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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자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면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지도부 다수가 사망하고 이란이 반격에 나서면서 중동 전역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장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피해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란 적신월사는 4월 10일 현재 10만 채의 주택과 2만 5천 채의 민간시설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중 339개의 의료시설과 857개의 교육시설이 특별히 표적공격을 받았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란 미나브 지역 초등학교 폭격(168명 아동 사망)은 미군의 실수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지금까지 3,700여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민간인은 1,700여 명이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중동 전역을 전쟁터로 만드는 침략전쟁을 개시하면서도 국제법은 커녕 최소한의 ‘명분’조차 제시하지 않는 무도함을 보이고 민간인과 에너지, 식수, 의료, 교육 시설 등 민간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유의 상황이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라는 ‘문제적 인물’들에 쏠린 관심을 조금 거두고, 강대국에 의한 일방적인 주권침해 전쟁이라는 현재 상황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자.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재 진행 중이며, 얼마 전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작전과 그린란드 영유 시도가 있었다. 강대국들이 앞장서서 국제법과 규범을 어기고 전세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유엔이라는 다자주의 국제질서와 규범이 무너져내리고, 강대국 정치지도자 사이의 담판으로 국제질서가 흘러가고 있다.

국제질서, 전지구적 역학으로서 자본주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냉전기에 이어졌다면, 1990년대 탈냉전은 ‘지구화’로 불린 세계적 교류와 평화의 시기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됐다. 유엔을 필두로 한 각종 국제기구와 협약의 확산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향한 국제규범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1993년에 출범한 유럽연합(EU)은 세계가 나아갈 모델처럼 보였고,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과 러시아도 점차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됐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적 교류와 협력의 가장 큰 동력은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자본의 새로운 축적전략’이었다. 국가 간 체계와 국제질서는 세계시장을 형성해온 자본의 역학과 맞물리며 구성됐다. 현재 우리가 목도한 국제질서와 규범의 붕괴는 바로 이 신자유주의가 정당성을 상실해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20세기 초 자본주의는 유럽과 북미에서 금융과 결합한 거대독점자본으로 전화해갔고, 이들은 각종 카르텔, 트러스트를 조직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상품, 자본, 기술, 노동, 원료의 흐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자본은 더 큰 시장, 더 싼 원료를 찾아 지구적으로 움직였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강제력과 조직력은 ‘국민국가’에 있었다. 이들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자본과 상품 수출시장 그리고 노동력과 원료 공급지로 분할되고 지배당하는 식민지가 된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독점과 지배를 향한 경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끔찍한 전쟁과 식민지배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탈식민 민족주의 운동이 불타올랐다. 그 경험 위에서 1945년 전후 국제질서의 윤곽이 그려지고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전후 부흥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1970년대 세계적 장기불황이 시작되고 오일쇼크로 인한 고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해 세계를 휩쓸었다. 달러는 이제 금융세계화 아래 미국의 금융패권을 유지하는 핵심 도구가 되었다.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했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올라선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매입하며 미국의 소비력을 뒷받침했다. 유로화 도입과 함께 자본블록으로서 경제적 통합을 고도화한 유럽연합의 에너지 기반은 러시아였다. 세계는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자본 시장과 상품, 에너지, 원료 공급망으로 더욱 긴밀히 엮이게 되었고 IMF, WTO, EU와 같은 초국적 거버넌스 기구들은 주요 국가/자본들의 이해를 신자유주의 교리 아래 조정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탈냉전기 단일한 세계질서로서 ‘신자유주의적 분업/축적체제’가 완성됐다. 이제 강대국들이 벌이는 대규모 전쟁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됐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침식해온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새로운 축적전략’을 표방했다. 그 전략은 금융시장의 투기적 팽창과 부채경제, 공적 영역 사유화, 사회적 재생산 쥐어짜기, 비용절감을 위한 노동력, 원료, 에너지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었다. 고삐 풀린 금융자본은 주식, 채권, 선물(에너지/농산물)시장을 실물경제를 뒤흔드는 도박장으로 만들었고, 미래의 수요를 당겨쓰는 부채경제는 위기를 지연시킬 뿐이었다.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했던 공적 영역마저 먹어치우며 자본은 시장을 확장했고, 사회적 재생산은 무급가족노동과 이주여성노동을 쥐어짜며 이루어졌다. 그렇게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의 결과, 1990년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는 지금까지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절반을 넘어서며 기후위기를 가속화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새로운 축적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존립기반마저 먹어치우는 막장전략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 능력에 따른 공정, 다양성, 규제철폐, 유연성과 같은 가치들을 설파하며 자본이 국가, 사회, 인간, 자연을 ‘자유롭게’ 착취하고 수탈할 자유를 확장해갔다. 이는 공공부문 민영화, 긴축과 복지축소, 노동권에 대한 전면 공격, 자연에 대한 상품화로 드러났다. 신자유주의가 확장한 ‘자본의 자유’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앙상한 투표권으로 제한하고 사회공동체 성원으로서 연대와 돌봄의 권리를 경제적 부담으로 만들었다. 특히 비용절감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여성과 이주노동자를 시장으로 적극 유입시켜 저임금 노동계층을 형성하는 것이었고, 이는 기존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과 함께 작동해 노동자의 단결을 파괴하고 ‘보편적 인권과 노동권’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약속한 자유와 번영은 소수의 자산가와 자본을 위한 것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파괴한 신자유주의의 후과는 컸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여성과 이주민을 희생양 삼는 극우정치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는 컸지만, 이들은 자본에 맞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극우정치는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로 무장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차를 두고 집권세력으로 등장한 유럽과 미국 극우정치의 실체였다. 문제는 이들이 국제질서와 규범을 주도적으로 형성해온 중심부 국가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붕괴와 적대하는 세계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금융패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분업/축적체제가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국제질서의 근본적 재편은 불가피했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월가의 은행들은 즉각 대출과 투자회수에 들어갔고, 그럼에도 떠안아야 할 천문학적 손실을 미 연준이 달러를 찍어내며 막아주었다. 유럽의 은행들도 대출을 회수했고 부채비율이 높았던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를 겪고 러시아는 유가폭락과 자본유출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특히 이 시기 러시아는 서구로부터 경제적 분리와 탈세계화라는 커다란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러시아는 전쟁을 통한 세력권 형성으로 나아갔다. 중국 역시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서구 금융시스템에 대한 의존을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2012년 ‘중국몽’ 발표, 2014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창설, 일대일로 세력권 구상으로 나아갔다. 

2009년 오바마 정부에서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규정한 이래 바이든, 트럼프 정부를 거치며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포용적 개입에서 봉쇄전략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봉쇄는 전통적인 군사적 봉쇄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과 공급망 제한이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관리자로서 미국의 책임을 거부하는 트럼프 정부는 관세전쟁과 일련의 군사행동 속에서 강력한 세력권을 추구하는 강대국으로 미국을 재정의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전쟁과 주요국들의 공격적 산업정책 속에서 이미 WTO 체제는 무력화되었다. 우크라이나, 이란 전쟁에서 확인했듯이 유엔 안보리는 분쟁과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붕괴는 대안적 질서의 건설이 아닌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과 같은 강대국들의 파괴적 경쟁과 세력권 분쟁으로 전화하고 있다. 

한국, 전쟁의 피해자 아닌 적극적 행위자

한국은 이렇게 급변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국제질서에서 어떤 행위자일까. 문재인 정부 때 등장한 ‘선진국론’, ‘한반도 운전자론’은 일부 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 증대를 반영한다. 한국은 제조업 전반에서 상당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세계 10위권의 무역 국가이자, 5위 수준의 군사력 보유 국가이다. 국제사회에서 이 정도 위치에 있는 국가는 국제질서의 주요사안들에 구체적으로 연루되기 마련이다. 한국 방위산업은 급성장해 지난해 무기 수출시장 점유율에서 세계 4위에 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재무장에 들어간 유럽 국가들에게 대량의 무기를 수출한 결과다.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에는 한국의 요격미사일 천궁2가 배치되어 있다. 이란은 부셰르 핵발전소 피격에 대한 반격으로 한국이 건설하고 280여 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바라카 핵발전소를 공격대상으로 지목했다. 중동에 핵발전소와 무기를 대량 수출했다며 환호했던 한국은 지켜야 할 최저선이 사라진 이번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졌다. 

4월 9일 열린 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전략국가 KOREA’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규칙이 무너지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대체불가능한 국가’의 위상을 확보해야 전략적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강대국들의 세력권 경쟁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위상 확보보다는 동맹 무시와 갈취에 여념이 없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자본 축적 전략이 파산을 고한 현재, 강대국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수탈하기 위한 세력권 형성에 여념이 없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이 바로 그 현장이다. 

이러한 국제질서에서 한국의 전략이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우리도 한몫 챙기는 것’이어야 할까. 심지어 대규모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세력권 경쟁에 편승해 글로벌 무기 수출국 이 되는 게 되는 게 우리의 전략이 될 순 없다. 혼란한 국제정세 속에서 실용주의,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5극 3특 균형성장전략’, ‘세계 4대 방산강국’, ‘AI 반도체 산업 집중 지원’, ‘핵발전 확대’ 등 온갖 성장제일주의 정책들이 정당화되고 있다. 한국의 ‘국익’이 국제질서의 파괴적 분쟁과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대체불가능한 ‘전략국가 KOREA’가 되어야 한다. 

아래로부터 다른 세계를 향한 투쟁으로

지난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2024년 9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방위군의 인권유린 영상을 공유하며 이스라엘의 국제법 준수를 촉구했다. ‘보편적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최우선 가치로 언급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전쟁을 규탄하는 일부터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하지만 ‘실용과 국익’이라는 기준 아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재명 정부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보편적 인권’을 지킬 수 있을까. 이미 파괴적 경쟁과 분쟁의 국제질서 한복판에 뛰어든 한국 정부에 기대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를 넘어선 국제질서를 형성하고 추동했던 힘은 ‘자본주의’다. 독점을 향한 자본의 경쟁은  ‘제국주의-식민지’라는 국제질서를 낳았다. 이 질서가 참혹한 세계대전으로 붕괴한 후, 다시는 끔찍한 전쟁을 반복할 수 없다는 교훈은 다자주의 국제질서인 유엔으로 이어졌고, 보편적 국제규범으로서 인권원칙을 함께 세웠다. 그렇지만 이 질서 역시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종속과 착취에 기반해 중심부 국가들의 안정적인 자본축적을 전제한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기존 초국적 거버넌스 기구들을 강화하면서 각종 국제규범들을 전파했지만, 이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침식하는 ‘자본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언제나 전지구적으로 작동해온 자본주의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국제질서와 분리된 ‘국가/국익’은 없다. 오로지 ‘자본 축적과 성장’을 향해 국가와 국제질서를 제 입맛에 맞게 형성해온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지 않고서는 평화도 인권도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 40년을 겪으며 전세계 민중들은 저들이 약속하는 번영과 평화가 그들만의 것임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모두의 번영과 평화를 설파해온 신자유주의가 파산하자, 이제 국가와 결탁한 자본은 적대의 논리로 우리를 동원하려고 한다. 국가/자본과 한 몸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적대와 전쟁의 언어를 넘어, 이제는 정말 함께 살아남기 위해 안팎으로 대안적 체제를 향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 싸움 속에서만 정의로운 인권규범과 민주주의를 향한 힘을 조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