 사회권규약 위원회는 절대빈곤층 7%를 포괄하지 못하고 단지 3%만 의료급여가 주어지는 것을 지적하며, 필요한 사람들이 실제로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 발표에서 드러난 것은 현실을 반영해 정책을 실행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아닌, 제한된 예산에서 부양의무제 같은 기준을 두고 범위와 규모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삶이 아닌, 정책과 예산에 맞춰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는 것이다.

가족의 의무에서 국가의 의무로

정부는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가 아니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부양의무제 폐지 요구는 그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라는 청원이 아니었다. 빈곤의 책임이 가족과 개인에게 있음을 명시한 부양의무제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공존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를 바로 세우라는 것이었다.

광화문광장 지하도에 다시 농성장이 차려졌다. 오랜 시간, 빈곤으로 인한 죽음을 추모하며 제도의 기만성을 폭로해온 투쟁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며 싸웠던 2001년 최옥란 열사의 외침이 20년이 지난 오늘 이곳을 채운다. 다시 시작된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투쟁은 기초생활보장이 가족이 아닌 국가의 의무라는 원칙을 분명히 세우기 위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