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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용산구청의 막무가내 복지행정?

말도 없이, 법적 근거도 없이 의료급여 2종으로 강제 강등

“왜 아무런 말도 없이 2종으로 바꾸냐”

4월 2일 경에 용산구청에서 용지가 날아왔어요. 그것을 열어보니 진단서를 끊어오라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당연히 끊어서 낼 거니까 끊으러 갔어요. 4월 6일 날 제가 가는 병원에 갔어요. 제가 (의료급여) 1종이었는데 거기 병원 수납 창구 모니터에 2종으로 뜨는 거였어요. 병원에서는 2종으로 바뀌었으니 2종에 대한 수수료 1,660원을 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으면서 확인을 한 결과 그 위에 2종이라고 써있더라구요. ... 다음 날 동사무소에 진단서를 내러 갔습니다. 가서 왜 2종이냐고 물어보니 ... 하는 말이 “아저씨만 그런 게 아니라 다 2종으로 바뀌었”다면서 보여주더라구요. 나중에 저는 왜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맘대로 2종으로 바꾸냐고 따졌죠. 그러니 그 공익근무요원은 “자기는 모르니까 구청에 가서 따지세요”라고 했어요.
[용산구에 사는 주민 이00 인터뷰]

병원 수납 영수증. 의료급여 1종이었던 이씨가 ‘보호 2종’으로 변경되어 기재되어있다. 이에 따라 본인부담금 1,660원이 부과되었다. <br />

▲ 병원 수납 영수증. 의료급여 1종이었던 이씨가 ‘보호 2종’으로 변경되어 기재되어있다. 이에 따라 본인부담금 1,660원이 부과되었다.


이는 단지 용산구의 한 주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3월 31일, 용산구청은 관내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일반 수급자)들을 아무런 사전 통지도 없이 ‘의료급여 2종’으로 전환시켰다. 복지부의 2009년 의료급여 개정내용에 대해 용산구청이 수급당사자들을 무시한 채 행정 처리에만 급급하여 진행하면서 생긴 어이없는 사건이다. 복지부의 개정내용은 기존의 1종 의료급여대상자들도 진단서 내에 ‘3월 이상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 ‘근로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반드시 기재되지 않으면 2종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 첫 문제는 의료급여 2종으로 전환되면 의료급여수급자는 병원 진료 및 입원 시 본인부담금을 더 내야 된다. 지금의 의료급여제도에서는 1종과 2종이 내야하는 의료부담금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2차, 3차 병원 진료 시, 본인부담금 15%. CT, MRI 등에서 본인부담금 15%, 입원 시 본인부담금 10%)

그리고 이번 조치는 일반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될 것이 강제되는 ‘조건부 수급자’로 전환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진단서에 적힌 ‘근로 능력 유무’는 일반수급자와 조건부 수급자를 나뉘는 기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활사업은 그 종류와 노동 강도가 다양할 뿐더러 그에 대한 정보 역시 제공되지 않은 상황이다. 용산구청의 강제 강등 조치로 의료급여 2종 수급자로 전환된 이들은 자신에게 강요될 자활사업과 그에 따른 질병 관리의 공포에 두려워하고 있다. 이러니 ‘수급자 신세’에 대한 비관 또한 더 심해졌다.

이번 조치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 34조는 ‘수급자에 대한 급여는 정당한 사유 없이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 29조는 만약 수급자의 급여를 변경할 경우 ‘서면으로 그 이유를 명시하여 수급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용산구청은 수급자 개개인에게 아무런 통지조차 없이 의료급여 1종 수급자들을 강제적으로 2종을 변경시켰고, 그에 대한 사후 통지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병원 수납창구에서 이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생계의 유일한 방편인 수급 자격 변동 사실을 알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수가 용산구 내 1개 동에서만 187명에 이른다. 이번 행정이 용산구 관할 16개 동 모두에서 적용되었다고 하니, 구청이 자행한 폭력의 피해를 당한 이들의 수는 최소한 수 백 명에 이를 것이다. 그럼에도 용산구와 관할 주민센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시정조치 없이 “근로능력이 없다는 진단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빼더라도 용산구청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용산구청은 최근 공무원의 복지급여 횡령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용산구청의 8급 직원은 지난 2003년 6월부터 2년에 걸쳐 보조금액과 대상자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장애인 보조금 1억여 원을 횡령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용산구청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용산참사의 철거민을 ‘떼잡이’라 하여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의사가 근로능력을 판정한다고?

이번 사건은 질병에 대한 판단과 치료를 하는 의사에게 ‘근로 능력 유무’를 강제하는 보건복지가족부의 2009년 신규 지침의 부당함에 근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의료급여 1종 진단을 받기위해서는 진단서 상에 ‘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3개월 이상의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한 자’라고만 기재되어 있으면 가능하였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진단서 상에 반드시 ‘3개월 이상 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라고 기재 되어야만 의료급여 1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선정조건을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 대해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의료급여 1종 선정 기준을 강화시켜 의료급여1종 대상자들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며 비판을 하고 있다. 또한 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한 사례로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34조) 위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경기침체는 지속되고 있고, 그에 따른 해고와 고용불안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빈곤층의 일자리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며 경기침체는 빈곤층에게 더 큰 타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복지부의 지침 변경은 ‘정당한’ 사유가 못될 뿐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복지정책에 후퇴하는 개정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의사는 자신이 진단한 특정 질환에 대하여 얼마 동안의 치료, 요양, 혹은 재활이 필요한가를 가늠하여 진단서를 발급할 수는 있지만, 특정 질환에 대한 판단으로 인간의 총체적인 활동인 ‘근로 능력’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의사에게 ‘근로능력 유무’ 판정을 요구하는 복지부 지침은 의사에게 의학의 범위를 벗어난 판단을 강제하는 일이다. 어쩔수 없이 의사는 능력을 벗어난 ‘근로능력 없음’이라는 판단을 꺼리게 되고, 이에 따라 불합리하게 일반수급자 탈락 사례는 수없이 누적될 것이다. 이번 조치는 치료에 관하여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마저 단절시킬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마지막 권리마저 빼앗지 마라!

이번 용산구청의 의료급여 강제전환에 대해 용산구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구청에 의료급여 수급당사자 피해에 대한 구청에 이의신청을 제출해 놓은 상황이며, 수차례 면담을 신청하였지만 면담자체를 거절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의료급여 2종 강제전환에 대해 용산구청은 말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며, 복지부 또한 확인후 시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벌써 한 달 넘었지만 구청은 항의하는 수급자에게 진단서 끊어오고 이의신청하라는 식의 답변만 할 뿐이다. 이것이 지자체나 정부가 가난한 자들에게 대하는 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의료급여제도에 의한 수급은 정부의 시혜가 아니다. 이 땅의 빈곤층에게 생존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법보다 밥이라는 말도 있지만, 법으로 보장된 밥조차 빼앗기고 있는 것이 빈곤층의 현실인 것 같다. 이에 가난한 이들이 함께 목소리 내는 것은 더욱 절실하다.

* 현재 빈곤문제 관련 사회단체들과 복지제도에 따른 수급을 받는 사람이 함께 ‘기초생활보장 권리찾기 행동’라는 모임을 구성하여 용산구청의 의료급여 문제, 기초법 관련 피해에 대응하고 있다.


덧붙임

조승화 님은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