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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위원회가 가고 인권이사회가 온다

유엔인권이사회 신설의 의미와 전망

60년 만에 종지부 찍은 유엔인권위원회

1946년 창설된 이래 지난 60년 동안 유엔의 인권보호 활동을 가장 핵심적으로 벌여온 유엔인권위원회(UN Commission on Human Rights, 아래 인권위원회)가 역사적인 종지부를 찍었다. 그 뒤를 이어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 아래 인권이사회)가 오는 6월 19일 공식 출범한다. 이달 9일(한국시간 10일)에는 인권이사회의 초대 이사국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유엔총회를 통해 실시되는데, 한국이 이사국으로 입후보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 어떻게 바뀌나

지난 3월 15일 유엔총회 본회의는 인권이사회 설립 관련 결의안을 찬성 170개국, 반대 4개국(미국, 이스라엘 포함), 기권 3개국으로 통과시켰다. 이 투표에 북한을 비롯한 14개국은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의안에 따라 기존의 인권위원회가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보조기관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인권이사회는 총회 산하 보조기관으로 격상되었다. 인권이사회는 총 47개 이사국으로 구성되며 유엔총회에서 회원국의 절대 과반수인 96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이사국으로 선출된다.

지난 3월 15일 유엔 총회에서 인권이사회 설립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졌다. <출처: UN Photo>

▲ 지난 3월 15일 유엔 총회에서 인권이사회 설립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졌다. <출처: UN Photo>



이사국의 자격 요건도 새롭게 갖췄다. 이사국을 선출하는 총회 회원국들은 이사국 선출 과정에서 희망국의 자발적 공약들을 검토할 수 있고, 선출된 이사국은 임기 중 자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를 받아야 한다. 또한 이사국 중 중대한 인권침해를 자행한 국가에 대해서는 총회 2/3 이상의 결의에 의해 자격 정지가 가능하다. 회의 개최 기간도 늘려 연중 최소 3회, 10주 이상 회의를 개최하도록 해 준상설화하고 있고 이사국의 1/3 이상의 요구로 특별회기를 여는 것도 가능하도록 했다.


왜 유엔인권이사회 신설인가

기존의 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나라별 결의안 제도 운용에 있어서의 선별성, 인권의 정치화 경향, 비효율성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서구사회의 인종차별 등 서구 강대국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눈 감은 채 특정 국가들에 대해서만 나라별 결의안 채택을 통해 인권침해 상황을 정치적으로 문제 삼는 등 ‘인권을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은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인권위원회가 시민․정치적 권리 중심으로만 논의를 진행하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나 발전권, 평화권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점 역시 제3세계 국가들이 가진 불만이었다. 반면, 미국 등 소위 ‘서구 선진국’들이 기존의 인권위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달랐다. ‘서구 선진국’들은 수단, 쿠바 등 소위 ‘인권불량국가’들이 인권위원회 위원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비판해왔고,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인권위원회가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해왔다.

2005년 11월 23일 인권이사회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하는 얀 엘리아슨 유엔총회 의장<출처: UN Photo>

▲ 2005년 11월 23일 인권이사회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하는 얀 엘리아슨 유엔총회 의장<출처: UN Photo>



이러한 비판과 한계들을 극복하고자 △유엔인권이사회 설립 △인권고등판무관실 기능 강화 △조약감시기구 통합 등과 같은 세 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유엔인권기구를 개혁하려는 계획이 추진되어왔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인권위원회의 인권이사회로의 전환이었다. 그 결과 유엔평화구축위원회의 설립에 이어 가장 핵심적인 유엔 개혁 방안 중 하나였던 인권이사회가 설립을 앞두게 되었다. 이로써 기존 유엔체제 중 3대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평화안보(안전보장이사회)-개발(경제사회이사회)-인권(인권위원회)에서 인권위원회가 위상이 격상된 인권이사회로 개편되기에 이르렀다. 격상된 위상만큼이나 인권의 중요성이 좀더 강조된 것이다.


정치적 타협, 그 뒤에 남은 과제

유엔인권정책센터 김기연 사무국장은 “인권이사회가 운영에 있어서 큰 틀거리는 잘 잡았으나 기존 인권위원회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 인권 증진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협력과 논의의 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고 말한다. 지난 3월 15일 유엔총회가 채택한 인권이사회 설립 결의안이 이사회의 임무와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이사회 설립 과정에서 보였던 ‘선진국’들과 제3세계 국가들 사이의 논쟁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은 인권이사회를 별도의 주요기관으로 설치하기를 주장했지만 제3세계 국가들은 총회 산하 보조기구로 제안했다. 또한 ‘선진국’들은 정기회기와 특별회기로 이어지는 ‘상설화’를 주장했지만 제3세계 국가들은 ‘비상설화’를 주장했다. 이사회의 규모에 있어서도 ‘선진국’들은 20~30개국 사이의 소규모 이사회 구성을 통해 좀더 ‘실효성’있는 체제를 요구했던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은 기존의 53개국을 유지하거나 그 이상의 규모를 요구했다. ‘선진국’들은 소수의 ‘힘 있는’ 국가들이 좀더 강력하게 인권문제를 정치화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원한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은 ‘서구 선진국’들이 인권문제를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인권이사회 설립 결의안은 이러한 주장들이 정치적으로 타협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적 타협이 이후에도 원만하게 합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중대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권옹호활동을 펼쳐야 할 유엔인권기구가 지지부진한 운영 논의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인권이사회 초대 이사국들이 이후 인권이사회의 구체적인 운영절차들을 만들어나가는 논의를 주도할 것인 만큼 초대 이사국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 역시 인권이사국으로 입후보한 만큼, 인권이사회 운영에 대해서 어떠한 전망을 갖고 있고 국내외적으로 인권옹호 임무에 대해서 어떠한 역할을 계획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