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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동자동 건강권 배움터 ②] 꼭꼭 숨은 인권을 찾아라

권리와 시혜 사이에서 찾아가는 인권교육의 자리

‘동자동 쪽방촌’. 그 곳에는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2평 남짓한 방 한 칸에 자신의 삶을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 처음 갔던 날, 근처 빌딩에서 쏟아내는 화려한 불빛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창문 하나 없어 빛 한 줄기 밖으로 내 보이지 못하는 쪽방이 있는가하면 세상의 화려한 빛이란 빛은 모두 내보이고 있는 빌딩. 단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창문 하나 가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쪽방에 어둠이 내리던 어느 날, 배움터 불빛 하나가 초롱초롱 밝혀진다.

소중한 것을 지켜주는 인권

이번 ‘동자동 건강권 배움터’은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주제다.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꽃잎에 적는 것에서부터 인권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잠시 후 꽃잎 위에 여러 단어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건강, 우정, 사랑, 친구, 가족, 방 등 살아온 삶이 다른 만큼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양했다. 앞에 나와서 발표하는 것이 쑥스럽다며 부끄러워하는 참가자들의 모습과 칠판에 붙여진 꽃잎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사랑받기 보다는 멸시당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랑’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아프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건강’이 소중하고 말하고 있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방’이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집’이 아니라 그저 ‘조금 큰 방’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말이 단순한 말장난으로 들리는 건 아닐까싶어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여는 마당 <나를 둘러싼 인권꽃잎>

▲ 여는 마당 <나를 둘러싼 인권꽃잎>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무시당하며 꽃잎이 처참하게 짓밟혀 바닥에 떨어질 때 그들은 멈칫했다. 앞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발표하며 서로 추임새를 하던 때와 달리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비록 실제가 아닌 가상의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수도 없이 겪었을 아픔들이 다시 떠올랐던 건 아닐까? 그런 와중에 “내 꽃잎은 안 떨어졌어”라고 좋아하며 웃던 어느 분.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그 웃음을 보고 싶다.

아직은 권리가 아닌 시혜

지금부터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 지 알아보는 시간이다. 우선, 각 모둠별로 한 쪽방 주민의 생애를 가상으로 구성한 상황지를 받은 후 인권이 침해된 상황을 찾아보았다. 다음에는 각 침해상황과 관련된 권리카드를 찾아내어 빙고판에 붙였다. 권리카드에는 건강하게 살 권리, 쉴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 등 상황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권리들이 그려져 있었다. 한 모둠씩 돌아가며 빙고판에서 권리카드를 떼어낼 때마다 각자 삶 속에서 경험했던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해. 공공근로가 어떤 게 있는 지 정보를 알 수 있으면 좋겠어. 알면 할 수 있으니까. 몰라서 못할 때가 많어”라고 어느 참가자가 말하자 미처 권리로 짚어내지 못한 다른 모둠 사람들 얼굴에 ‘아차’하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쉼터에서 살고 싶지 않아도 갈 곳이 없어서 살 수 밖에 없어요.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노숙인이라고 무시하고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권리카드가 나오자 “여기도 있어요. 우리도 찾았어요”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때로는 의견이 달라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라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 줬으면 좋겠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노인들은 병원 돌아다니면서 약 타다가 죄다 버려. 난 반대야.”
“그럼 그런 사람만 못하게 하면 되지 왜 죄 없는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만들어.”

본 마당 <인권찾아 빙고!>

▲ 본 마당 <인권찾아 빙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많은 인권침해들이 드러났고 세 줄 빙고를 맞춘 모둠이 ‘빙고’를 외치면서 게임은 끝이 났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상황지의 한 인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참가자들이 모두 그 내용을 ‘권리’로 인식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섣부르다.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 해주면 고맙고 안해줘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참가자들의 일상에서 자신에게 필요하나 것들이 ‘권리’로 다가오기보다 ‘시혜’로 베풀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고 각자 살아온 이력이 다르니 공감이 된다.

인권교육의 자리는 어디일까?

첫 번째 배움터를 통해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가져야 하는 권리라는 것을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것이 권리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 마음 속에 당장 ‘권리’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설령 참가자들이 인권을 권리로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주장하고, 요구하고, 지키기까지는 많은 경험과 변화 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배움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비록 권리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권에 대한 작은 관심이나마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오늘의 배움터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일까. 참가자들이 자신의 인권 침해 경험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을까. 인권운동에 있어서 배움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래서 자꾸만 더 살고 싶어지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움터가 한 몫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두 번째 배움터를 기다린다.

[꼭꼭 숨은 인권찾기]는

인권이 무엇인지, 인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각자의 권리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여는 마당(나를 둘러싼 인권꽃잎)에서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꽃잎에 적어 발표한 후 칠판에 붙입니다. 그런 다음 꽃잎을 찢거나 짓밟는 퍼포먼스를 통해 인권이 꽃피었을 때와 인권이 파괴되었을 때의 느낌을 나눕니다.

본마당(인권찾아 빙고)에서는 모둠별로 상황지와 권리카드를 나눠준 후 인권이 침해된 상황에 필요한 권리카드를 찾아내어 빙고판에 붙이도록 합니다. 빙고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모둠별로 돌아가며 권리카드를 하나씩 떼어낸 후 그 카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며 우리의 권리를 찾아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