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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의 두리번두리번] ‘갈아엎는 4월’로 가는 길목에서

오늘은 ‘아큐’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노신의 대표작 『아큐정전』은 제가 참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중국 사람들의 암흑같은 무지와 낙관을 조롱하듯 형상화시킨 아큐라는 인물, 아시는 분들은 아실텐데, 요즘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꼭 그래요. 어떤 억울한 일, 모함, 모욕과 수치 앞에서도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나보다…’라고 태평하게 넘기는 아큐. 모함으로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세상을 살다보면 조리돌림을 당하는 일도 있나보다’라고 태평한 운명론을 읊조리리다가 정작 죽을 때는 ‘사람 살려!’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죠. 농업, 투자, 서비스, 금융 등 미국에게 곳간 문을 활짝 열어 주고 있는 FTA 협상이 마무리되면 노 대통령은 아마 이렇게 중얼거릴 겁니다. “대통령을 하다보면 나라 팔아먹는 일도 있나보다…….”

공공정책까지 미국기업의 소송감

노 대통령이 협상단에게 ‘철저히 경제적 실익을 따져서 하라’고 협상원칙을 지시했다죠. 투자자-국가소송제로 인해 미국이 우리나라 부동산, 조세 정책까지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협상 관리들께서 많이 양보하셨다는데, 그렇게 되면 공공정책마저 미국기업들에게 소송감이 되겠네요. 과연 ‘한미FTA 이후’ 경제적 이익은 누구의 것일까요? 가난한 사람들, 열심히 일해도 허리가 휘는 그런 사람들은 분명 아닐 겁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가구 소득은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계층별 소득격차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는군요. 이건희가 보유한 재산이 3조라는 사실에 입이 그만 딱 벌어집니다. 자랑스럽게도 세계 억만장자 기준 10억달러도 훌쩍 넘긴 29억달러. 로또에 몇 번이나 당첨돼야 이 돈이 될까요? 정말 꿈같은 이야기죠. 이건 ‘양극화’가 아닙니다. 사회적 부가 극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몰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리는 ‘빈곤의 확대’라는 거죠. 그래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중산층을 살리자’ 따위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10일 한미FTA협상 반대 민중총궐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꽃샘바람 속에서 서울 시내를 뛰어다니며 청와대를 향해 외쳤죠. 하지만 날아오는 대답은 물대포와 몽둥이 세례!

왼쪽 연건평 1100평이라는 이건희 집과 오른쪽 문래동 철공소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 왼쪽 연건평 1100평이라는 이건희 집과 오른쪽 문래동 철공소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참여정부가 민주정부라고?

노 대통령은 한미 FTA 반대는 “예측하고 시작한 것이고, 지금의 반대도 예측한 수준을 크게 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협상단에게) 협상을 진행해 달라고 잘난 척을 금메달 수준으로 했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상했던 수준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진지하게 얘기 한번 안 해보고 물대포와 몽둥이, 방패로 작살을 냈나요? 참여정부가 민주주의 정부라는 착각은 이제 그만 하시죠. 지난 민중총궐기에서 민중들은 거리에 질식해 쓰러져 있는 집회 시위의 자유와 허리가 부러지고 이빨이 깨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목도했습니다. 근데~ 이번 총궐기에선 기자들도 경찰에게 얻어맞아서 <조선일보>까지 집회 시위의 자유 운운했다죠. 참 이런 얘긴 뭣하지만 그 양반들도 당해보니 정신을 차린 걸까요? 한편에선 CNN한국방송으로 인해 미디어 개방에 대한 위기 체감지수가 높아져서 그렇기도 하다는 냉정한 분석도 있습디다. 어쨌건 청와대만 포위된 섬이 될 수 있다는 포비의 충고 흘려듣지 마슈~

개헌, 결국 못 넘을 산?

개헌이라는 중요한 이슈를 노무현은 결국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요. 마치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면 이 나라 잘못된 정치관행들이 시정될 것처럼 말이지요. 포비는 개헌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개헌’하면, 먼저 권력구조의 문제에만 집착하니까 문제죠. 대통령 연임제가 된다고 노무현 같이 헌법을 무시하면서 국민을 기만하는 그런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답디까. 개헌 할 때는 해야죠. 영토조항도 손 봐야 하고, 평화주의 원리도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시정해야 하는 강제적인 조항도 들어가야 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87년 헌법이 갖는 기본권 조항들에 대한 부족한 규정들을 보완해야 하고요. 이런 논의들을 차분히 진행하면서 개헌 논의를 진행해 가야 하는데, 이거는 오로지 대통령 임기 문제만 논의하자고 생떼를 쓰고 있어요.

손 보고 싶은 군사훈련

6자회담의 성과인 2.13 합의는 요즘 잘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요. 북한과 미국은 발 빠르게 관계를 정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북한 김계관은 미국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고, 이런 환대를 가리켜 어느 언론은 김계관이 유럽 사회의 전통에 빗대어 ‘계관시민’의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런데 북미관계 맑음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어요. 3월 25일부터 시작되는 한미연합전시증원과 독수리훈련을 북한이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고요. 북한 조국평화통일평화위원회가 성명을 발표했는데 북침전쟁연습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대화와 전쟁연습은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고 된소리를 질렀어요. 이렇게 조평통이 분위기 띄워주고 차기 6자회담장에서 북한 대표들이 이걸 문제 삼아 왼다리 꼬고 앉아 있으면 순풍을 타던 평화협정도 다시 꽁꽁 얼어붙게 됩니다. 한쪽에서 전쟁연습하면서 평화체제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이 군사훈련이라는 거 민중들이 손을 좀 봐줘야 합니다. RSOI니 FE니 Rapid Thunder니 하는 거 무슨 말인지 아세요? 무슨 토익시험도 아니고, 참나. 군사용어처럼 군사정책도 안보 권력자들이 틀어주고 민중들의 참여나 개입은 전혀 보장하지 않는 거 정말 문젭니다. 한미연합연습양해각서, 전시지원협정, 상호군수지원협정 등 각종 불평등한 협정이 있는 거 아세요? 군사동맹은 우리의 평화적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는 건데, 정작 우린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부인 몰래 집문서 빼내서 놀음판에 팔아먹는 고약한 남편과 다를 게 없어요. 집 날리고 고생하는 건 다 식구들 몫인데 말이죠.

사유재산제에 저항하는 투쟁의 의미 일깨운 임시국회

정치권이 참 복잡합디다. 잘 나가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사실은 예비주자들인데 그냥 이렇게들 불러요. 대선 후보로 뽑은 것도 아닌데요)의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치졸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지요. 경선 시기를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더니 손학규는 경선 불참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요. 박근혜냐 이명박이냐를 두고 국회의원들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고도 하고, 이 둘 중 한 명은 경선 결과에 불복해서 깨고 나온다는 예측들도 나오죠. 총선까지 염두에 둔 의원들 어느 줄에 설까 눈치보다가 눈이 ‘가재미눈’이 되지들 않을까 모르겠네요. 한나라당 의원들 눈을 잘 지켜봅시다. 그런 한나라당 의원들 중 세 명이 지난 임시국회에서는 삭발까지 했어요. 사학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죠. 국회의원이 단식하는 건 봤어도 삭발까지 하는 건 아마 의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을 텐데요, 결국 그 사람들은 대부분 국고 보조로 운영되는 사학의 투명한 경영에는 반대하는 꼴이죠. 대를 이어 안정적으로 해먹을 수 있는 이전의 이사회 체제로 가자는 건데, 결국 학교를 사유재산으로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신념의 표현이겠지요. 아마도 앞으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처리할 때도 이런 사유재산 신념파와 맞서야겠지요. 이들 세 의원들은 우리 사회에서의 결정적인 투쟁이 사유재산제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 선구적인 행동이었단 겁니다. 이미 국제인권조약에서도 사라진 사유재산제, 이걸 지금처럼 완벽하게 보장하고서는 인권의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포비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파충류들의 각축장이 되어가는 정치권

정치권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치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란 거 말이죠. 용, 잠룡, 이무기, 이런 말들이 많이 있잖아요. 결국 뱀의 종류들이니까 파충류에 속하겠죠. 한나라당에는 용도 있고, 잠룡도 있고, 이무기도 있는데,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정세균 체제가 들어서고 한명숙 총리가 가세해도 용의 승천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용이 되려고 꿈꾸는 이무기들이 겨우 잠룡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나 할까요? 그저 옆의 당이 실수하기만을 고대하고, 외부 인사를 영입해서 주목을 끌어볼까나 고민하는 한심한 정당이죠. 요즘 거기가 싫어서 나온 정치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미 FTA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왜 진작 그런 소리를 못했을까요? 민주노동당에서도 대선 후보 경쟁이 슬슬 발동 걸리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잠룡일까요? 강을 박차고 올라 용으로 승천할 수 있을까요? 진보진영은 진보적인 비전을 대선을 통해 국민들에게 얼마나 제시할 수 있을까요? 대선이라는 정치적인 국면에서 기존의 썩은 정치판을 싹 갈아보자는 바람을 일으킬 수 방안은 무엇일까요? 서로 터놓고 소통하는 속에서 보수진영의 파충류들과는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만 드네요.

3월 10일 한미FTA반대 집회에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행진을 완전 봉쇄하고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3월 10일 한미FTA반대 집회에서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행진을 완전 봉쇄하고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4월은 갈아엎는 달

이제 4월이 다가올 텐데, 4월을 맞기까지 넘어야 할 중요한 국면들이 많이 있어요. 3월 19일부터 23일까지 한미 FTA 고위급 연쇄 협상이 열리고, 24일부터 30일 사이에는 한미 양국 최고위층 검토 및 최종 결정이 있고, 3월말에는 대외 경제장관회의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오는 6월까지는 정식으로 국회의 비준을 거쳐서 협정문 서명이 이뤄지겠지요. 이걸 막자고 끝장 단식들을 하고, 2차 총궐기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와중에 6자 회담이 재개되고, RSOI 훈련이 중단될 것인지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신동엽 시인이 그랬죠.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아직 갈아 엎을 만큼 준비가 덜 되었다면 쟁기라도 잘 손봐야겠죠. 한미 FTA 막고, 전쟁훈련은 중단시키고, 그래서 평화체제를 앞당기고. 그렇게 되기를 열망하는 우리들, 무엇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