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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유엔 사무총장 선출, 인권의 원칙을 지켜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내년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유엔 사무총장의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반 장관은 지난 7월과 이달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사이에서 실시된 두 차례의 예비투표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대로라면 28일 열리는 3차 예비투표에서 총회에 추천될 유일한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정부가 이를 위해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1991년에야 유엔에 가입한 나라에서 유엔기구의 수장을 배출한다는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들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 비록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있긴 하지만 유엔은 인권과 민주주의, 세계평화를 이상으로 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직원들의 수장인 ‘수석 행정관’으로서,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협한다고 그 자신이 인정하는 어떠한 사항에도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유엔헌장은 회원국들이 사무총장의 임무 수행에 지시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 그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균형자로 강대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요구받아 왔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유엔의 지지가 없는 침공은 불법”이라며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을 지적해 잠시 미국과 대립하기도 했다.

반면 반 장관을 추천한 한국 정부는, 유엔의 승인 없이도 일방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견했다. 이른바 ‘다국적군’의 침공은 어떤 유엔 결의안에도 근거하지 않았으며,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선제공격 금지’ 원칙을 규정한 유엔헌장마저 짓밟은 전쟁범죄였다. ‘전범’으로 처벌받아야 할 한국 정부가 되레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선언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 미국의 ‘2중대’ 역할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는 한국정부의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기대되는 ‘독립적’이고도 ‘중립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 장관은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기 위해 지난 1월 워싱턴으로 날아간 당사자이기도 하다.

반 장관은 지난 21일 제6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인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구성원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인권 존중 없이는 평화와 개발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한국 정부는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국제노동기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노조 사무실을 침탈했다. 게다가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린 건설노동자들의 정당한 노조활동을 ‘공갈’과 ‘협박’으로 매도해, 결국 한 명의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또 한 명의 여성을 유산시켰다. 게다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는 또 어떤가. 자신의 문제를 돌아볼 줄 모르는 인권은 결국 교만과 패권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제인권기준의 국내적 이행조차도 무시하는 한국 정부는 유엔 사무총장의 야망을 품기에 앞서 먼저 인권에 대한 자기 성찰적 자세부터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