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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 ‘미래의 꿈나무’가 아닌 지금의 주체로

-청소년인권활동가 새싹

<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


최근 두발 제한 폐지, 체벌 반대를 주축으로 한 청소년인권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잘하라는 관심보다는 걱정 어린 또는 못마땅해 하는 시선 속에서 그 운동의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청소년인권활동가 ‘새싹’의 얘기를 들어봤다. 청소년이면 ‘무슨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것이 싫다면서 자기가 불리고 싶은 이름 ‘새싹’으로 소개해달라고 했다. 청소년인권활동가 새싹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작

인권이란 걸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도 딱히 이거라는 것은 없지만 요즘은 이게 인권적으로 어떻게 되냐는 생각을 많이 해요.

확실히 판단능력은 많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뭔가 부당하다 싶어서 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니 청소년인권이란 게 있구나 알게 되고 이런 것이 인권문제라는 걸 알게 된 다음에는 인권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아직까지도 인간답게 사는 것 이외의 뜻을 잘 정리를 못하겠어요.

학교에서 말 잘 들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딱히 마땅한 이유가 없는 거예요. 옛날부터 그렇게 들어왔으니까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한 이유 같은 거를 하나하나 되물어가면서 생각하다 보니까 정당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게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놀랐어요. 여태까지 하던 것에 배신감도 느끼고…….

가장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에 ‘우리도 말할 수 있어요’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어린이용으로 풀어놓은 것을 읽었어요. 그거 읽고 나니까 일기장을 함부로 읽어서는 안되는 거구나 알고 나서 참, “아 이런 법이 있었구나” 알게 된거죠.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읽고 “아 이런 게 있구나” 알았던 것처럼 그런 기분이었어요. … 초등학교 때 했다가 잠깐 쉬었다고 해야 하나, (인권에 대해) 포기했다가 중학교 동안 암흑기였고 고등학교 올라와서 두발제한 그런 얘기 나오니까 한번 생각해보게 된 거예요.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여러 글 읽고 책 읽고 사람들 하고 얘기하다보니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9.23 반전집회에 참가한 청소년인권활동가들

▲ 9.23 반전집회에 참가한 청소년인권활동가들



도전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 시작은 모금활동이었어요. 학교에서 이유는 회피하면서 애들한테 강제로 돈을 내게 하는 것이 미심쩍기 시작했고. 돕기 활동이라는데 ‘강제로 내라’ 해서 “다른 곳에 2천 원 내면 안될까요?” 했더니 안된대요. 그래서 제가 회장이었는데 “강제로 걷지 않고 내고 싶은 사람에게만 걷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강제로 안 걷어오면 안 받겠다”하고 모금 독촉하러 학생회 애들 보내고 해서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강제로 안 걷었더니 아이들이 반만 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다 걷어올 때까지 안 받겠다고 해서 나머지 애들한테 다 돌려줘버렸어요. 그렇게 찍히고 나니까 대우가 달라지고, 제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시각을-밑바닥 시각이라 해야 하나-봤던 거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걷은 돈 다 돌려주고 나니까 바로 학교에서 찍혀 가지고…

찍혀서 교무실로 자주 끌려다니고, 선생님들 눈초리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고, “쟤 이상한 놈이다”, “쟤 때문에 너희들이 입시를 망친다”고 하고……. 그걸 바깥에 알리는 걸 학교에서 정말 무서워하는 거예요. 그게 좀 이상한 거죠. 학교에서 공공연한 사실인데도 못 알리는 것 보면 굉장히 이상한 거예요. … 학교의 일을 외부에 알리고 나서는 교무실로 끌려가고 어떤 사람은 저한테 소송 걸겠다고 하고 동문 중에서 학교 명예를 더럽혔다고, 제가 예전에 인터넷에 썼던 글까지 다 검색해서 그것도 소송 건다고 하고 동창회실로 끌려가는데 손목 다치고…무서웠어요.

지금 주로 벌이는 활동은 두발 제한 철폐, 그걸 통해서 학생들이 다른 문제까지 펼쳐나갈 수 있기를 그래서 먼저 그 쪽을 주장하고 있어요. 머리 모양 그 까짓것 가지고, 졸업만 하면 너희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데…형식적으로 봤을 때 고등학교 졸업하면 자유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봤을 때는 고등학교 때까지 억압을 당하고 나서 자유를 준다한들 생각이 굳어진 게 많이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유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에 주어져도 참…….

자유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두발 자유를 굳이 외치는 것은, 두발 제한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정말로 자랑스럽다면 국제사회에 나가서 “한국은 두발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자랑을 하든가……. 우습다고 생각해요. 자기들도 잘못된 줄 알기 때문에 다른 곳에 알리긴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들은 하고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신경 쓰는 친구들은 두발 제한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친구들에겐 “너희들은 머리 자르고 싶으면 잘라라. 그러나 자르기 싫은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설령 99명이 두발 제한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하더라도 당연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고, 물론 100명이 찬성을 해도 심각한 고찰을 하고 왜 그런 제한을 두는가 얘기를 해봐야 하겠죠.

두발 제한 문제가 상징처럼 나오는 게 억압의 대표적 상징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 같은데, 그밖에도 학교에서 청소년 인권침해는 체벌, 학생회 성적제한, 연좌제-그러니까 학교에서 싫어하는 학생과 친하게 지내는 애들을 괴롭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친구랑 안 지내게 되고 관계가 떨어져 나가는 거죠. 이게 가장 잔인해요. 학교 안에서 이런 것 자체가 인권침해고 거기서 다른 문제들이 파생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학생과 교사를 동등하게 보지 않는 것, 어느 한 쪽을 우월하게 보는 것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그것 자체가 커다란 인권침해를 구성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을 존중해야 한다는데 존중과 복종은 다르죠. 학생들도 존중을 받아야 해요. 선생님은 존중해야 하고 학생은 존중받지 않으면 그건 주인과 하인의 관계니까요. 그런 관계 속에서는 불평등이 생기고 불만이 생기고 가짜 존중, 형식상으로 선생님 앞에서는 존중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겠지만 정말로 존중이 아니라 거짓된 존중이 생긴다 생각해요.

'체벌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청소년인권활동가. 이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현재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 '체벌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청소년인권활동가. 이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현재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래의 꿈나무가 아닌 지금의 주체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게 ‘미래의 꿈나무다!’ 이러면서 주체로 보지 않는 거죠. ‘나중에 커서 뭘 하겠지’라고만 바라보고. 심지어 청소년 운동조차도 다른 시민단체들에서 표현하는 것은 ‘미래의 꿈나무들’로 보는 거예요. 청소년 운동이 아니라 나중에 커서 노동운동에 가든지 환경운동에 가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좀 하위에 둔다고 해야 하나요. 덜 자랐다, 보호받아야 한다, 미성숙하다 그런 시각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청소년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들, 청소년들은 임금도 팔푼이(80%), 칠푼이(70%)로 주고 똑같은 일을 해도 어리면 반만 주고……. 그런 문제도 있고, 청소년들을 언제나 보호의 대상으로 본다고 해야 하나요. “너희들은 이런 거 하면 안돼” 그런 식으로 나오면서 “나중에 해”…….

어른들이 “나중에 대학 가고 네가 돈 번 다음 하라”는 말에 대해선, 지금 입시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커서는 취직 때문에 못하고, 취직해서는 돈 버는 것 때문에 못하고…그렇게 늙어죽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입시, 취직, 돈벌이하고 상관없이 자신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맞서 싸우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싸우는 사람들은 힘든 것 있어도 그거 감안하고 싸우는 거고.

앞으로 계획은 막막하긴 막막해요. 좀 있으면 더 이상 학생이 아닐 텐데. 일단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에 이런 활동이 끊이지 않도록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저도 청소년인권운동 계속할 거고. 등록금 문제가 있지만 더 배우고 싶고……. 선생님이 교실에 가두고 못나가게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내가 왜 이러나. 무서워서 대들지도 못하고…내가 왜 이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땐 살아있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배우고 싶은 게 아직 너무 많아서 죽을 수가 없더라구요. ‘다 배웠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때는 없겠지만 지금은 배우고 싶어요. 사회과학을 배우고 싶어요.

청소년 운동을 바라보는 어른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4.19, 5.18, 6월 항쟁, 광주학생운동 그런 것들처럼 사회변혁운동에서도 청소년들이 차지했던 역할이 작지 않고 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 사그라들어 아쉽긴 하지만 그런 역사적 예로 봤을 때 어디까지나 (청소년을) 운동의 주체로 인정해야 해요. 보호받아야 하고 미성숙하고 나중에 커서 다른 운동에 가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취약한 민주주의를 깔끔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해요. ‘깔끔한’ 위치란 표현이 좀 그런데, 무슨 뜻이냐 하면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그런 게 개입되지 않은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런 걸 비판할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오히려 청소년운동이 주체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은 돈도 안 벌고, 어른들이 고생해서 번 돈으로 물질만능에 사로잡혀 있고, 남 생각은 안한다는 둥 청소년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데, ‘요즘 젊은 것들’이란 말은 공자‧맹자시대에도 썼다고 하고……. 물질만능에 사로잡혔다든가 하는 그런 평가들은 오히려 이런 체제 속에서 (소비가) 나쁘다는 소리 안하고 인간이 소비로 평가받는 세상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자연스럽게 (물질만능이) 습득된 거고 어른들이 주입시키고 있는데 그게 나쁘다고 하면 그게 모순이잖아요. 아니면 그 어른들은 사람들이 소비한 양으로 평가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던가. 청소년 소비문화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말 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는가로 평가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청소년들 스스로도 자각해야죠. 중요한 것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이 많다는 거죠.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지난 여름 전국을 돌며 '학생인권 쟁취'의 파란만장한 돌풍을 일으켰다.

▲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지난 여름 전국을 돌며 '학생인권 쟁취'의 파란만장한 돌풍을 일으켰다.



올바르게 살기는 힘들다

강풀 만화 『26년』에서 보면, 문익환 목사님인가 나오는데 고문 받으면서 이런 얘길 해요. “착하게 사는 것은 쉽지만 올바르게 사는 것은 힘들다”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싸웠을 때 제가 기대했던 선생님들이 참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어요. “네가 뭔데 교권인 체벌을 반대하느냐”, “넌 학교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 인권이란 하찮은 가치 때문에” 이런 식으로 얘기할 때 많이 놀라고 상처받았어요. ‘저 선생님들도 착할 수는 있지만 올바로 살기는 힘들구나’ 그렇게 느꼈죠.

이런 얘길 하고 싶어요. 착한 척만 하고 싶어 자기한테 피해가 가지 않는 수준까지만 주장할 때에는 “맞는 소리야” 하다가 자기 기득권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의 특권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런 하찮은 인권 때문에”라고 얘기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정말 인권이란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인권이란 말을 보수적인 사람들이 ‘북한인권’ 얘기한다든가 자기 지배하는 것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쓰는 것 같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것도 되지 않아서 진보적인 사람들도 인권 얘기 하고 그러는 게 많이 역설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빨리 이 운동 그만두고 싶어요. 제발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져서 빨리 그만뒀으면 좋겠어요.